▲ 김아무개씨가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에이플러스에셋빌딩 앞에서 부당 해촉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기훈 기자>

40만명으로 추산하는 보험설계사는 보험산업의 꽃으로 불린다. 그렇지만 실상은 착취에 가까운 수수료 계약과 해고에 속수무책인 특수고용직 신분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대면영업 위기, 이로 인해 더욱 가속화하는 보험산업 디지털 전환은 보험설계사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한다. <매일노동뉴스>가 부당해촉을 겪은 보험설계사 사례를 소개하고 보험산업의 미래를 살펴봤다.

글 싣는 순서
① 1년, 그가 투사가 되는 시간
② 영업으로 배불린 보험사, 보험설계사를 버렸다

김아무개(60·사진)씨의 표정은 복잡했다. 23년간 영업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항상 바르게 정도를 걸으며 영업했다는 이야기며 다른 보험설계사들이 뚫지 못한 교육기관 영업에 성공해 수백 명의 계약을 관리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당시의 희열을 다시 느끼는 듯 눈이 반짝였다.

기쁜 표정은 오래 머금지는 못했다. 그의 이야기는 그 시절을 넘어 회사에서 “더 이상 나오지 마라”는 해촉 통보를 받은 대목에 이르렀다. 분노와 슬픔, 그리움이 교차했다. “세상을 몰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영업하는 사람 특유의 당당함과는 다른 꼿꼿함이 느껴졌다. 김씨는 부당해고에 맞서는 투사가 됐다.

자부심 가득한 보험영업인에서
경찰·회사와 댓거리하는 투사로

“이것만 마저 하고 근처 커피숍에서 이야기해요.”

지난달 27일 오전 강남구 에이플러스에셋 본사 앞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부지런히 1인 시위를 준비했다. 앰프를 켜고, 플래카드를 곳곳에 걸고, 부당해촉 철회를 촉구하는 푯말을 세웠다. 행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장을 입은 보험 영업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2019년 해촉 이후 지난해 10월 첫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꼬박 1년째 1인 시위 중이다. 제주도에 산다는 그는 매주 화요일 비행기를 타고 상경해 수요일까지 1인 시위를 하고 다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잠은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잔다.

“1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경찰이나 회사 사람이 나오면 위축됐고….”

그는 인터뷰 직전에도 경찰 그리고 회사와 한 차례 댓거리를 했다. 회사 건물 계단에 앰프를 놓았으니 ‘사유지 침범’이라며 치워 달라는 요구가 있었던 것. 김씨는 얌전히 앰프를 계단 아래로 내렸다. 그러고는 회사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외쳤다. “회사가 했던 잘못들을 고발하는데 무엇이 무서워서 숨고 숨깁니까!” 외침 뒤에는 로비에 주저앉았다. 누구도 그를 끌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경찰도 멋쩍게 웃으며 쳐다만 봤다. 잠시 뒤에 몸을 일으킨 그는 야무지게 현장발언까지 마치고 카페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 23년차 보험설계사를 투사로 만들었을까. 그에게 이야기를 채근했다. “2019년, 고객에게 전화를 한 통 받았어요.” 그게 시작이었다.

“회사 관두셨냐”는 고객 전화가 시작
고객 가로채기 회사에 알렸는데 해고

2019년 고객이 김씨에게 “회사를 관두셨냐”고 물었다. 김씨는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던 참이었다. 고객은 “회사에 전화했더니 다른 사람이 받아 담당 설계사(김씨)는 관뒀고, 당시 가입한 보험은 ‘쓰레기’니 해지하고 다른 보험을 가입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고객 가로채기 시도다. 화가 난 김씨는 고객에게 동의를 얻고 통화를 녹음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제주사업단장과도 논의해 같은해 7월2일 회사 조회 자리에서 이를 공개했다. “그걸로 해결될 줄 알았어요.” 김씨가 낙담한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주사업단은 그날 조회 이후 입장을 바꿨다. 김씨가 회사를 관뒀다고 통화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김씨를 허위사실 유포자로 몰아갔다.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분개한 김씨는 비행기를 탔다. “제주사업단 초기 멤버라 독려방문을 하던 회장과도 안면이 있었어요. 상경하기 전 전화를 했더니 ‘마음이 아프다’며 ‘올라오지 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올라갔죠.”

김씨는 그해 7월6일 회장을 만나 감사를 요구했다. 같은달 17일 회사는 준법감시팀으로 구성한 감사팀을 제주사업단에 내려보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계약 해지를 종용한 관계자는 찾지 못했다. 김씨와는 형식적인 면담만 했을 뿐이다. 8월12일, 김씨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구성원 사기를 저해했다”며 해촉 통보를 받았다.

그러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회사는 김씨와 고객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무혐의 처분이 났다. “원래 해촉을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경찰 고발까지 하니까 어안이 벙벙했죠.”

그래서 시작했다. 1년은 뚜벅뚜벅 흘렀다. 플래카드가 사라지고 경찰에 위축되기도 하고. 갖은 일이 있었다. 당시 감사팀장을 마주쳐 호통도 쳤다. 그런데 에이플러스에셋쪽은 <매일노동뉴스>의 취재에 “그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해당 사건을 알고 있다는 당시 감사팀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38년간 580만명 입직, 574만명 퇴직
쉬운 해고·여성, 보험설계사의 비극

안타까운 대목은 보험설계사 부당해촉이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세중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장은 “특히 GA쪽은 부당해촉이나 직장내 갑질이 빈발한다”고 설명했다. 지부가 부당해촉으로 사용자쪽과 갈등을 빚고 있는 GA는 전국에 걸쳐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해고가 쉽기 때문이다. 보험설계사 업계가 얼마나 유연한 노동시장인지는 들고나는 숫자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생명보험업종을 기준으로 금융소비자연맹이 지난해 2월 보험설계사 등록현황을 분석한 결과 1979년부터 2017년까지 580만명이 설계사 자격을 얻었고, 574만명이 자격을 상실했다. 근속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손해보험쪽 보험설계사의 근속기간 1년 미만 비중은 40.5%다. 생명보험쪽은 27%다.

보험설계사의 또 다른 특징은 여성노동자가 많다는 점이다. 보험통계에 따르면 2019년 생명보험쪽 여성 보험설계사 비중은 77.3%, 손해보험쪽 여성 보험설계사 비중은 74.4%나 된다. 육아와 가사노동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특수고용직이라 여성이 선호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수고용직과 여성이라는 조건은 비극을 잉태한다.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기 쉽지 않다. 스스로 투사가 됐다고 말하는 김씨도 여전히 가족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의 사정을 알게 된 아들과 딸은 엄마를 지지하지만, 다른 가족에게는 말할 자신이 없단다.

그들은 그렇게 밀려난다. 300일 가깝게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 농성 중인 사무금융노조 한화생명지회의 한 노동자는 집회 도중에 이렇게 말했다. “저 높은 63빌딩을 누가 돈 벌어 세웠는데 우리는 외부인이라며 화장실도 못 가게 한다. 보험 안 팔면 누가 돈 벌어 누가 건물 세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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