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제노동기구(ILO) 차기 사무총장직에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다섯 명이 입후보했다. 지난주 기사에서 자기소개서를 중심으로 호주·프랑스·토고·남아프리카공화국 후보를 소개했다. 이번엔 후보자를 낸 국가와 지역의 분위기를 살펴보고, 강 후보자의 강점과 약점을 짚어 본다.

프랑스 정부가 추천한 뮈리엘 페니코(Muriel Penicaud)는 반노동 후보로 분류된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시행한 마크롱 정권의 노동부 장관 경력 때문이다. 1993~2014년 다국적기업 다농의 사용자 경력도 한몫했다. 인적자원관리 이사로 종업원 900명 정리해고를 주도했다. 자기소개서에 업적으로 언급한 2018년 ‘미래 직업을 선택할 자유’ 법률은 노동계가 반대했다. 지난해 4월 프랑스 노동계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당시 노동부 장관이던 그가 근로감독 중단을 요구해 근로감독제도의 독립성을 해쳤다며 ILO에 ‘긴급 개입’을 요구했다.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은 그의 출마에 부정적이다.

호주 정부가 추천한 그레그 바인스(Greg Vines)는 현직 ILO 사무차장이라는 점이 강점이다. 한국 정부의 보도자료에는 ‘공무원노총 지도부’로 표기됐지만, 정확히는 지역 전력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공공부문노조 간부를 맡았다. 이후 전력회사 경영진과 고위 관료를 지냈기에 노조 출신으로 보긴 어렵다. 7월 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 가장 열렬하게 지지의사를 밝힌 정치인은 우익 자유당 소속의 미캘리아 캐시(Michaelia Cash) 법무부 장관 겸 노동부 장관이었다. 호주노총(ACTU)은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고, 국제노총(ITUC)과 상의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호주의 자유당·국민당 우익 연립정부는 국제기구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목표 하에 적극 지원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음툰지 무아바(Mthunzi Mdwaba)도 사용자쪽 후보다. 남아공생산성협회 회장인 무아바는 ILO 이사회 사용자그룹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사용자 입장을 거칠게 내세웠다. 국제노동기준의 채택과 적용에는 부정적이며, ILO가 국제노동기준 개선에 들이는 공을 생산성 향상에 돌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아공 노동부의 지지 서한이 ILO에 왔지만, 대통령은 물론 장관의 결재도 받지 못한 것이었다. 노동부 안의 고위 관료 몇몇이 장난친 것으로 드러나자, 남아공 정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지지를 공식 철회했다.

토고 정부가 추천한 질베르 웅보(Gilbert F. Houngbo)는 유엔 관료 출신이다. ILO에 사무차장으로 4년 정도 있었지만, ‘직원 관리’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ILO에 근무하면서 노동문제에 의견을 내거나 이룬 것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일종의 대세 추종형으로 보인다. 당연히 국제노동기준의 확장이나 노동권 개선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토고를 비롯해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추천한 강경화 전 장관은 2017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외교부 장관을 지냈다. 내세우는 업적은 외교부와 고용노동부의 합작을 통한 29호·87호·98호 기본협약 비준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부터 외교부에서 일했고, 2007년부터는 국제연합(UN) 산하 기구에서 인권사업과 인도주의 지원을 맡았다. 이를 통해 당시 국제연합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과 반기문은 물론, 현재의 안토니우 구테흐스 총장과도 호흡을 맞췄다. 공약은 “노사정 3자주의에 기반해 일의 세계와 보다 나은 일의 미래를 위해 사람 중심의 접근과 회복을 추진하겠다”는 일반적인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사람, 평화, 번영’이라는 목표를 갖고 추진한 사례를 강조한다. 하지만 정책 입안과 실행에서 노동문제가 사실상 배제됐던 점은 약점이다.

한국 정부의 추천을 받기는 했지만,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후보 등록 전까지 노동부와 외교부를 포함해 노사정 관계자 가운데 그의 입후보를 안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잇달아 구속한 ‘노동탄압국’ 비판은 강 후보에게 불리한 점이다. 하지만 출범 이후 지금까지 줄곧 미국과 유럽의 백인 남성들이 사무총장을 맡아 온 ILO의 역사를 바꿀 때가 됐다는 UN과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유리한 점이다.

칠레 정부의 외교관을 하다 ILO 사무총장이 된 후안 소마비아(Juan Somavia)도 노동 전문성이 없었지만, ‘1998년 일터의 기본원칙과 권리 선언’의 채택으로 8개 기본협약을 국제사회의 보편적 노동기준으로 만들었다. ILO 같은 전문적 국제기구들이 UN체제에 더욱 긴밀히 통합돼야 한다고 보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강 후보는 현 UN사무총장의 인수위원장으로 일한 바 있다.

정부 정책과 후보 면면을 볼 때 한국·프랑스·호주·남아공·토고 어느 나라도 당당하게 ‘노동의 성취’를 말할 상황은 아니다. 이는 ‘노동’의 상황이 여의치 못한 글로벌 정세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내년 3월 열리는 344차 이사회에서 뽑힐 차기 ILO 사무총장은 내년 10월 임기를 시작한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