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소 노동자가 용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입사 두 달여 만에 과로와 스트레스로 심근염 증상이 악화해 사망한 20대 용접공에게 회사가 손해배상을 하라고 법원이 판결했다. 법원은 회사가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용접공은 사망 직전 3일 동안 하루 평균 13시간을 일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민사2단독부(윤영석 판사)는 사망한 용접공 A씨(사망당시 28세)의 부모가 A씨가 근무했던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산)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회사의 책임 비율을 40%로 제한했다.

사망 전 3일 동안 하루 평균 13시간 근무
유족 행정소송서 승소 “면역력 저하 원인”

A씨는 2017년 4월28일 금속 판제품 제조업체인 B사에 입사해 팀원으로 일하면서 배관 절단과 용접업무를 담당했다. 그런데 입사 두 달여 만인 같은해 6월30일 오전 8시30분께 회사 기숙사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인은 심근염이었다.

평소 별다른 심혈관질환이 없던 A씨가 갑자기 사망한 데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다. A씨는 평일에 8시간씩 1주 40시간 일하기로 계약했지만 사망 전 4주간 휴일은 이틀에 불과했고, 사망 전 12일 동안은 쉬지 않고 일했다. 특히 사망 직전 3일 동안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3시간이었다.

A씨는 평소 동생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그해 7월까지만 일하고 퇴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숨지기 일주일 전에는 상관에게 몸이 좋지 않다며 퇴근하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고 주말인 이튿날과 그 다음날에도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이미 사망 2주 전 급성기관지염에 걸렸고, 열흘 전에는 몸살감기와 복통 증세까지 호소했다. 적절한 휴식을 하지 못한 그는 결국 심근염이 악화해 숨졌다.

A씨 부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지만, 거부당하자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A씨의 사망이 업무상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근무 과정에서 심근염의 원인인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보기 어렵고, 과로와 스트레스가 질병을 악화시킬 만큼 과중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면역력이 저하돼 심근염 증상이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1심을 뒤집고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민사 재판부, 회사 책임 비율 40% 제한
“신입사원 근무 회피 어려운데 책임 제한 잘못”

민사 재판부도 행정소송과 마찬가지로 A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회사가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회사는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해 A씨에게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를 겪도록 방치했다”며 “과로와 스트레스가 A씨의 심근염을 자연적인 경과 이상으로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장시간 근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용접업무 특성 △정신적 스트레스 △회사의 과로 인지 가능성 △사망 전 몸살감기·복통 증세 호소 △다른 사망 원인 부재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다만 재판부는 △과로사가 흔치 않은 점 △A씨의 체질이나 평소 건강관리 등이 사망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점 △적극적으로 건강상태를 보고하지 않은 점 △일한 기간이 매우 짧은 점 등을 고려해 회사의 책임을 40%로 제한했다.

A씨 유족을 대리한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재판부는 A씨가 건강상태를 보고했다면 회사도 보호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봤는데, 신입사원으로서 몸이 아프다고 업무를 회피하는 것을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며 “수습사원 신분이라 정규직이 안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회사가 악용해 과도한 업무를 부여한 것은 아닌지 재판부가 살폈어야 했는데도 회사의 책임을 제한한 근거로 삼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A씨의 동생은 “소송에 들어가기 전에 회사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민사소송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며 “형이 사망하고 나서 회사의 협조나 사과는 전혀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매일노동뉴스>는 A씨의 사망과 관련해 회사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사측은 “담당자가 휴가 중”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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