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20. 5. 14. 선고 2019누51101 판결

1. 사건 개요

망인은 20대 남성 용접공으로 회사에 취업하고 9주 만인 2017년 6월30일 오전께 회사 기숙사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망인의 부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으나 부지급됐고(이하 ‘이 사건 처분’), 1심 법원은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2. 대상판결 요지

1심 판결은 △망인의 사인인 심근염은 박테리아 또는 바이러스 감염이 주 원인인데 용접업무를 하는 동안 감염됐다고 보기 어렵고 △망인이 평소에 건강했으므로 망인이 느꼈을 피로나 스트레스가 상병을 급격하게 악화시킬 만큼 과중한 수준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망인이 사망 전에 특별히 다른 증상을 호소하지도 않았으므로 면역체계 이상도 없었다며 업무상재해가 아니라고 봤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망인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했다.

① 망인이 담당한 용접업무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였고, 고가의 자재를 다루면서 과도한 업무량과 촉박한 납기 설정으로 정신적 긴장도 역시 높았다.

② 망인은 2017년 4월28일 이 사건 회사에 입사해 2017년 6월30일 사망하기까지 9주 동안 근무하면서 위와 같이 과도한 업무량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괴로워했다(사망 직전 1주 67시간42분, 사망 전 4주 동안 1주 평균 56시간17분, 전체 업무기간 1주 평균 56시간17분).

③ 특히 망인이 사망하기 전 4주 동안 휴일은 2일이었고, 사망하기 전 12일 동안 휴일 없이 연속으로 근무했으며, 사망 전 3일 동안은 2017년 6월27일 10시간30분, 2017년 6월28일 15시간24분, 2017년 6월29일 12시간48분을 근무해 육체적 피로와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④ 망인은 과도한 업무량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받으면서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면역력이 저하됐을 것으로 보인다.

⑤ 망인은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도 무리해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때 바이러스의 활성이 촉진·악화돼 망인의 심근염 증상을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 망인에게 따로 뚜렷한 심혈관계나 면역체계 관련 질환이 없었고, 과로와 스트레스 이외에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볼 특별한 원인을 찾아 볼 수 없다.

3. 판결의 의의

가. 뇌심질환 인정기준에서 ‘착시현상’이 빚어 낸 오판

뇌심질환에 관한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1) 발병 전 24시간 이내의 사건(돌발) 2)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시간 등(단기) 3) 발병 전 3개월 이상의 업무시간 등(만성)을 고려해 판단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기간’이 3개월(12주)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 업무스트레스나 업무강도, 유해한 업무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업무시간만으로 판단하는 경향도 있다.

공단에서 ‘업무시간’만으로 뇌심질환 산재 여부를 판단하는 ‘착시현상’이 이 사건의 오판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공단은 휴일이 부족한 업무이고(4주 동안 휴일 2일 이하, 12주 동안 월평균 휴일 3일 이하), 육체적 강도가 높은 용접업무이자 1일 100회 정도 20킬로그램 무게의 배관을 들며, 정신적 긴장이 높은 업무(납기설정, 과도한 업무량 설정)에 해당한다면서도 산재가 아니라고 봤다. 단순 비교할 사항은 아니지만, 뇌심질환이나 사인불명으로 추정될 경우와의 형평성을 고려했더라도 망인의 사망은 공단 단계에서 산재로 인정됨이 타당했다.

나. 재해자 본인기준설에 관한 올바른 이해 필요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과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또 과로 내용이 통상인이 감내하기 곤란한 정도이고 본인에게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를 위험이 있는 질병이나 체질적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는, 과로 이외에 달리 사망 원인이 됐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드러나지 않는 한 업무상 과로와 신체적 요인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함이 경험칙과 논리칙에 부합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태도다(대법원 2009. 3. 26. 선고 2009두164 판결).

그럼에도 1심은 망인이 젊었고 또 평소에 건강했으므로, 상당히 과로했다고 하더라도 면역력에는 영향이 없었을 것이라고 성급하게 결론 내렸다. 이러한 1심 판결은 망인이 보통 평균인보다 건강했으므로 면역력 저하가 덜했을 것이라는 논리로, 본인기준설을 거꾸로 이해한 것이다. 1심은 얼핏 보면 재해자 본인 기준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망인이 겪었던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 즉 업무 외에 여가나 간단한 취미조차 갖기 어려울 정도로 바빴고 병원에 갈 시간조차 없었던 젊은이라는 맥락을 제거했다. ‘특별한 지병이 없는 20대 젊은이’라는 보통 평균인을 가정하고 판결한 셈이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이 지점을 바로잡았다. 업무가 ‘특별한 지병이 없는 20대 젊은이’의 면역력을 충분히 약화시킬 정도인지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지병이 있었던 경우’에도 업무수행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었다면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외에 다른 요인이 있는지를 살펴서 산재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하듯이, 망인과 같이 ‘지병이 없었던 경우’라면 더더욱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외에 다른 요인이 있는지를 살펴서 산재인정 여부를 판단하면 될 일이다. 더군다나 그 질병이 과로나 스트레스에 의해 취약해질 가능성이 충분한 면역성 질환이라면 뇌심질환과 마찬가지의 기준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

다. 면역질환에 관한 공단의 인정기준 확립 시급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에서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기인한 급성망막괴사증이나 뇌염, 간질중첩증 등의 경우에는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면역력 저하로 인해 재활성화돼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해 왔다(대법원 2007. 4. 12. 선고 2006두4912 판결 등 참조).

하지만 공단은 면역질환의 경우 개인의 면역체계와 관련됐다는 이유로 업무상재해를 인정한 사례가 거의 없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심근염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므로 면역질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당수 심근염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감염으로 발생한다. 특히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로 인해서 심근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업무환경에서 바이러스 등에 감염됐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라도, 기존에 바이러스 등에 감염된 상태에서 망인의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재활성화됐을 가능성이 없는지를 공단과 1심은 면밀히 따져 봐야 했다.

결국 면역질환의 경우에는 어떤 기준으로 업무상재해 여부를 심사할지에 관한 기준이 필요하다. 뇌심질환은 ‘업무시간’과 발병에 관한 연구자료가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기준이 세워져 있다. 이와 달리 면역질환은 산재인정 기준을 수립하기가 곤란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뇌심질환에서의 ‘업무시간’도 하나의 기준에 불과할 뿐이고, 노동부 고시나 근로복지공단 산재인정 기준에서는 업무강도나 스트레스 같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가하도록 돼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뇌심질환도 단순히 업무시간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므로, 면역질환 인정기준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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