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조선하청노동자대량해고저지시민사회대책위원회, 노동건강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가 2017년 5월22일 광화문광장에서 삼성중공업 사망사고 진상조사단 구성과 근본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비정규직 6명의 목숨을 앗아 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충돌사고’와 관련해 원청인 삼성중공업에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삼성중공업과 하청업체 대표가 안전조치의무와 산재예방조치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항소심 판결을 전부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주문했다. 노동계는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과 양형기준 상향에도 원청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 선고의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삼성중공업·하청업체 대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유죄
“산업안전사고 예방 필요한 안전조치의무 부과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30일 업무상과실치사·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중공업과 하청업체, 각각의 임직원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삼성중공업과 하청업체 이종목 대표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김효섭 전 거제조선소장의 경우 지난해 5월 사망해 공소를 기각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4년5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삼성중공업과 이종목 대표가 원심과 달리 안전조치의무와 산업재해예방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삼성중공업과 이 대표에게는 크레인 간 충돌로 인한 산업안전사고 예방에 합리적으로 필요한 정도의 안전조치 의무가 부과돼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크레인 간 중첩 작업으로 인해 충돌 및 물체의 낙하 위험이 있는 구역에 해당하는 일정 구역에 대해선 일정한 시간 동안이라도 출입 금지 등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구체적인 의무가 있었는데도 이에 관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결국 항소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중 하나의 형을 정해야 한다며 삼성중공업과 이 대표에 대한 원심판결을 전부 파기했다.

1·2심 삼성중공업 안전조치의무·산재예방조치의무 모두 ‘무죄’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고’는 2017년 5월1일 노동절에 일어난 ‘대형 산재’ 사건이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에서 800톤급 골리앗크레인과 32톤급 지브형 타워크레인 붐대(지지대)가 충돌하면서 해양플랜트 건조 현장을 덮쳤다. 이 사고로 하청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었다.

검찰은 삼성중공업과 하청업체 임직원, 삼성중공업 법인 등 16명을 업무상과실치사·업무상과실치상·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과 관련해선 안전조치와 산재예방조치, 안전·보건 점검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를 적용했다.

1심인 창원지법 통영지원은 2019년 5월 김효섭 전 소장과 삼성중공업의 안전·보건 점검의무 위반만을 유죄로 인정해 각각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크레인 사고와 직접 관련된 안전조치의무·산재예방조치의무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사고가 기존 규정이나 지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일 뿐 안전대책과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은 점을 사고의 실질적 원인으로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통영지원은 김 전 소장과 이 대표의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크레인 신호수·운전수·현장반장 등 현장 노동자와 말단 관리자에게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해 금고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김 전 소장과 이 대표 등 4명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를 선고했다. 김 전 소장은 금고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이 대표는 금고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역시 삼성중공업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의하더라도 크레인 중첩작업시 별도의 신호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고 봤다.

노동계 “사고 책임이 삼성중과 경영진에 있다는 것 확인”

그러나 이날 대법원이 원청과 하청업체가 안전조치의무와 산재예방조치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함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해 유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은 노동자가 지금도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크레인 사고의 근본적인 책임이 삼성중공업과 그 경영진에게 있다고 판결한 것에 다름 아니다”며 “삼성중공업은 이제라도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여 크레인 사고로 죽고 다치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에게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5월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에서 800톤급 골리앗크레인과 32톤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해 타워 크레인 붐대(지지대)가 무너졌다. <자료사진 삼성중공업일반노조>
▲ 지난 2017년 5월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에서 800톤급 골리앗크레인과 32톤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해 타워 크레인 붐대(지지대)가 무너졌다. <자료사진 삼성중공업일반노조>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