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2017년 5월1일 노동절에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타워크레인 충돌사고 이후 정부는 산업재해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을 시행하고, 피해자 보호·지원에 나섰다.

당시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25명이 다쳤다. 부상을 당하고도 치료를 받지 못한 노동자는 수두룩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상처로 노동자들은 말 못할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노동계에 따르면 사고 당일 출근한 노동자만 1천623명, 사고현장을 목격한 노동자가 최소 300여명이다. 그러나 사고를 직접 당하거나 눈앞에서 목격한 노동자 중 12명만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관련 산재를 승인받았다. 노동계는 “피해노동자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는데도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호와 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두 명의 피해노동자가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형은 사고로 세상 등지고 동생은 트라우마로 고통

10일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에 따르면 지난 8일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충돌사고 피해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산재승인을 요청했다. 모두 하청노동자들이다. K씨는 사고로 함께 일하던 형을 잃었다. J씨는 물량팀 팀장으로 어렵게 산재를 승인받았다. 한데 사고 트라우마는 승인받지 못해 다시 한 번 공단 문을 두드렸다.

K씨는 2017년 1월부터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배관작업을 했다. 사고 당일인 같은해 5월1일 오후 2시50분. 휴게시간에 맞춰 흡연장으로 가던 중 "쿵" 소리가 들렸다. 타워크레인 지지대(붐대)가 흡연장과 화장실이 있던 휴게공간으로 무너졌다. 여기저기서 피 흘리고 소리치는 노동자들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때 K씨는 함께 일하던 형이 떠올랐다. “위험하니 내려가라”는 지시에도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형은 받지 않았다. 형을 찾아 다시 사고현장으로 가는 K씨에게 하청업체 사장이 다가왔다. “형이 병원 영안실에 있다.”

조금만 일찍 찾았다면 형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자책감에 매일 울던 그에게 여동생은 신경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사고 직후 산재를 신청하려 했지만 “트라우마는 산재로 승인받기 매우 어렵고 진행시간도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공단 관계자의 말을 듣고 포기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기대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K씨는 “형에게 죄를 짓는 것 같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생계를 위해 그는 지난겨울 거제를 찾았다. 삼성중공업 인근 조선소에서 일하는데, 자꾸 그날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크레인이나 주변 장비가 덮칠 것 같은 불안감에 위축되고 밤이면 기숙사 방 구석에 앉아 눈물 흘리는 일이 다반사다. K씨는 최근 트라우마도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용기를 냈다. “죽은 형이 돌아올 수 없고 상처가 지워지지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마음 편히 치료받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목격자 최소 300명인데 산재 승인 12명에 그쳐

현재까지 12명의 피해자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산재를 승인받았다. 5명이 사고자고 7명이 목격자다. K씨와 함께 산재를 신청한 J씨는 공단 자문의사회 심의 결과 “초진 당시 진찰상병에 대한 증상을 확인할 만한 치료기록이 부족하고 심리검사를 하지 않아 객관적인 증상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난달 산재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수면장애·사고 재경험·과각성으로 인한 급성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

이은주 마창거제산추련 활동가는 “노동자들은 참담한 현장이 파편처럼 몸에 새겨져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며 “많은 피해노동자들이 J씨와 K씨처럼 제대로 된 보호와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매일 처참한 기억의 현장에서 일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노동자들이 온전히 치유되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가 보장돼야 한다”며 “정부는 요란한 대책발표가 아니라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달 8일 K씨와 마창거제산추련·금속노조 경남지부 관계자가 공단 통영지사를 찾아 면담을 하고 J씨와 K씨의 산재신청 서류를 접수했다. K씨는 “산재 승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공단 관계자는 “실무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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