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정의당·진보당·녹색당·노동당·사회변혁노동자당은 지난 7일 ‘불평등체제 타파를 위한 대선 공동대응기구’를 구성했다. <정기훈 기자>

세간의 이목이 쏠려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못지않게 노동·진보진영도 내년 대선을 향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진보정당들과 대선 공동대응기구를 구성하면서 선거연대 발판을 마련하고 있고, 진보정당들은 독자적으로 후보선출을 추진하면서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거대 양당에 맞서 노동·진보진영이 유의미한 세력으로 대선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정의당 대선경선 4파전 돌입

원내에 진입하는 진보정당 중 규모가 가장 큰 정의당은 지난 6일 선거공고를 시작으로 대선경선 레이스에 돌입했다. 김윤기 전 부대표, 심상정 의원, 이정미 전 대표, 황순식 경기도위원장(가나다 순)이 출마하면서 4파전으로 치르고 있다.

어느새 대선경선 중반전에 접어든 가운데 27일 기준 다음달 6일 1차 투표 결과가 나오기까지 9일 남았다. 1차 투표에서 과반득표가 나오지 않으면 12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현재 각 후보들은 세 번의 TV토론을 끝내고 30일 마지막 TV토론을 앞두고 있다. 이 밖에 당이 주관하는 대선후보 정책청문회와 참모들의 공방전, 청년정의당이 주관하는 대선후보 토크콘서트도 준비했다.

각 후보들은 노동·일자리 공약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가장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공약은 심상정 후보의 주 4일 근무제가 꼽힌다. 심 후보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을 대체할 신노동법 제정을 통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 모든 일하는 시민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한편 주 4일제(주 32시간제)로의 과감한 전환을 1호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정미 후보와 김윤기 후보는 일자리 공약이 두드러진다. 지역사회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전 국민 일자리 보장제’라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정미 후보는 ‘돌봄 대통령’을 내세우며 돌봄시스템을 구축해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고 참여소득을 통해 지원하겠다고 제시했다.

김윤기 후보는 국가 재정지원과 지역사회 기획을 통해 34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참여형 일자리 보장제’를 대표공약으로 발표했다. 황순식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산업구조 변화에 맞는 노동법·제도 개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지향 임금체계로의 전환,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을 약속했다.

당원 표심, 정파 구도 속 향배는

정의당은 일반 국민 선거인단이나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거대 양당과는 다르게 당원투표로만 대선후보를 선출한다. 전체 당원 5만명 중 당비 조건을 충족한 당권자는 2만2천명 규모로 전해졌다. 이들 당원들의 표심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네 명 후보들의 셈법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4선의 지역구 의원에다 두 번의 당대표를 역임했고 지난 대선에서도 출전한 바 있는 심상정 후보가 인지도와 대중성 면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 하지만 진보정당 특유의 ‘정파 구도’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당원 표심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 전망하기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한발 앞서 나가 있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이정미 후보다. 정의당 내 최대 정파 출신이란 배경이 있고, 국회의원(비례)과 당대표를 맡은 이력도 인지도를 보강하고 있다. 김윤기 후보와 황순식 후보는 중앙보다 지역에서 당직을 맡으며 충실히 정치를 해 왔다는 점, 조국 사태와 선거법 파동의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심상정·이정미 후보의 인지도에는 못 미치지만 강점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물론 정의당 당원이 모두 정파 소속이거나 그 영향권 아래에 있지는 않다. 탄핵 촛불집회 같은 사회운동 물결을 따라 정의당에 가입한 비정파 당원의 수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비정파 당원들의 표심이 이번 대선에서 요구하는 정의당 후보의 조건은 무엇인지 눈여겨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투표율은 중요한 요소다.

정의당 관계자는 “당원들이 국민에 대해 내세우는 대선후보에게 원하는 상이 당대표와는 다를 수 있기에 정파 구도로만 예측할 수는 없다”면서도 “결선투표로 가게 될 경우 정파 간 합종연횡에 따라 정파 영향력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후보 선출 뒤 ‘2라운드’ 기다려

정의당 최종 대선후보가 결정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2라운드’가 기다리고 있다. 노동·진보진영의 선거연대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과 다른 진보정당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정의당 역시 거대 양당체제에서 ‘소수정당’이라는 한계가 있다.

가장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곳이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과 정의당·진보당·녹색당·노동당·사회변혁노동자당은 지난 7일 ‘불평등체제 타파를 위한 대선 공동대응기구’를 구성했다. 민주노총 주도로 5개 진보정당이 함께 대선에서 공동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대선 공동대응기구는 크게 △공동투쟁 △공동정책 △후보단일화 세 가지를 의제로 삼았다. 진보정치 세력화를 위해 낮은 수준의 실천적 연대에서 높은 수준의 후보 단일화 방안까지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선 공동대응기구는 현재 정례적으로 실무회의를 하면서 향후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먼저 다음달 12일 각 당 대표가 참석하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토론회에서는 각 당 대선전략은 물론 합의할 의제도 다룬다.

무엇보다 핵심은 후보단일화 여부다. 민주노총과 5개 진보정당은 후보단일화를 한다면 거대 양당체제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동력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14일 대선방침을 결정하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앞두고 있다. 민주노총은 대선방침(안)에서 “2022년 대선에서 진보진영 단일후보를 지지한다”면서도 “단일화가 무산될 경우 민주노총 지지후보는 없는 것으로 한다”고 제시했다.

민주노총-진보 5당 대선 공동대응

민주노총이 이 같은 방침을 내놓은 이유로 2017년 대선을 들었다. 민주노총은 대선방침(안) 해설에서 “민주노총은 당시 중집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를 지지후보로 결정하는 대선투표 방침을 확정했다”며 “두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진보정당 후보 모두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대선과 같이 복수의 진보정당을 지지후보로 하는 선거방침은 실효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장으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후보단일화 방식은 진보정당들과의 긴밀한 논의를 거쳐서 결정해야 한다”며 “경선방식 자체가 후보선출 결과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경선에 응할 당이 정해지면 다양한 방식을 열어 놓고 논의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2017년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201만7천458표(6.17%), 김선동 후보는 2만7천229표(0.08%)를 득표했다. 권영길 후보가 두 차례 대선후보로 뛴 민주노동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 95만7천148표(3.89%), 2007년 71만2천121표(3.01%)를 얻었다. 진보정당 입장에서는 꾸준히 득표율이 상승하고 있는 셈이다.<표 참조>
 

민주노총 대선방침 결정을 앞두고 민중경선제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조상수 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등 민주노총과 산별 전·현직 간부들이 ‘민중경선 연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노총 주도 민중경선으로 단일한 노동자·민중 대통령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중경선 연서명운동 계획과 현장 서명운동 돌입을 선포한다는 계획이다.

민중경선 연서명운동 제안자모임 관계자는 “민주노총 대선방침에 반영되는 게 우선돼야 하지만 더 크게는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 단결과 선거연합 전선을 펼치며 가자는 것”이라며 “연서명운동 참가자 규모를 다음달 13일 전국노동자대회까지 1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당 후보선출, 노동당-변혁당 합당 추진

대선 공동대응기구에 참여하는 5개 정당 중 정의당뿐 아니라 다른 진보정당들도 별도의 대선후보 선출 과정을 거칠 전망이다. 진보당은 지난 3일 김재연 상임대표를 대선후보로 선출했다. 김 후보는 단독출마해 권리당원 투표에서 투표 참여자 2만7천522표 중 2만5천474표(92.56%)를 얻어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김재연 후보는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혁명’ 슬로건 아래 △불평등 해소를 통한 주 4일제 실시 △노동조합이 상식인 나라 △노동중심의 10차 개헌 △토지공개념 전면 실현 △1단계 연방통일공화국 진입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노동당과 사회변혁노동자당은 대선을 앞두고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목표로 합당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 11일 노동당은 정기당대회,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총회를 각각 열고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 준비위원회’(준비위) 설치 안건을 의결했다.

두 당은 지난 7월부터 ‘사회주의 대통령선거·지방선거 공동대응과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원탁회의’(원탁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원탁회의에서는 다음달 초부터 강령과 당헌·당규·당명 채택 방안을 포함해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에 관해 협의하기로 했다. 대선 대응을 위해 27일부터 시작하는 대선의제 토론, 다음달 중순 대선공동투쟁본부(가) 발족 등 일정을 검토했다.

녹색당은 지난달 16일 대선 대응을 위한 첫 토론회를 개최했다. 9~10월 토론을 거쳐 대선에 대한 입장을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진보진영 “후보단일화 아직은”

앞으로 노동·진보진영 선거연대나 후보단일화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단위가 하나 더 있다. 정의당이 지난 7월 진보진영에 제안한 ‘(가)정치개혁과 사회대전환을 위한 2022 양대 선거 공동대응 회의’에 기본소득당과 녹색당, 미래당이 합류하고 있다.

정의당은 “외연·연대 확장을 위해 대선과 지방선거 공동대응을 제안하기로 한 것”이라며 “대선 공동대응기구와 함께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4개 진보정당은 지난 24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9·24 글로벌기후파업 기후정의 공동선언’ 행사를 공동 개최했다. 이들은 다음달 5일과 10일 두 차례 토론회를 예정하고 있다. 각각 정치 분야와 사회비전을 놓고 논의한다.

정의당 관계자는 “양대 선거 공동대응 회의는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선거연대를 바탕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며 “아직은 대표자회의나 발족식 일정을 잡지는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공동대응 회의와 연계되는 것이 정의당이 구상하는 ‘정치 플랫폼’이다. 정의당은 지난달 22일 전국위원회에서 거대 양당체제에 대항하는 정치 플랫폼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의당은 “반기득권 정치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최대한 역량을 모아 선거연대를 추진한다”며 “대선 정치 플랫폼 추진과 정치연대를 기반으로 지방선거 공동대응 기반도 마련한다”고 밝혔다.

기본소득당은 독자적 대선방침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5일 전국위원회에서 대선후보 선출계획을 포함한 대선방침을 확정했다. 양다혜 대변인은 “당원들 의지를 모아 기본소득을 잘 알리고 부합하는 대선후보 발굴을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며 “12월 초 총회에서 최종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고 밝혔다.

기본소득을 대선 쟁점으로 부각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24일 기본소득당·녹색당·기본소득국민운동본부 등 10개 정당·사회단체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기본소득 운동을 펼치기 위한 기본소득정치공동행동을 출범했다.

원내의석을 갖고 있는 시대전환은 지난 15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출마를 지지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김동연 캠프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다.

민중경선제 통한 후보단일화 가능할까

거대 양당에 맞서 진보진영이 제3의 세력으로 대선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선거연대가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구체적인 방식으로 들어가면 노동·진보진영의 목소리는 결이 다르다.

선거연대 방식에서는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예상 가능하다. 민주노총 주도의 민중경선제, 정의당 주도의 정치 플랫폼, 제3지대 빅텐트론이 거론된다. 이 중 민중경선 연서명운동을 하는 민주노총 주도 민중경선제 요구가 가장 큰 상황이다.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장은 “민주노총이 단호히 민중경선과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단일화하는 정치방침을 결정해야 한다”며 “그렇게 해서 정의당 등 5개 정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설득하지 않으면 진보후보 단일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대선방침(안)에서 후보단일화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양수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민중경선제는 아직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며 “각 정당 대선후보와 대선방침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후보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진보정당들도 대체로 지켜보겠다는 원론적 입장이다. 정태흥 진보당 정책기획위원장은 “노동중심 진보정당이 하나로 힘을 합쳐 대선에 공동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우리가 먼저 무언가를 제안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차윤석 노동당 사무총장은 “(민중경선에 대해) 아직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사견이라며 “민중경선 의미가 좋지만 민주노총 조합원이 진보정당 후보를 찍을 것이냐에 대한 담보 없이 후보단일화 논의는 공허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시민사회 진영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주권자전국회의가 28일 주최하는 ‘진보시민정치 대선전략 토론회’에서는 노동자·진보·녹색 대통령 단일후보 목소리가 나올 전망이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도 참석한다.

정성희 소장은 “노동·시민사회에서는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연결해 진보선거연합을 바라보고 있다”며 “특히 지방선거에서는 선거연합을 해야만 3인 선거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돌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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