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자동차산업 전환을 놓고 노동계와 자동차업계, 정부가 이견을 드러냈다. 중장기적으로 내연기관차가 소멸할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같았으나 전환 과정을 두고는 입장이 갈렸다. 노동계는 정부가 노동자를 배제한 채 기업지원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고, 정부는 최근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 대한 노동계 의견을 밝히라고 채근했다. 자동차업계는 미래차 전환을 위해서는 노동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와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특별위원회 실행위원회는 19일 오후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자동차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제를 한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래차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다”며 “우리나라도 수소 분야의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고용안정을 담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수소나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이 내연기관차보다 30%가량 적기 때문에 완성차사의 고용은 물론 내연기관차 부품을 납품해 온 부품사의 고용위기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조 “정의로운 미래 전환 위한 노사정 선언 하자”

이날 토론은 이 같은 근미래 전망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현재의 대응책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노동계는 정부가 내놓은 정책을 박하게 평가했다. 김상민 노조 정책실장은 “정부가 6월 발표한 자동차 부품기업 미래차 전환 지원 전략은 2월 발표한 4차 친환경자동차 기본계획보다 구체적이지만 자본잠식 상황이거나 회생절차에 돌입한 위기 부품사는 여전히 배제됐다”며 “인력양성 계획을 강조했지만 노동자 보호 대책은 매우 취약하다”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도 자발적인 공정한 노동전환과 재직자 직무전환 훈련, 장기실업자 채용기업에 고용촉진장려금 지원 같은 인센티브 유도 정책이라 전환 여력이 없는 2·3차 자동차 부품사와 노동자에게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완성차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미래차 기술을 강조할수록 질 나쁜 일자리가 확산할 우려도 있다. 현재 현대자동차 내연기관 엔진은 현대차 정규직 조합원이 생산을 담당하지만 미래차 엔진인 PE모듈은 현대모비스 하청업체 노동자가 생산한다. 현대제철도 수소연료전지 금속분리판 생산시설을 정규직이 없는 예산공장에 증축한 상황이다. 김상민 정책실장은 “기업의 이 같은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하면 정부가 얘기하는 공정환 노동전환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자동차산업의 정의로운 미래 전환을 위한 노사정 선언을 제안했다. 산업전환이 자동차산업 국제경쟁력 강화뿐 아니라 노동자 고용안정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귀결되도록 노사정이 인식을 같이하자는 취지다. 김 정책실장은 “각 주체의 이해관계를 해소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큰 틀의 방향을 선언하고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품사 고용위기 우려는 더 크다. 우리나라 내연기관차 부품사는 거의 수직계열화된 상황이다. 이경진 한국자동차부품협회 연구소장은 “우리나라 자동차부품사는 현대·기아차에 사실상 종속된 상황”이라며 “국제적으로 자동자부품의 애프터마켓이 성장하고 특히 2025년 아시아에서만 그 규모가 736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지만 우리나라 부품업계는 여기에 대응할 구조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오로지 현대·기아차에 납품할 내연기관차 부품만 만들다 보니 자동차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품·서비스 시장에 개입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래차 전환 과정의 기술력을 축적하거나 전환 여력을 갖추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문가 “노동계, 정부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업계 “노사분규가 전환 가로막아”

전문가들은 정부의 자동차산업 전환 정책 마련과 탄소중립 논의에 노동계가 의사결정권자로 재계와 대등하게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은 “일터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전환기에 산업별 교섭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시장이 유연화·분절화한 상황에서 기업별 교섭체계가 강고하고 사회적 대화기구에 노동배제가 뚜렷한 것은 정의로운 전환을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조건”이라며 “기업이 아닌 산업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탄소중립 문제는 산업·업종 수준의 중앙집중화와 조율된 단체교섭 필요성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산업별 단체교섭에 나서는 산업군에 정부가 지원해 주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자동차업계는 빈발하는 노사분규가 정의로운 전환의 걸림돌이라는 정반대 논리를 폈다.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미래자동산업 경쟁력은 내연기관차 중심 산업구조를 전기동력차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가 핵심 관건”이라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안정적 노사관계와 노동유연성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노동시장 환경도 다양한 변화를 요구받는다”며 “현행 노동관련 법·제도는 매우 경직적이고 획일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금지, 노조 부당노동행위 규정을 국제수준으로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사분규에 대해서 말을 아낀 정부는 노동계에 탄소중립 시나리오 1·2·3안 가운데 하나를 빨리 선택하라고 촉구했다. 노동계를 비롯한 환경·기후단체가 탄소중립 시나리오 1·2·3안 자체가 엉터리라고 비판하는 상황임에도 3개 안 중에 선택하라며 압박한 셈이다. 이민우 산업통상자원부 자동차과장은 “노동계가 보기에 각종 지원책이 미흡할 수 있으므로 더 노력하겠다”면서도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모호하다고 하는데 산업계를 비롯한 다양한 관계자들이 입장을 내고 있는 만큼 노동계도 의견을 정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만약 지금 의견을 내지 않는다면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할 여지도 있으니 어떤 시나리오를 희망하는지 밝혀야 하는 시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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