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외국계 투자기업이 수익을 배당 형태로 본사로 빼 가고, 영업이 어려워진 국내 사업장을 청산하거나 매각하는 일이 반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실직이 발생하는 만큼 외국인 투자기업 ‘먹튀’를 제도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국제규범상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을 국내 기업으로 대우해야 하는 ‘내국인 대우’ 조항 때문에 법 개정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국제사무금융IT서비스노조연합 한국협의회(UNI-KCL)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외국인투자 촉진법(외국인투자법) 개정방향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외국계 기업의 국내 사업 행태를 사례로 법 개정 방향을 논의했다.

지역·산업 이동 자유로운 자본
발 묶인 노동, 교섭력 불균형

외국계 기업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 고액 배당을 실시하고, 구조조정으로 고용불안을 일으키는 일이 잦다. 주로 해당 기업 노조가 대응하는데 교섭력이 약해 효과를 보기 어렵다.

발제를 맡은 이상훈 금융노조 금융경제연구소장은 “지역·산업 간 이동이 손쉬운 자본과 이동의 제약이 큰 노동의 구조적 차이 때문에 교섭력의 격차를 발생시킨다”고 설명했다. 자본이 국경을 넘는 것은 노동보다 손쉽다 보니 갈등이 발생하면 “철수하겠다”는 위협으로 노조의 교섭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상훈 소장은 “실제 전가의 보도처럼 직장폐쇄를 언급하면서 노조 주장을 묵살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페르노리카코리아가 대표적이다. 수입 주류 국내 법인인 페르노리카코리아는 2016년 장 투불 대표이사 부임 이후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노조 위원장은 “교섭 도중 사용자쪽은 걸핏하면 철수를 말한다”며 “철수하면 당장 직장을 잃기 때문에 교섭 도중 많은 부분을 내려놓아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직접투자, 6년 연속 200억달러
“고용확대·자본투자에 긍정적인 인식도”

그러나 외국인투자법은 투자 촉진을 위한 법이라 별도로 기업을 규제하기 어렵다. 만약 법을 개정해 규제조항을 집어넣으면 무역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크다.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세계무역기구(WTO) 조항에 외국계 기업 간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 ‘최혜국 대우’와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을 똑같이 대우하도록 하는 ‘내국인 대우’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계 기업 규제에 대한 이견도 있다. 이상훈 소장은 “외국계 기업에는 국내외 시장에서 자본 약탈 비판과 고용확대·자본투자 기대가 상존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 직접투자액은 지난해 신고기준 207억5천만달러(약 23조4천537억원) 규모다. 6년 연속 200만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외국인투자법은 이렇게 진출한 외국계 기업에 세제·현금·입지(부동산) 지원을 한다.

최혜국·내국인 대우에 묶인 규제 강화
교섭력 복원에 법 개정 초점 맞춰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상훈 소장은 노조의 교섭력 복원을 위한 외국인투자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외국계 기업의 철수·매각 과정에서 노동자가 법률 구조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센터를 설립하고, 무역조정 지원제도를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역조정 지원제도는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무역조정 지원에 관한 법률(자유무역협정조정법)에 따라 FTA 체결로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것이 예상되는 기업을 지원하는 제도다. 융자와 컨설팅, 고용유지지원금을 이용한 전직지원을 하는 게 뼈대인데 여기에 자본 유출로 고용상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 대한 지원도 포함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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