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과후강사노조는 6일 오전 서울시·경기도·인천시교육청 앞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방과후학교 재개를 촉구했다. <정소희 기자>

정재진(가명)씨는 수도권 초등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11년차 방과후학교 강사다. 지난해 6개 학교에 출강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모든 수업이 끊겼다. 강사 수입은 0원이었고, 마트에서 알바를 했다.

올해 1학기는 2개 학교에서 수업을 하게 됐다. 초등학교 1·2학년은 매일 등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1곳은 비대면(온라인)이라 코로나19 전과 비교해 학생은 3분의 1 정도다. 정씨는 “초등학교 저학년은 비대면 수업을 할 때 학부모가 옆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돌봄이 어려운 가정은 신청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저학년은 전면등교인데 왜 비대면수업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월 수입은 코로나19 이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동료 강사들은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껴 그만두기도 했다. 정씨는 “학교는 방과후수업에 대한 수요조사 결과를 공지하지도 않고 실시 여부도 알려주지 않는다”며 “학교장 재량으로 방과후수업 여부를 결정하게 만든 교육당국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저학년 매일 등교하는데, 방과후수업은 비대면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 사례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교육 현장은 아직 혼란스럽다. 특히 수도권 방과후 강사들은 1년 넘게 보릿고개를 견디고 있다. 지난해 수도권 초·중·고교에서는 방과후교실이 한 곳도 열리지 않았다.

방과후강사노조(위원장 김경희)는 6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과후수업에 대한 학부모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22~26일 방과후수업에 참여한 적 있거나 참여할 의사가 있는 수도권 초등학생 학부모 1천58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방과후수업이 운영 중인지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사람(554명)이 “방과후학교가 전혀 운영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비대면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응답한 이는 257명으로 4명 중 1명 꼴이었다. 코로나19 이전에 준하는 수준으로 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5명 중 1명(220명)에 불과했다.

노조는 스포츠·악기와 같은 특기적성 수업이 많은 방과후수업에서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비대면 수업이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정재진씨 사례처럼 수강생이 적거나 호응도도 낮은 편이다. 이런 탓인지 전체 응답자 중 71%가 “방과후수업 중단으로 사교육비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사교육비 경감을 목적으로 한 방과후수업이 사라지자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 것이다. 방과후수업이 줄어 돌봄에 어려움을 느끼는지 묻는 질문에는 79%가 “그렇다”고 답했다.
 

 

“학교들, 수요조사 안 하거나 중단 유도”

김경희 노조 위원장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방과후수업 재개를 안내하고 있지만 일선 학교들은 방과후수업에 대한 수요조사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방역에 부담을 느끼는 단위학교에서 방과후수업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수요조사를 실시해도 선택지를 제한해 비대면 수업이나 운영중단을 유도하기도 한다.

방과후수업은 근거법이 없다. 17개 시·도 교육청과 한국교육개발원이 만드는 ‘방과후학교 길라잡이’를 토대로 사업을 시행한다. 길라잡이에는 단위학교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수요조사를 하고 학교장이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수업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객관적으로 수요조사가 진행됐다고 응답한 학부모는 39%에 그쳤다. 온라인수업이나 운영중단만을 유도하는 수요조사였다고 답한 사람은 25%였다. 수요조사가 아예 없었다고 한 이들도 22%나 됐다.

방과후강사들은 매일 등교하는 초등학교 1·2학년생을 대상으로 방과후수업을 전면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학부모의 53%가 방과후수업 전면재개에 찬성했고, 저학년 대상 전면재개를 찬성하는 이도 33%였다. 정재진(가명)씨는 “학부모들은 수업을 문의하는데 학교들은 수업 여부에 대한 확답도 제대로 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수업 재개를 바라며 지난해 견딘 희망고문이 올해도 반복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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