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왜 결혼 안 했어? 애는 왜 안 낳았어? 이런 질문이 없는 사회가 20대 여성들의 자살이 줄어드는 사회 아닐까요. 지금 우리 사회는 평범, 평균이라고 말하는 기준을 세운 뒤 여기에서 벗어난 여성들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요구합니다. 기준에 맞춰 살라는 ‘폭력’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이 사회가 바뀌어야 합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20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 2020년 상반기 자살한 20대 여성은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25.5%(89명) 늘었다. 지난해 1~8월 자살을 시도한 인구 중 20대 여성이 32.1%를 차지했다. <매일노동뉴스>가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지난 5일 오후 류호정(29·사진) 정의당 의원을 만났다. 그는 지난해 20대·청년·여성·노동을 표방하며 당선했다. 여러 논란도 뒤따랐고 부침도 겪었다. 그는 “국회 경직도가 너무 높아 평소대로만 해도 튀었다”고 말했다.

“여성의 행동에 이유를 묻지 않는 사회 됐으면”

-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지 1년이 다 돼 간다. 지지자들의 기대를 충족하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고 본다. 청년정치인이 보여줄 ‘다름’에 대한 기대를 많이 받았다. 생각 외로 이런 기대는 별다른 노력 없이 충족됐다. 차별화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국회 경직도가 너무 높아 평소대로만 해도 모든 것이 튀었다.”

- 분홍색 원피스 사건을 말하는 건가.
“존재 자체가 튀었다고 보면 된다. 정장을 입고 갔을 때는 ‘네가 무슨 정장이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나 ‘네가 무슨?’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당선 이후 처음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할 땐 저지당하기도 했다. 입구에 계신 보안요원께서 ‘의원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며 길을 가로막더라. ‘제가 국회의원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며 들어갔다. 젊은 여성이 국회의원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거다.”

류호정 의원은 지난해 8월4일 ‘분홍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조명을 받았다. 부적절한 옷차림이라는 말과 여성 비하가 오갔다. 정의당은 당시 “지금은 2020년”이라며 “여성 정치인의 외모, 이미지를 평가함으로써 정치인으로서 자격 없음을 말하려는 행태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국회법은 국회의원의 복장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류 의원은 이 모든 일들을 “이젠 지긋지긋하다”고 표현했다. 20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받았던 익숙한 시선이자 대우라는 의미였다.

“게임회사에 취업할 때 ‘결혼할 거냐, 자녀 계획은 있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회사에 뽑히고 나서 ‘자녀계획이 없다고 해 뽑았다’는 말을 들었어요. 화섬식품노조에서 선전홍보부장으로 일할 땐 여성은 교육선전이나 총무쪽으로만 직책이 치우쳐져 있다는 걸 알았죠. 단체협약에는 여성 의견이 거의 배제되잖아요. 여성차별 사회, 이젠 지긋지긋해요.”

“차별에 코로나19 더해지자 여성들 무너져”

- 통계를 보면 코로나19가 고령 여성노동자들을 노동시장에서 몰아내고 있다. 청년 여성들은 코로나19에 어떤 영향을 받고 있나.
“성차별적인 사회분위기를 강화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취직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불안감이 강화됐다.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코로나19로 기업은 채용인원을 줄이는데, 여전히 남성을 선호하는 성차별적 채용관행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채용인원을 줄이면 여성이 진입할 수 있는 문이 좁아진다고 생각한다. 결혼한 여성 지인들은 가사노동이 강화됐다고 호소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자 가사노동이 여성에게 몰렸다. 가사분담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다.”

- 코로나19가 청년 여성 자살률에 영향을 미칠까.
“지속적인 차별이 생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인식하게 돼 사람을 무너뜨린다고 본다. 일생에 걸쳐서 알게 모르게, 지속적으로 받아 온 차별이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까지 생각하면 사람이 무너지지 않나. 젊은 사람들은 ‘그냥’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설명하기 구차해 보여서,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을 때, 너무 이유가 많을 때 사람들은 ‘그냥’이라는 말을 쓴다. 그렇게 자살률이 늘어 가지 않을까.”

- 젊은 여성의 자살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성차별이 없는 사회가 필요하다.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들은 질문을 너무 받는다. 결혼을 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 자녀도 마찬가지다. 낳으면 낳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설명해야 한다. 질문은 폭력이다. 사람을 자기검열하게 만든다. 하다못해 염색을 하는 것조차도, 나는 빨간 머리를 하고 싶은데 ‘왜’라는 질문이 들어올 것 같으니 ‘덜 튀는 갈색으로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긋지긋하지 않은 사회, 내가 나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런 사회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정의당은 지난 2018년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 때부터 여성과 젠더 의제에 집중했다.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했다. 그런데 김종철 전 대표가 지난 1월15일 같은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전 대표는 이를 인정해 사퇴했고 정의당은 그를 제명했다.

- 성평등을 지향하는 정의당에서조차 성추행이 발생했다.
“정의당도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서 나온 사건이다. 다만 성평등을 지향했기 때문에 사후 대처는 모범적이었다고 본다. 전 대표는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났고, 징계기구는 전 대표를 제명했다.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중했다. 조직 내에서 성추행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 성추행이 없는 사회는 어떻게 오나.
“끊임없는 성찰과 제도화 노력이 성추행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사건은 ‘나는 아니다’가 아니라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성찰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평소 젠더 이슈에 관심을 가진 덕에 만들어진 성평등 인프라가 역할을 했다. 당 여성위원회와 젠더인권본부, 젠더인권본부장을 맡고 있는 배복주 부대표가 없었다면 사후 처리가 미흡했을 것이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여성의 노동? 편견 깨고 서로 롤모델이 되자”

류호정 의원은 수행비서 부당해고 논란을 겪고 있다. 류 의원은 지난해 12월 면직 7일 전 수행비서에게 면직을 통보했는데, 수행비서가 더 높은 임금을 받던 기존 직장을 그만두고 온 세 아이의 어머니였으며 밤 12시를 넘겨 퇴근시키고 아침 7시에 출근시켰다는 증언이 나왔다. 류 의원은 면직 과정에서 전 비서와 합의했으며 법적 절차에 어긋남 없이 면직이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류 의원은 전 비서를 중앙당기위원회(징계위원회)에 제소했다. 현재 이 사건은 정의당 당기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있다.

- 자신도 여성 해고노동자면서 사용자 입장에서 여성노동자를 해고했다는 비판이 있다.
“사실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당기위에 맡겨져 있는 상태라 주장을 하게 되면 또 다른 분쟁에 휩싸여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결코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없었다는 점이다. 면직 과정의 시시비비를 당기위에 제소한 게 그 근거다.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받기 위해 당기위에 맡겼다. 법적 절차를 밟게 되면 면직이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결과를 받을 게 뻔하지 않나. 다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을 사용한 점은 제 잘못이다. 죄송하다.”

- 세 아이의 엄마를 수행비서로 뽑은 게 적합했는지 논란도 있는데.
“특정 업무는 여성이 하면 안 된다는 편견이 잘 드러난 지적이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수행비서를 할 수 없나? 채용 과정에서 가사와 육아를 어떻게 분담하는지 물어봤다. 업무 수행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채용했다. 사회는 소위 ‘여성의 일’을 구분한다. 돌봄·환경미화 업무를 ‘여성의 노동’으로 정의하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 이런 편견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
“무엇보다 롤모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젊은 여성 리더라는 롤모델이 부족하다. 여성과 남성이 한 공간에서 비슷한 성격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이다. 편견에 눌리면 안 된다. 노조 활동가 시절, 여성들이 이런저런 일을 이유로 대의원 활동을 거절하는 상황들을 봤다. 어떤 일은 시간을 내서도 하는데, 어떤 일은 바쁘다고 미룬다. 여성 리더가 되는 일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롤모델이 되자. 나도 국회 미혼 여성노동자라는 롤모델이 되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