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경상남도교육청이 방과후 자원봉사자 348명을 공무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자 교육공무직 수험생을 중심으로 불공정 논란이 일었다. 하루아침에 노력 없이 ‘과실’을 따먹으려 한다고 낙인찍힌 방과후 봉사자들은 공무직 전환 면접시험 연기, 전환계획 잠정 중단 등 폭풍우 속 시간을 견뎌야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여론의 집중 폭격에 입을 닫았다. 경남도교육청이 최근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 구성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겠다고 발표하면서 2월28일 계약이 만료되는 방과후 봉사자는 자신의 운명을 전환심의위에 맡긴 채 숨죽이고 있다. 31일 <매일노동뉴스>가 채용 공정성 시비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방과후 봉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로 단절된 경력
시간제는 선택이 아니었다”

“50만원이 채 안 됐던 급여지만 그래도 아이들 학원이라도 한 곳 더 보낼 수 있고 가정생활에 보탬이 되니까 시작했죠.”

경남도 한 초등학교에서 5년 넘게 방과후 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김정희(가명)씨는 ‘학부모 코디네이터(현 방과후 봉사자)’라는 일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됐다. 하루 4시간, 주 20시간 하는 ‘노동’이었다.

처음부터 단시간 노동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그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일을 구하려 했지만 출산과 육아로 생긴 공백 탓에 일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아이도 있고, 어느 정도 나이도 있다 보니 일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이후 접한 방과후 코디 일은 당시 양육과 일을 병행해야 했던 그에게도 썩 나쁘지 않은 일자리였다.

2013년 방과후 코디로 불리던 정희씨의 직함이 자원봉사자로 바뀌었다. 일하는 시간은 일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주 12시간으로 바뀌었다. 학교에서는 일하는 시간이 줄었지만 급여는 그대로인 점을 들어 처우가 더 나아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그는 초단시간 노동자도 아닌 촉탁직 자원봉사자가 됐다.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2018년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이들은 자원봉사자란 이름에 발목이 잡혔다.

“이게 어떻게 노동이 아니란 말인가”

노동자성을 감추기 위한 교육청의 눈물겨운 노력이 계속됐다. 김씨는 “교육청에서는 자원봉사직다운 일만 주라고 학교에 공문을 내리고, 교사연수에서 교사들에게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안 된다”며 “교육청에서는 자원봉사직이기 때문에 학부모 개인 연락처를 알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일하다 보면 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저소득 학생 지원제도인 방과후학교 자유수강권 관리 업무와 회계업무도 하고 있다. 학부모, 그리고 방과후 강사들은 문의사항이 있을 때면 근무시간이 아닌 때도 그에게 전화를 건다. 공개수업 준비 등 업무량이 많은 때는 일찍 가 준비하느라 2~3시간, 많게는 5~6시간 추가 노동을 하지만 대가는 받을 수 없다.

경남도교육청의 ‘2020년 방과후학교 자원봉사자 운영 계획’에 따르면 “운영 형태 : 근로계약(채용)이 아닌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위촉,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며, 4대 보험료 지급과는 무관. 봉사료 지원 1일당 3만원(연 600만원), 봉사활동에 대한 실비(교통비·식비 등) 개념, 근로자 임금과는 구별됨”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는 “몇 년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출근부’라는 이름의 서류에 사인하도록 했는데 어느 순간 ‘봉사일지’로 명칭이 바뀌었다”며 “차비와 식비로 주는 돈이라 월급명세서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월 60만원의 봉사료를 받는다.

“불공정하게 일했는데…”

지난 12월24일 소문만 무성하던 방과후 봉사자의 정규직 전환 사실을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이 공식화했다. 김정희씨는 언론을 통해 사실을 먼저 접했다. 이후 제출 서류와 1월19일 예정됐던 심층면접을 준비하려 동분서주했다. 면접 3일 전 채용 공정성 시비가 일면서 전환 절차는 중단됐다. 정희씨는 최근 학교에서 2월28일부로 해촉된다는 사실을 다시 통지받은 상태다.

5년 넘게 일해도 매년 지원해 면접 등 심사 과정을 걸쳐 일을 했던 방과후 봉사자들이 앞으로 어느 정도 규모로, 어떤 형태로 고용될지 불명확한 상황인 터라 매년 거치는 해촉 과정이 불안하기만 한 상황이다. 경남도교육청은 노사관계 전문가·변호사·노동계 및 교원단체 추천위원 등 외부위원이 3분의 2 이상 포함된 전환심의위 회의를 1일 연다.

“어느날 아이가 ‘엄마, 학교 교무실에서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묻는데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한테 ‘자원봉사자’란 말로 제가 하는 일을 설명해 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방과후 수업하면 수업비 내잖아. 그거 계산하는 사람이야’라고 설명했어요.”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 시간 동안 쾌활함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사정을 전하던 그는 처음으로 울먹였다. 그리고 질문했다.

“불공정하게 일하고 있던 우리는 어디서 공정을 물어야 할까요? 학교 안 유령처럼 있던 저희는 유령처럼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까?”


 

[공정성 시비가 덮은 진실]
단시간 노동에 갇힌 경력단절 여성

지난 1월14일 박종훈 경남도교육청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열고 방과후 자원봉사자를 방과후학교 실무사로 전환하기 위한 심층면접(1월19일)을 잠정연기한 후 전환을 위한 의견을 다시 수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경남도교육청>
지난 1월14일 박종훈 경남도교육청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열고 방과후 자원봉사자를 방과후학교 실무사로 전환하기 위한 심층면접(1월19일)을 잠정연기한 후 전환을 위한 의견을 다시 수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경남도교육청>

경상남도교육청 방과후 자원봉사자의 공무직 전환이 문제가 논란이 됐던 이유는 복합적이다. 지난해 11월1일 기준 학교 근무 중인 방과후 봉사자가 공무직 전환 대상에 포함되면서 숙련 노동자에게 기존 업무를 맡겨 업무공백을 줄여야 한다는 당위는 맥을 못 췄다.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를 주 40시간 전일제 노동자로 전환하는 일은 일자리 규모 축소 우려를 갖게 했다. 전체 업무량이 노동력 규모를 결정하는데, 기존 비정규직과 신규 시장 진입자가 하나의 파이(업무량)를 두고 싸우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전일제로 전환되면서 방과후학교 실무사 업무가 교무행정 업무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교육청 공고 내용은 수험생의 불안을 부추겼다. 교사가 과도한 행정업무 탓에 정작 교과업무를 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과 불합리한 대우를 받던 방과후 봉사자의 처우개선이라는 두 가지 대의는 결국 채용 공정성 시비에 좌초됐다.

코로나19 고용충격으로 2020년 취업자가 22년 만에 최대 폭(21만8천명)으로 감소한 상황에서 전환 반대 혹은 부분 반대 입장을 가진 이들의 입장을 완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채용 공정성 시비 논란이 현실의 또다른 불공정을 가린다는 사실이다. 여성노동자들은 육아 탓에 일자리를 잃었고, 아이를 낳은 후 질 낮은 일자리로 유입되고 있다.

“시간제 노동 70%는 여성”

학교에서 일하는 시간제는 주로 여성노동자다. 제도 미비로 경력단절이 발생한 상당수 여성노동자는 질 낮은 시간제 일자리로 유입됐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만 15~54세 여성 중 경력단절 여성은 150만6천명에 육박한다. 매년 감소하는 추세지만 경력단절 여성 10명 중 4명은 여전히 경력단절 이유로 ‘육아’를 꼽는다.

박주희(50·가명)씨가 초등학교 돌봄전담사로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경력단절이다. 그는 간호조무사·사회복지사·보육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육아와 함께 병행할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10년째 돌봄전담사로 일한 그는 하루 6시간, 주 30시간 일한다. 2013년 공무직으로 전환되긴 했지만, 초과노동을 해도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씨는 “연차를 쓰기 어려워 제 아이 졸업식과 입학식도 못 갔다”며 “6시간 일하면서 무슨 책임감을 가지고 저렇게 일하나 하겠지만 돌봄의 특수성이 책임감은 강하고, 보상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 같다”며 답답해했다.

박씨에게만, 혹은 학교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2020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로 집계된 시간제 노동자수는 325만2천명으로 이 중 여성은 71.9%(233만7천명)를 차지한다. 시간제 노동자는 정해진 근로시간이 동일 사업장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 노동자보다 짧고 1주 36시간 미만인 노동자를 뜻한다.

최은희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부장은 “학교 안에서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보여주는 것도 교육의 일종인데 학교가 어느새 아이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몸소 체험하는 기관이 돼 버렸다”며 “아이들도 금방 알아서 돌봄전담사에게 ‘선생님 비정규직이죠?’라는 질문을 하거나, 비정규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최 정책부장은 “우리가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며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며 정부가 만들어 낸 일자리에 우리는 수동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지연된 정의는 실현될까”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을 ‘봉사료’로 포장하고, ‘출근일지’를 ‘봉사일지’로 바꿔 작성하게 하는 것은 분명 부당하다. 정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방과후 봉사자는 공무직으로 애초 전환됐어야 할 이들이다. 이들은 길게는 10년 넘게 방과후학교 수업 지원업무를 수행해 왔다.

방과후 봉사자들은 최근 2월28일로 해촉된다는 통지를 학교로부터 받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뒤늦은 공정성 회복 과정에 나선 경남도교육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전환심의위원회 첫 회의는 1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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