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누구나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 들게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94년 입사해 어느덧 근속 30년을 앞둔 최영철(52·사진 왼쪽) 서비스일반노조 롯데백화점지회장에게는 지회를 만든 지금이 그런 시기일까. 노조를 잘 알지도 못했다는 그가 지회장이 됐으니 말이다. 회사를 견제할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최근 기본급을 깎는 누적식 연봉제 도입과 관련 있다.<본지 2021년 1월6일자 8면 “롯데백화점 ‘기본급까지 깎는 평가제’ 도입에 노동자 반발”기사 참조>

4년 늦게 입사했지만 동기처럼 지낸 이성훈(50·사진 오른쪽) 수석부지회장과 노조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한다. 모든 일이 처음이라는 두 중년 노동자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지회 설립을 계기로 회사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에서 이들을 만났다.

“기본급 삭감 연봉제 때문에 지회 설립”

- 노조설립 과정이 궁금하다.
최영철 :
올해부터 회사가 기본급까지 삭감하겠다고 해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조설립은 내가 추진했다. 이전에도 노조설립 시도는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잘 안 됐다. 인터넷으로 노조설립에 대해 찾아보니 처음에는 (노조 조합원이) 5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고, 3명이 필요하다고도 하더라. 공인노무사에게도 전화했다. 결국 2명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규약과 절차를 갖춰 (부지회장과) 사무실을 마련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관악지청에 설립신고를 했다. 지난해 11월에 신고하고 12월에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신고증을 받고 상급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서비스연맹에 가입했다.

이성훈 : 둘 다 노조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회사가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회사는 복지 제도를 축소할 때 설명회도 열지 않았다. 우리는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할 복지를 축소해 실적을 개선하는 단기적인 처방만 해 왔다. 직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단체가 생기면 회사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90% 직원 임금 상승? 사측 주장 틀렸다”

- 사측은 이번 연봉제 도입 배경을 어떻게 밝히나.
최영철 :
회사는 ‘90% 직원의 임금을 올리는 제도’라고 한다. 하지만 따져보면 말이 안 된다. 인사고과에서 AV(평균) 등급을 받는 70% 직원은 기존 임금을 그대로 받는다.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는 상위 20%는 임금이 올라도 하위평가자는 절대평가라 비율이나 인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기본급이 깎이는 인원을 10%라고 하지만 인사평가가 누적돼 10%보다 많아질 거다. 예를 들어 A대리의 기본급이 3% 깎이면 내년 연봉은 올해의 97%부터 시작한다. 우리 회사는 평가가 낮으면 이를 회복하기가 어렵다. 이 사람이 대리 직급을 벗어나지 않으면 계속 임금이 낮아진다. 그런데 하위 고과를 받고 어떻게 진급을 하겠나.

이성훈 : 우리가 50대 직원이라 주변에 나이가 비슷한 사원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이 하위평가자다. 100%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런 경향이 있다.

최영철 : 고연령 사원은 기본급 비중이 커 임금삭감 폭도 크다. 연봉등급표를 보면 하위평가자들의 임금을 빼서 상위평가를 받은 직원에게 주는 구조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성과가 좋은 이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직원의 임금을 뺏어 보상하는 제도라니….

이성훈 : 점포 내 갈등을 유발하는 꼴이다. 점포별로 보상하면 되는데 점포 안에서 직원들에게 제로섬 게임을 시킨다. 바로 옆에서 일하는 직원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내 임금을 가져가는데 점포 분위기가 좋을 수 없다. 복지 제도는 계속 축소해 왔다. 자기계발비·도서구입비도 없앴다.

최영철 : 지난해 장기근속자 포상제를 바꿀 때도 회사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도 한 번 열지 않았다. 대표가 사내 게시판에 글 한 번 올린 게 전부다. 사번을 입력해 찬반투표하는 형식적인 동의 절차를 거치니 (연봉제 개편 투표에서) 찬성률이 94%에 이른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장기근속자에게 포상으로 주던 금을 상품권으로 변경하고 유급휴가를 폐지했다. 지회에 따르면 사측은 변경 덕에 최소 35억원을 절감했다. 금 포상 제도 폐지 대상자는 800여명이라고 한다. 당시에도 롯데백화점은 금 포상 제도 개편과 관련해 전 사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했다. 5천131명의 직원 중 4천818명이 투표했는데 무려 86%의 직원이 동의했다. ‘답을 정해 놓고 거치는 동의절차’라 비판받아도 무방해 보인다.

“롯데는 ‘NO가 없는 조직’이다”

- 연봉등급을 산출하는 인사평가는 어떻게 이뤄지나.
최영철 :
현재 인사고과는 기준이 없어 보인다. 팀장이나 점장인 평가자가 ‘팀원이 팀의 목표달성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같은 3개 질문에 6개 답을 선택하면 인사평가 등급에 바로 반영된다. 실적 목표를 얼마큼 달성했는지, 매출 신장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반영하지 않는다. 내가 인사고과에서 최하위 평가를 받았을 때 1월부터 8월까지 (목표)매출 달성률을 보니 우리 점포에서 세 번이나 1등을 하고 한 번은 2등이었다. 매출 신장률도 여섯 번이나 1~2등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최하위 등급이었다.

이성훈 : 1~2년 전에 정량평가가 있었지만 사라졌다.

최영철 : 사내 인사관리 규정에 맞지 않는 인사이동도 있었다. 나는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11개월여 동안 인사이동이 다섯 번 있었다. 점내 이동은 세 번, 점별 이동은 두 번 이었다. 인천에서 서울 관악구, 서울 동대문구로 이동했다. 사내 규정에는 ‘년 1회 정기 이동이 원칙’이라고 나와 있다.

- 노조설립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
최영철 :
‘행동할 때’라고 생각했다. 직원들도 모두 회사를 견제해 주길 바랐을 거다. 혼자 노조 설립신고를 했는데, 부지회장이 수원으로 발령 나서 전국 단위 노조가 될 수 있었다.(웃음) 내 근무지가 서울이고 부지회장이 경기도라서.

이성훈 : 집 가까운 곳으로 발령해 주겠다고 해서 신청했더니 더 멀어졌다.(웃음) 노조가 사무전문직 목소리도 대변했으면 한다. 부장급 직급도 가입할 수 있다. 문화센터·상품권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나 품질평가사는 전문직군으로 분류되는 무기계약직이다. 이분들도 알고 입사했다지만 백화점에서 똑같이 일하고도 장기근속 포상이나 명절 상여금에서 다른 정직원과 차별받는다. 롯데는 광고에서 ‘20년, 고객과 함께 간다’는데 직원들에게 얼마나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는지 묻고 싶다.

최영철 : 롯데는 ‘NO(노)가 없는 조직’이다. 바뀌어야 할 기업문화다. 이제는 우리도 회사에 무언가 목소리를 낼 때다. 비밀은 꼭 보장할 테니 많은 직원들이 노조에 가입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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