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대구광역시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앞에서 간병노동자 고용·산재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

주 4일제 근무를 논의하는 시대지만 하루 24시간, 한 주 144시간을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 간병노동자다. 이들은 하루종일 환자 곁에 머물며 식사부터 용변처리까지 모든 일을 챙긴다. 중환자를 보살피는 과정에서 각종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기 일쑤지만 산재보험은 꿈도 못 꾼다. 최저시급은 물론 휴게시간도 보장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적용 대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고용보험법과 산재보험법 등 관련법 개정을 통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확대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간병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17일 접한 간병노동자들의 탄식은 깊었다.

“24시간 일해도 일당 10만원뿐”

“중환자를 다루느라 온몸에 골병이 들었어요.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양쪽 손목을 다 수술했고, 테니스·골프엘보(팔꿈치에서 발생하는 통증의 종류, 상과염)로 치료받으면서 일하고 또 망가지면 치료하고, 일하고 그래요. 산재보험이 절실해요.”

2004년부터 17년째 간병노동자로 일한 안서현(64·가명)씨가 자신이 앓았던, 앓고 있는 병명을 줄줄 외었다. 그는 오후 7시부터 오전 7시까지 한 명의 환자를 6년째 돌보고 있다. 환자 보호자가 보통 24시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일당 10만원을 챙겨 줘 상황이 조금 낫다. 주간에는 다른 환자를 돌보며 생계비를 보탠다. 그는 “이 세상 어느 하늘 아래 주당 144시간 일하는 사람이 있냐”며 답답해했다.

일반적으로 유·무료 직업소개소를 통해 환자를 알선받는 간병노동자는 24시간 일하고 일당 10만원가량을 받는다. 시급으로 치면 4천원 정도다. 근로계약서나 업무위탁계약서는 쓰지 않는다.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으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니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18년차 간병노동자 김미진(66·가명)씨는 “(보호자가) 이틀 쓰겠다고 부른 다음 반나절 일하고 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코로나19로 요즘에는 마른 기침이라도 하면 환자들은 ‘혹시 감기 걸린 것 아니냐’며 잘라 버린다”고 증언했다. 안서현씨는 “먹고살아야 하니 나와 일하지만 내 몸이 병들면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하냐”며 “나중에 일을 못 해도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데, 아무런 안정망이 없다”고 한숨 지었다.

일부 간병노동자 얘기가 아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최근 간병노동자 252명을 실태조사해 보니 63%는 코로나19 이후 최근 10개월 사이 일이 줄어 소득이 줄었고, 59%는 일하다 다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4명 중 3명은 고용보험(75%)과 산재보험(73%) 도입이 매우 필요하다고 했다.

“17년째 무대책,
고용보험·산재보험 도입해야”

현정희 전 의료연대본부장은 “간병노동자 문제가 처음 사회적 쟁점이 됐던 때는 2003년으로 당시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던 간병노동자가 몽땅 쫓겨났다”며 “간병노동자들은 병원 안에서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데도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노동기본권조차 갖지 못한 특수고용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 노동기본권과 산재보험·고용보험을 요구해 왔지만 (간병노동자는) 특수고용직 단위 논의에서 항상 빠졌다”며 “산재보험 적용과 함께 필수노동자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연대본부에 따르면 간병노동자는 병원 안에서 환자와 가장 근접해 일하지만 감염병예방을 위한 마스크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간병인과 같은 경우는 사업주를 특정하지 못해 (산재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해 특수고용형태근로종사자 직종에 추가하는 방식만으로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검토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 사업주를 한 명으로 특정할 수 없으니 항운노조처럼 산재보험관리기구를 만들어 간병인·병원·직업소개소 등이 들어가 조율을 해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다”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법률 개정이 필요해 지금 당장 적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더 산재보험을 확대할 직종이 무엇인지에 관해 내년에 연구용역을 할 예정인데, 그 안에 간병인도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부 관계자가 언급한 산재보험관리기구는 사용자가 불분명한 하역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위해 노사정 합의로 마련된 특례 제도다. 하역노동자를 공급하는 노동자공급사업자(항운노조)와 노동자를 사용하는 하역업체·화주 등이 산재보험 보험가입자 지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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