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비스연맹 소속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앞에서 코로나19 대책 비정규직 차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비정규직·특수고용직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한 각종 조치로 고용불안·임금손실이 심화하고 있는 데다가, 마스크 같은 기초적인 개인보호구 없이 고객대면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증언대회와 기자회견을 통해 “기업은 사업장의 위험을 외주화해 비정규 노동자에게 전가했고, 정부는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재난에 마주하자 비정규직 등 약자를 저버리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민중당은 1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각각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비정규 당사자 실태를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은 코로나19 정부 정책에서조차 정규직과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 정책 혜택이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에게까지 전달되지 않고 있다”며 “현장 노동자 의견을 반영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특수고용직 대상 건강·고용·급여 보호대책 부족

노동계는 학습지 노동자·간병노동자·대리운전 노동자·방과후 강사 등 개인사업자 신분의 특수고용 노동자를 250만~300만명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코로나19 사태로 감염위험과 생계위험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회원 집을 방문하거나 학습센터·공부방에서 아이들을 대면해 교육하는 학습지교사는 감염 우려로 수업을 거부하는 회원이 늘어 수입이 줄었다. 회원이 회비 환불을 요구하면 자비로 토해 내야 한다. 이달 초 전국학습지노조 조사 결과 수업 중지를 경험한 교사 비율은 13%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비중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학습지회사에서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거나 소량만 지급해 자비로 사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부 회사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수업이 가능한 온라인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학습지교사 일자리를 줄이고 있는 셈이다.

방과후학교 강사는 정규수업이 끝나면 학교에서 독서·요리·미술·악기·스포츠 등 수업을 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다. 수업을 못하면 수입이 전혀 없다. 각 학교는 지난달 초 방과후학교 수업을 단축하기 시작해 최근 완전히 중단했다. 이달 23일 개학 후 곧바로 수업을 시작하더라도 급여는 4~5월에야 받을 수 있다. 올해 전체 수입도 줄어들게 됐다.

간병노동자는 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 곁을 24시간 지킨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마스크 무료제공을 중단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간병을 하는 문명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희망간병분회장은 “의료진에게 마스크가 꼭 필요하듯 환자를 돌보는 우리도 필요하다”며 “일회용 마스크를 헤어드라이어기로 말리거나 세탁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등은 늘어난 온라인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물류회사에 배달 일부를 맡기고 있다. 물류회사와 계약한 특수고용 배달노동자들이 배송하고 있는데 마트나 물류회사에서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는다. A대형마트는 대면 배달을 원칙으로 하다가 노조가 “어느 가정에 자가격리자가 있는지 몰라 위험하다”고 항의하자 최근 대구·경북지역에 한정해 비대면 배달을 하고 있다.

정부도 특수고용 노동자가 처한 어려움을 모르지는 않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일 저소득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를 지원하는 생활안정자금 융자요건을 완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특수고용직만 지원 대상에 포함하면서 수혜자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리운전 노동자의 경우 일하는 이는 2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산재보험에 가입한 노동자는 8명에 불과하다.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행정 편의적으로 대책을 수립하면 제도 밖에 있는 특수고용직이나 취약층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경희 전국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은 “수입 공백이 길어진 강사들은 1%짜리 저금리 생활자금이라도 대출해 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며 “개강 후 각 학교가 첫 강사료를 미리 지급해 주는 등 현장 상황에 맞는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공공운수노조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로 고용불안·임금삭감 위기에 놓인 돌봄노동자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제정남 기자>

보릿고개 마주한 비정규직
“직접지원 가능한 정부 대책 필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도 정부를 바라보고 있다. 학교비정규직(공무직) 노동자 다수는 원치 않는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다. 학교급식실 조리사나 과학실무사는 방학 중 일하지 않고 급여도 받지 않는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일하지 않는 기간이 늘어났지만 휴업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가 학교 휴업은 휴업수당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날 민중당이 주최한 ‘코로나19 사태 차별받는 비정규 노동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급식노동자 A씨는 “교사·공무원은 재택근무를 하고 성과급까지 받을 수 있다”며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학교비정규직은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아이돌보미·재가방문 요양보호사는 서비스를 희망하는 가정을 찾아다니며 일한다. 지자체가 위탁한 기관과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지만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다. 신청자가 서비스를 취소하면 일을 하지 못한다. 노동조건이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다. 공공운수노조 기자회견에 참석한 재가요양 노동자 임아무개씨는 “감염에 취약한 고령자를 돌보지만 정부는 안전장비를 지원하거나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고, 코로나19 책임을 오롯이 노동자에 전가하고 있다”며 “요양보호사가 집에 찾아오는 것을 꺼리는 이들이 많아져 실업 위기에 처했다”고 증언했다.

정규직이라고 바람을 피해 가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정부의 어린이집 휴원 명령 이후 입소를 취소하는 가정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민간·가정어린이집 일부는 수입이 줄어들자 보육교사 인건비를 삭감하거나 해고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지부장 함미영)가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전국 보육교사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더니 휴원 기간에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 비율이 14.4%로 나타났다. 함미영 지부장은 “휴원을 하더라도 정부·지자체가 보육교사 인건비를 지원하는데, 급여를 주지 않거나 삭감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원아가 줄었다며 해고되는 보육교사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정규 당사자들은 취약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정부에 촉구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비정규직과 약자들은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재난 속에서 더 큰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며 “정부는 취약계층과 고용불안·임금삭감에 놓인 비정규직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정남·최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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