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두봉 공공운수노조 지역난방안전공사지부장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스물네 살의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이 산재로 사망했다. 그의 비통한 죽음으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됐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김용균 사망사고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는 사고 원인으로 다단계 하도급으로 발생한 책임 공백, 안전 공백 상태를 지목했다. 업무를 잘게 쪼개 외주화함으로써 원청과 하청 간, 또 하청과 다른 하청 간 분절된 작업환경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현장의 최전선이자 지휘체계의 끝자락에 있는 하청노동자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됐다는 얘기다.

같은해 12월, 경기도 고양 백석역 인근에서는 도로 밑 열 수송관이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심 한복판에 섭씨 100도 가까운 뜨거운 물기둥이 솟구쳐 올라 한 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당시 경찰은 수송관 파열사고 원인을 ‘용접 불량’이라고 밝히고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한국지역난방공사 직원 6명과 현장 점검을 맡았던 하청업체 직원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어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열 수송관 안전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노후 열 수송관을 대대적으로 점검·보수해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백석역 사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용역업체 비정규직이던 우리는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자회사 ‘지역난방안전’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정부와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이를 두고 ‘정규직 전환’이라고 했다. 여전히 하청노동자라는 점은 바뀌지 않았지만, 어쨌든 정규직 전환이 되면 고용과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 기대가 실망을 넘어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원청인 지역난방공사는 “24시간 지역난방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며 자회사 근무체계를 8시간 주간근무에서 24시간 업무가 지속되는 교대근무 형태로 바뀌었다. 업무의 양과 범위 역시 크게 늘었다. 하지만 바뀐 근무체계와 추가된 업무에 비해 충원된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근무복이 수개월이나 밀려서 지급되거나 한여름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맨홀 안에서 점검 작업 후 먼지와 땀에 몸이 흠뻑 젖어도 마땅히 씻을 만한 공간이 없었다. 작업을 마치고 맨홀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달려오던 차가 눈앞에서 급정거했던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노조 자체 조사에 따르면 수면장애와 근골격계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가 크게 늘었고, 일하다 다쳐도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한다는 응답자 비중 역시 적지 않았다.

정부가 공공기관 작업장 ‘2인1조’ 근무를 의무화하겠다고 했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난방 자회사에서 2인1조 근무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두 명 중 한 명이 연차라도 사용해 자리를 비우게 되면 이를 대체할 인력이 없어 불가피하게 1인 근무를 해야만 한다. 2인 근무를 해도 한 명이 차도에서 교통을 통제하고 맨홀 속으로는 한 명만 내려가니까 현장 노동자들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회사는 인력 충원은 고사하고 하절기에는 오히려 점검 인원을 줄이겠다고 했다.

이렇게 현장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몰아 쥐어짠 결과 자회사는 지난해 6억7천만원의 수익을 냈다고 공시했다. 노동강도는 높아지고 회사는 수익을 냈지만, 처우수준은 지난 2년간 계속 제자리를 맴돌았다. 노동조합은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데 사용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자회사 사측은 모회사인 지역난방공사가 발생한 수익을 달라고 하면 줘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개선 대책에 따르면 오히려 모회사는 자회사가 자체적으로 복리후생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적절한 관리비와 이윤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부 대책과 정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관리 책임이 있는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실태를 알고는 있는지 묻고 싶다.

서두에 같은 시기에 발생한 두 사고를 나란히 언급한 이유는 많은 점에서 서로가 닮아있기 때문이다. 먼저 발전소에서 연료운반·환경 설비를 다루는 일과 열 수송관 안전을 점검하는 일 모두 시민의 편의와 안전에 필수적인 노동이라는 점에서, 또 가장 위험한 현장의 업무가 외주화돼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역난방의 경우 다단계 하청구조로 인한 분절적 업무구조와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후속대응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용역과 자회사 하청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위험한 작업환경과 열악한 처우에 허덕인다면 시민안전을 책임지는 안전점검 역시 제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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