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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여성노조운동가가 본 2020년 여성노동자] 세대는 달라도 그녀들이 겪은 차별의 무게는 같았다
▲ 정기훈 기자

“어머나, 장미꽃을 준비하시다니, 선배님 센스!”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곱게 포장한 장미꽃을 건네자, 권미경 연세의료원노조 위원장이 반색했다. 마카롱 두 박스를 사 온 권 위원장이 “그럼 저는 빵을 준비한 거네요” 하고 웃었다.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은 “아이고, 저는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최 전 의원은 “예전에는 장미꽃을 안 좋아했는데, 장미의 의미를 알고부터 좋아지더라”며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후배들을 만나는데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장미꽃을 샀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 모임방에 좀처럼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조합인 30·40·60대 여성노동자들이 마주 앉았다. 1979년 섬유노조 YH무역지부장으로 유신정권 붕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YH 투쟁’을 이끈 최순영(67) 전 의원, 병원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태움’ 문화 등 직장내 괴롭힘을 끊어 내고 직장 민주화를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 권미경(48) 위원장, 그리고 2017년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를 세상에 드러낸 동시에 제빵기사들의 열악한 노동현실까지 고발한 임종린(36) 지회장이 주인공이다. 세대는 다르지만, 여성노동자로서 이들이 겪어 온 차별과 억압으로 그늘진 노동현장의 모습은 세대를 불문하고 비슷했다.

3·8 세계여성의 날 112주년을 맞아 <매일노동뉴스>가 세대별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2020년 대한민국 여성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112년 전 여성노동자들은 선거권과 노조결성의 자유, 임금인상, 노동시간단축,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112년이 지난 오늘날 여성노동자에게 생존권과 참정권을 의미하는 ‘빵과 장미’는 아직도 요원한 걸까. 좌담회는 연윤정 매일노동뉴스 편집부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가발업체 YH무역, 3년여 만에 400배 성장
유신시대 경공업 육성정책과 저임금 착취 ‘콜라보’


연윤정 : 3·8 세계여성의 날 112주년을 맞아 과거 여성노조운동을 치열하게 했고, 지금 하고 있는 분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다양한 세대의 여성노동자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세 분은 언제 어떻게 노조를 시작하게 됐나요.

최순영 : 1970년에 공장에 들어갔어요. 내가 맏이였고 밑으로 남동생이 3명이었는데, 동생들 뒷바라지하려고 서울에 와서 YH에 들어갔죠. 녹색병원 알죠? 지금 병원 자리에 YH가 있었어요. 66년에 노동자 10명으로 시작한 YH가 내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4천명으로 늘어나 국내 최대 가발업체가 돼 있었어요. 한창 ‘선 성장 후 분배’하면서 노동자 임금을 합법적으로 적게 줘도 되는 시기였거든요. 그러면서 정부 수출지원 정책과 함께 회사가 확 성장한 거죠.

그때는 도급제로 일을 했어요. 일한 만큼 돈을 가지고 갈 수 있다 보니 노동자들이 하루에 막 13시간, 14시간씩 일했어요. 난 손기술이 좋아서 나중 하청공장이나 세워 돈 벌 생각도 했어요. 노조 안 하고 하청공장 사장 했으면 아마 지금쯤 제3세계 여성들을 착취하고 있지 않았을까.(웃음)

그렇게 한 5년을 일했는데, 어느 날 누가 노조 얘기를 하더라고요. 각 부서마다 노조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 부서에서 내가 찍혔어요. 그때 섬유(섬유노조) 간부가 와서 교육을 했는데, 하루 8시간만 일하면 되고 그 외에 일하면 수당을 받을 수 있대요. 일요일도 쉴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린 그때 공무원만 일요일에 쉬는 줄 알았지. 그때 그 얘기를 듣고 ‘이놈의 회사에 노조나 만들고 가자’고 마음먹었는데, 그 이튿날 탄로가 났지 뭐예요. 알고 봤더니 그래도 남자 한 명을 노조로 끌어들였는데 그게 공장장 처남이었던 거라. 그때 네 명은 해고되고 나는 강원도 횡성으로 강제 전출됐는데, 거기서 노조를 반드시 결성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회사 방해로 몇 차례 실패를 겪다가, 결국 75년 5월에 YH노조를 만들고 지부장으로 선출됐죠.

장시간 야간노동에 뿔난 간호사
부서장과 ‘맞짱’ 뜨며 서열·기수문화 깨기 시작


권미경 : 1996년에 연세의료원 간호사로 입사했어요. 간호사들은 대부분 3교대를 하는데 제가 있던 안과·이비인후과는 2교대여서 나름 괜찮았죠. 문제는 응급수술이었는데, 3교대 근무가 아닌 이상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각막 이식수술 같은 응급수술이 잡히면 나와야 하는 거예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면서 장기기증을 하셨잖아요. 그 이후 장기기증이 넘쳐 나게 됐는데 그때는 진짜 밤낮없이 일했던 것 같아요.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서 오후 3시30분에 집에 갔는데 잠깐 쉬고 있으면 전화가 와요. 수술 잡혔다고 오라고. 수술이 늦게 잡히면 새벽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 또 아침 7시30분에 출근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집에 안 가고 그냥 수술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다가 수술 들어가곤 했어요. 한 번은 밤새 일했는데 관리자들이 고생했다며 오전만 하고 오후에는 집에 가라고 하는 거예요. 너무 고마웠는데 알고 봤더니 제 오버타임한 걸 깐 거더라고요. 4시간을 오버타임했으면 (통상시급의) 1.5배니까 6시간의 시급으로 계산해 줘야 하는데 4시간을 그냥 깐 거예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환자상태가 안 좋으면 수술이 취소되거든요. 제가 들어갈 수술이 취소되면 출근하는 중에 전화해서 그냥 집에 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일들이 계속 쌓이면서 부서장과 ‘맞짱’을 뜨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선배들이 노조 대의원을 하라고 하더군요.

연윤정 : 병원도 서열문화, 기수문화가 굉장히 강하잖아요.

권미경: 맞아요. 수술방에 들어가는 사람(스크럽)과 밖에서 지원해 주는 사람(서큘레이팅)이 있는데, 보통 어린 연차들은 안에 들어가고, 연차가 쌓이면 서큘레이팅을 주로 해요. 서큘레이팅은 밖에서 커피도 한잔 할 수 있고 화장실도 갈 수 있고 몸이 훨씬 자유로운 반면 수술실 안에 들어간 사람은 수술 내내 화장실도 못 가요. 그런데 우리 기수들이 연차는 쌓여 가는데 후배들은 안 들어오다 보니 맨날 스크럽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 선배들한테 얘기했죠. “저희가 언제까지 스크럽만 서야 하냐, 일정 기간이 됐으면 선배들과 반반씩 나눠 하는 게 맞지 않냐”고 했어요. 그 당시에는 굉장히 센세이션했죠. 선배들한테 ‘요즘 것들’ 얘기도 들었는데, 어쨌든 제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앞장섰던 것 같아요. 결국 스크럽과 서큘레이팅을 오전에는 우리가 하고, 오후에는 선배들이 하는 식으로 바꿔 냈어요. 이게 본원 수술실까지 소문이 퍼지면서 거기도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장 간부로 활동하게 됐고, 2011년에 노조전임자로 부위원장을 하게 됐죠. 2017년 위원장을 했고 올해 재선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장’에서 ‘일반기사’ 강등
관리자 “괜찮지?” 한마디에 ‘깊은 빡침’


임종린 : 2007년에 파리바게뜨 협력사에 입사했어요. 파리바게뜨 매장 알바를 했는데, 같은 매장 제빵기사님이 일 잘한다고 해 보라고 추천해 줘서 (제빵기사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빵을 막 사랑한 건 아닌데, 손에 맞아서 오래 일했어요. 되게 순종적으로 일했던 거 같아요. 시키는 대로 노예같이 일을 잘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진급이 좀 빨랐어요. 7년차가 됐을 때 관리자 밑에 장을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회사 관리자가 전화를 해서 다음달부터 저보다 연차가 훨씬 낮은 남자 직원을 장으로 올리고 저를 내린다고 하더라고요. 이러저러한 설명도 없이 바로 “다음달부터 너 그거 안 할 거야. 괜찮지?” 그러는 거예요. 원래 제 성향 같았으면 속으로 ‘뭐지?’ 하면서도 그냥 “예” 했을 텐데, 그때는 “안 괜찮은데요”라고 대꾸했어요. 속에서 천불이 나서 따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본사 관리자와 면담을 잡아 달라고 요구해서 만나기도 했고요. 그 관리자한테 “나는 이 회사를 열심히 다녔고 앞으로도 열심히 다닐 사람인데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진급을 맘대로 올리고 내리냐”고 따졌어요. 그 분도 “알겠다, 해결해 준다”고 했는데, 한 달 후에 다른 곳으로 가 버리더라고요. 결국 흐지부지됐고, 저는 ‘빈정’ 상한 채로 일했죠.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났어요. 나보다 직급도 낮고 연차도 낮은 남자 기사가 있었는데, 이분은 관리자를 ‘형’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 남자 기사가 “○○형이 나 관리자 시켜 준다고 했다”고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진짜 얼마 뒤에 관리자가 됐어요. 심지어 제 담당 관리자가 된 거예요. 그때부터 완전히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어요. 난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오래 다녀도 여자라는 이유로 평생 이렇게 되겠구나, 깨닫게 된 거죠.

연윤정 : 파리바게뜨지회를 만들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임종린 : 2014년부터 교육지원 기사로 일했는데요. 신입기사들의 현장 적응을 돕는 교육을 하면 수당으로 10만원씩 받는 게 있었어요. 근데 어느 날 본사에서 저한테 교육받은 사람이 3개월 이내에 다른 점포로 가면 교육 실패이기 때문에 수당에서 5만원을 빼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과거 13개월 동안 제가 한 교육 사례를 전수조사해 실패사례를 찾아내 다음달 월급에서 차감해 갔어요. 와~ 그때 진짜 열받았어요. 10년을 이 회사에 다니면서 몸 바쳐 일했는데, 돌아온 게 이건가 싶었어요. 친구들한테 맨날 울면서 하소연했는데, 한 친구가 노무상담이라도 받아 보라고 해서 연결해 준 곳이 정의당 비상구(비정규노동상담창구)였어요. 제 돈이 빠져나가는 걸 설명하다 보니 저희 일하는 구조를 얘기했는데, 이게 불법파견이었던 거죠. 비상구에서 이건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게 맞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슈로 노조가 결성된 거예요. 그게 2017년이었죠.

“모든 투쟁은 조합원의 힘으로”

연윤정 : 최순영 전 의원께서는 여성노조운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많이 겪으셨을 텐데요. 뭐가 제일 기억에 남으세요?

최순영 : 크리스찬 아카데미(1965년 발족한 기독교 사회운동 단체)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깨우친 게 “모든 건 노동자의 힘으로 되는 거고, 노동조합 간부들은 조합원의 힘만큼 가야지 조합원을 이끌려고 하면 안 된다”였어요. 조합원과 함께하는 싸움이 중요한데, 그런 투쟁이 두 번 있었어요.

한 번은 제가 지부장이 되니까 한 남자 과장이 조합원들한테 “어제까지 같이 일한 동료를 지부장님, 지부장님 하고 부를 수 있냐”고 빈정댄 거예요. 우리가 그 과장을 불러서 사과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조합원들이 직접 나섰어요. “니가 우리 지부장을 무시했으면 우리도 너를 무시하겠다”고 하면서 그 과장 이름을 대놓고 부르기 시작한 거죠. 그 양반 이름이 주○○였는데 “저기 주○○이 가네” “야, 주○○이” 이런 식으로 부른 거예요. 하도 그러니까 나중에 이 사람이 노조에 찾아와서 사과했어요.

또 한 번은 노무과장이 자기가 “상여금을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노조간부들에게 한 턱 쏜 적이 있어요. 우리는 상여금이라는 이름조차 몰랐을 때였는데, 그걸 보고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가져 가냐”고 난리를 쳤더니 노무과장이 겁을 먹고 “본사 대표이사를 만나게 해 줄 테니 노사협의를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그게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조합원들이 직접 나서서 생산량을 떨어뜨렸어요. 연장근로 안 하고 8시간만 일하겠다, 일요일도 근무 안 하겠다고 했더니 회사가 난리가 난 거죠. 대의원이 결의를 해서 8시간 근무하고 사무실에 모여서 대책회의하고 노래 부르고 그랬더니 밤 11시가 돼서 상여금을 주겠다고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50% 상여금을 받았어요. 조합원 투쟁에 의해 처음으로 쟁취한 상여금이었기에 그 승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여성사업장이지만 모성보호는 ‘남의 일’
간호사 임신순번제 ‘악명’
하혈하면서 대체근무자 기다리다 유산한 제빵기사


연윤정 : 권미경 위원장께서는 노조운동을 하면서 어떤 걸 먼저 바꾸셨어요.

권미경 : 저한테 가장 절실한 것부터 해결해야 했어요.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응급수술을 하면 다음날은 유급 오프를 부여하는 ‘수면오프’를 단협에 만들었어요.

여성이 80%인 사업장인데 모성권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어요. 임신순번제라는 얘기도 있었잖아요. 기혼여성이 많으니까 얘가 임신하면 내가 불안한 거예요. 나도 임신해야 하는데, 쟤가 임신하면 출산휴가는 어떻게 맞추지?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3교대 근무하는 곳에서는 더더군다나 임신을 반기지 않아요. 야간근무에서 제외시켜야 하잖아요. 그래서 병원이 만들어 놓은 게 임신 앞뒤 3개월은 (야간근무를) 안 하고 중간에는 해라, 그걸 본인들에게 서약서를 받았어요. 그래서 유산이 빈번했죠. 2011년에 임산부 야간근무 전면금지를 주장했어요.

병원이랑 싸우는 것보다 힘들었던 건 현장에 있는 오래된 경력자들과의 싸움이었어요. 번표(근무표)에서 본인들이 유리한 걸 해야 하는데 임산부들을 야간근무에서 빼 주고, 자기가 야간근무를 대신해야 하니까 힘들었죠. 임산부는 무조건 야간근무 안 되게끔 하는 데 1년 정도 걸렸어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건데 그땐 그랬죠.

임종린 : 하루에 빵을 어느 정도 생산하지 못한다고 해서 점포가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근데 이 회사는 대체근무자가 오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가 없는 구조예요. 저희 조합원 한 명이 힘들게 임신했는데 근무 중 하혈을 심하게 한 일이 있었어요. 병원에 가야 한다고 회사에 전화했더니 관리자가 뭐라고 했냐면 대체인력이 없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대요. 그래서 그분이 매장에서 3시간 동안 하혈하면서 대기하다가 유산했어요.

노조를 하면서 들여다보니 그런 일들이 많았던 거예요. 임신을 해도 사람이 없으면 만삭까지 일하고, 유산을 해도 자기 연차로 쉬고 그랬대요.

더 웃긴 건 기사가 임신 사실을 알리면 관리자들이 하는 첫말이 뭔 줄 아세요? “너 나한테 왜 그래”였대요.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너까지 왜 임신을 해서 나를 힘들게 하냐 그런 거죠. 지회가 문제제기했더니 ‘직원이 임신했을 때 말해야 하는 내용’을 규칙으로 만들었더라고요. 첫째가 축하한다고 말하기, 뭐 이런 식으로요. 아니 이게 규칙으로까지 만들어야 하는 건가요? 인식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는데…. 말하고 나니 더 슬프네요.

권미경 : 여성사업장인데도 남성 중심적으로 만들어진 단협도 문제였어요. 예를 들면 할아버지와 시부모의 경우 조가·경가가 되는데 외조부모에 대해서는 안 된다든지, 진료비 감면제도는 시부모는 50% 감면해 주면서 친정 부모는 30% 감면밖에 안 해 주는 등 차별을 한 거예요. 연세의료원의 급여나 복지가 좋아 보인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 안에 남녀 불평등한 차별이 존재했던 거죠. 이런 걸 바꿔 냈어요.

연윤정 : 파리바게뜨 저임금 문제는 해결이 됐나요.

임종린: 저희는 복수노조인데, 교섭권을 한국노총에 뺏겼어요. 그쪽은 남성 관리자들이 주축이 된 노조인데, 이번 임금교섭 과정에서 장기근속자들에 대한 대우를 해 주고 싶었다면서 관리자 임금을 확 올렸더라고요. 그쪽 노조간부들이 조합원들에게 얘기하는 걸 들어 보면 “나이 먹고 현장에서 일하는 거 쪽팔린다. 진급해야 한다. 형이 날 끌어 주기로 했다”는 식으로 얘기해요. 자기들도 기사들 임금이 낮은 걸 아는데 이걸 개선하려는 게 아니라 관리자가 돼서 관리자 임금을 올리는 식으로 하는 거예요. 저희가 느끼기에는 남자들만 관리자가 되고, 관리자 임금만 올라가는구나 하는 거죠.

“여성비정규직 문제 해결, 대기업 정규직들은 뭐하나”

연윤정 : 112년 전 여성노동자들이 외친 요구와 지금 여성노동자들의 요구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순영 : 112년 전 여성들이 일할 권리를 달라고 외쳤는데, 지금 우리 현실을 보면 여성 비정규직들은 일할 권리도 없어요. 여성 비정규직의 경우 너무 어렵잖아요. 나는 노조가 각성을 해야 한다고 봐요. 사실 민주노총이 여성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나요? 비정규직 대부분이 여성이고 어려운데 노동조합이라는 한 공동체라면 대기업노조에서 이런 데 지원도 해 주고 같이 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안 그러잖아요. 여성 비정규직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하고 투쟁도 해야 하지만, 같은 공동체 운명 속에서 큰 노동조합들이 한배를 탄 것처럼 지원하고 함께 가지 않으면 어렵다고 봅니다.

연윤정 : 권 위원장께서도 서울시의원을 하셨잖아요. 참정권 문제는 뼈아프게 다가올 것 같아요.

권미경 :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노동계 비례대표가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기 보다는 ‘노조활동 한 게 결국 본인 정치활동을 위한 거였구나’ 그런 반응이더라고요. 지난 10년간 노동자 정치활동이 왜 필요한지 끊임없이 설득하고 교육한 과정이 있었는데도, 결국은 그런 시각인 거죠. 여성이 미약하나마 지방의회라는 정치권력에 들어섰을 때 ‘자랑스럽다’거나 ‘그 안에서 뭔가 해 보려는구나’라는 시선보다 ‘우리 노조활동을 소홀히 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보니까.(한숨) 지방의회 내에서도 110명 시의원 중 여성이 10%밖에 안 됩니다. 그 10% 중에서도 재선은 딱 1명이었어요. 남성들이 공고하게 만들어 놓은 방에 여성 한두 명 보인다고, 여성들에게 많은 것을 해 줬다고 주장하는 사회예요. 여성이 대거 진입하지 못했을 때 결국 우리는 소수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연세의료원만 봐도 그래요. 여긴 여성이 80%인 사업장이니까 당연히 여성관리자 비율이 높고 노조간부들도 여성이 많은 건데, 이걸 가지고 너희들은 성평등을 이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런데 114년의 역사를 지닌 연세의료원에서 여성병원장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어요. 이런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여성노동자들 처우개선 몇 가지 한 걸 두고 마치 전부 다한 것처럼 하는 거죠.

임종린 : 화섬식품노조에서도 수도권에서 대표자회의를 하면 40명 정도 모이거든요. 가면 여성이 3명밖에 없어요. 지회장 2명에, 한 명은 대리해서 오는 사무장까지 여성이 딱 3명이에요.

노조(지회) 처음 만들었을 때 화섬식품노조에서 간부를 세워야 한다고 하대요. 쟁의부장·조직부장도 하고, 여성부장도 만들래요. 이해가 안 됐어요. 제가 여자고, 조합원도 대다수가 여자인데 왜 여성부장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우리는 남성부장을 세우겠다고 했죠. 관철되지는 못했지만요.(웃음)

연윤정 : 최 전 의원님께서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최순영 : 현장에 나가 보면 투쟁에 너무 찌들어 있는 게 안타까워요. 우리 (YH)조합원들이 그랬듯이, 그렇게 하다가 현장을 떠나면 다시는 투쟁을 안 하고 싶어져요. 그런데 현실을 봐요. 투쟁을 안 할 수가 있나요? 투쟁은 평생 내 삶이니까 좀 즐겁게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투쟁하는 사람들을 좀 쉬게 해 주는 상을 마련하자고 해서 ‘김경숙상’을 준비했던 겁니다. (김경숙 열사는 1979년 YH무역 위장폐업에 반발해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다 그해 8월11일 경찰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여성노동자회와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는 열사를 기리기 위해 2014년 김경숙상을 제정했다.) 여담인데, 전태일노동상 받기를 다들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그거 받으면 더 투쟁해야 하니까.(웃음)

임종린 : 아무렴요. 빠져나갈 수가 없죠.(웃음)

최순영 : 그래서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쉬라는 의미에서 김경숙상을 만들었어요. 이제 이 나이 먹고 어디 가서 위장취업을 할 수도 없고. 후배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해야죠.

“노조가 직장내 민주화를 사회운동으로 만들어야”

연윤정 : 권 위원장께서는 노조활동하면서 어떤 게 가장 고민스러운가요.

권미경 : 지금 2030 청년들이 노동조합을 기피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어요. 이명박 정부 때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이라면서 신규입사자 초봉삭감을 했는데 공기업 노조들이 동의했습니다. 물론 초반에는 반대했지만 앞으로 들어올, 실체가 없는 후배들의 임금을 깎는 거에 결국 동의했어요.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게 해서 받아들여진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2030 세대들의 삶은 팍팍해졌고 연애와 결혼, 출산,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N포 세대로 만들었다는 것, 이 부분은 적어도 기존 노조활동을 했던 기성세대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봐요. 그런 젊은 세대들을 나만 아는 이기적인 애들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직장내 괴롭힘 문제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촛불을 들어 대통령을 바꿨지만 정작 직장에 있는 사장은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잖아요. 여전히 서열주의·남성주의 문화가 심각하죠. 밖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는 꼰대가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노조가 세상을 바꾸는 민주화를 외치기 전에 직장내 민주화를 먼저 얘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간호사 태움문화도 서열 중심 문화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인격모독까지 하면서 가르치는 게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방법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죠.

결국 이런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안에서 바꿔야 하는데, 노조가 직장내 민주화를 사회 전반적인 운동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그런 걸 깨우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임금인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비정규직 없는 세브란스 만들기’에는 동의하지만 내 월급이 깎여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내는 것도 노동조합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그 고민이 제일 커요.

임종린 : 이상하게 기사들이 파리바게뜨에만 들어오면 자존감이 낮아져요. 점포에서 혼자 일하는데 회사도 상대해야 하고 점주도 상대해야 하니까요. 점주들도 나이 어린 여자기사를 선호해요. 이유는 말 잘 듣고 얘기했을 때 반발 안 하니까요. 그런 구조에서 일하다 보니 자존감이 더 낮아지는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문구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예요. 저는 설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쳐야 바뀌고 자존감이 안 떨어지는데 문제는 여기가 설칠 수가 없는 구조예요. 혼자서 일해야 하니까. 그래서 저 같은 경우 노조활동을 하면서 임금문제는 사실 좀 부수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기사들이 서로 연결돼서 연대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사들이 설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아요.

연윤정 : 여성노동자의 ‘빵과 장미’가 실현되기 위해 이거 하나만큼은 꼭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나요.

최순영 : 하나가 아니라 너무 많은데…. 제일 중요한 건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이 인정돼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에 가사노동자들이 1만명이 넘어요. 그런데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잖아요. 개인이 집에 가서 일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누구냐부터 해서 복잡한데,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권미경 : 여전히 직장민주화입니다. 여성들이 구색 맞추는 수준에 만족하고 산다면 200년이 지나도 지금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여성휴게실을 만들었어요.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이 다 사용할 수 있는 여성휴게실을 만들었더니, 남성들이 또 문제제기를 하더라고요. 왜 남성휴게실은 없냐고. 성인지 관점에서 평등한 세상으로 가기 위한 과정을 어떻게 밟아갈지가 고민이죠.

임종린: 정의당 당원인데요. 이번에 총선 비례대표 경선 공보물을 봤는데 페미니즘을 내세운 후보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당을 떠나서 페미니즘을 내세운 분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뭐라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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