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0일 부산교통공사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무인경전철 운행을 시작했다. 경전철을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인 지방자치단체들은 부산을 주목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기관사 없는 전동차가 운행되는 것은 처음이다. 공사는 부산지하철노조(위원장 박양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통을 단행했다. 하지만 개통 2주일 동안 크고 작은 운행사고가 잇따라 시민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경전철이 멈춰 서 시민들이 비상 개폐장치를 작동해 경전철에서 탈출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무인경전철은 과연 공사의 주장대로 안전한 것일까. 개통 3주째에 접어든 지난 15일 <매일노동뉴스>가 부산도시철도 4호선 현장을 찾았다.


지난 15일 오전 8시20분 부산 동래구 낙민동에 위치한 부산도시철도 1호선 동래역. 1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려는 부산 시민들로 환승통로가 북적였다. 동래역 1·4호선 환승통로는 다소 긴 편이다. 에스컬레이터만 5번을 갈아타야 한다. 인근에 지하도로가 있어 환승통로가 길어졌다고 한다.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은 부산시민 이차우(60)씨는 “병원 재활치료를 위해 지하철을 이용한다”며 “나이 먹은 사람은 환승하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고 말했다.

4호선 승강장에서 안평행 경전철을 탔다. 경전철 안 좌석은 승객들로 꽉 차 있었고 서 있는 승객은 많지 않았다. 통로가 좁아 열차 안을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뻗은 승객들이 발을 의자 쪽으로 끌어당겼다.

일반 전철과 다른 점은 기관실이 없어 열차 앞뒤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전철 앞뒤에는 비상시 수동으로 운전할 수 있는 운전대가 있지만 열쇠로 잠겨 있었다. 열차에는 고무바퀴가 달려있기 때문에 일반 전철에 비해 소음이 덜한 편이었다. 다만 위아래로 약간의 덜덜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경전철 안에는 한 명의 안전운행요원이 탑승해 있었다. 이 요원은 “무전을 통해 종합관제실과 상황을 주고받는다”며 “승객들은 주로 열차 이용시간이나 환승역 같은 간단한 사항만 물어본다”고 말했다. 부산교통공사는 개통 이후 크고 작은 운행장애가 잇따르자 최근 ‘4호선 조기안정화 대책’을 발표하고 오는 6월16일까지 기관사 자격증을 가진 안전운행요원을 탑승시키기로 했다.



6월까지 안전운행요원 탑승

부산도시철도 4호선 건설공사는 2003년 시작돼 지난해 마무리됐다. 국가에서 7천352억원, 부산시에서 5천264억원 등 총 1조2천616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경전철 1량의 길이는 9.64미터, 폭은 2.4미터, 높이는 3.5미터다. 열차의 기동부터 출발·주행·정차·기지 입고까지 전 과정이 자동열차방호장치(ATP)·자동열차운전장치(ATO) 시스템에 기반한 완전자동무인운전으로 운행된다.

지난달 30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운행을 시작한 4호선에서 크고 작은 운행장애가 잇따랐다.<표 참조> 이달 7일 오후 12시9분 영산대역에서 동부산대역으로 달리던 열차가 역을 200미터 앞둔 지점에서 열차종합제어장치 고장으로 멈춰 섰다. 당황한 승객들은 비상열림장치를 눌러 열차 문을 열었고, 20여명이 선로 비상대피통로를 이용해 역까지 걸어나왔다. 9일 오전 5시16분에는 안평역에서 출발하려던 미남행 열차에 신호장애가 발생해 전 구간 열차 운행이 5~12분씩 지연됐다.
 

 
공사는 이날 오후 1시19분까지 수동운전모드로 전환해 운행했는데, 기관사뿐만 아니라 출입문감시·탑승객 안내자·차량 전문가 등 3명의 인원이 탑승했다. 4호선 열차 승강장에는 기관사가 승객의 출입을 확인할 수 있는 후사경과 CCTV가 없어 수동운전으로 전환할 경우 별도의 안내자가 필요하다. 이날 기관사는 승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차를 운행해야 했다.

개통 2주일 동안 운행장애 7건 발생

공사는 4호선이 5중 안전장치(출발안전·탈선방지·비상제동·전력차단·이중장치)를 갖추고 스크린도어·승객 비상대피로 설치·객실 안전장치(비상통화장치·객실 내 CCTV·화재감지기·열차비상정지장치) 등을 둔 점을 들어 “안전성을 한층 강화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반면 부산지하철노조는 “기계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인 경전철 운행에 반대하고 있다. 4호선은 일반 전철이 전동차 위쪽에서 전류를 공급받는 것과는 달리 선로 한켠에 750볼트의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다. 박양수 노조 위원장은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를 본 시민들은 열차 안에서 화재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일단 문을 열고 탈출하게 될 것”이라며 “선로 안에 걷는 사람이 충분히 몸으로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 전류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감전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일 사고처럼 승객이 비상개폐장치로 열차 문을 열었을 경우 선로에 공급되던 전원은 자동으로 차단되게 돼 있다. 사고 당일 승객이 문을 열자 열차 안의 불이 꺼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시스템 고장 같은 만약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노조가 우려하는 지점이다. 박 위원장은 “선로에 전류가 흐르는 상태에서는 시민뿐만 아니라 작업자도 못 들어가도록 조치해야 한다”며 “전류가 흐르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표시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로 주변에는 간간이 ‘고압위험 DC 750볼트 급전중’이라는 위험표지가 있었다. 하지만 전류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이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비상대피통로로 휠체어 움직일 수 없어

공사는 4호선의 편리성도 강조한다. 예를 들면 역당 3.8대(전체 49대)의 엘리베이터와 9.8대(총 127대)의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노약자와 장애인이 불편 없도록 편의시설을 완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열차 폭(2.4미터)이 좁아 휠체어를 탄 승객은 열차 안에서 휠체어를 돌릴 수가 없었다. 남원철 노조 교육부장은 “비상대피로의 폭이 60센티미터”라며 “비상상황시 휠체어에 탄 시민은 비상대피로를 이용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스크린도어가 고장나 문이 열렸을 경우 취객이 선로에 떨어지면 감전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노조는 인구 밀집지역인 반송지역을 통과하는 주요 노선에서 무인경전철을 운영하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도심에서 소도심을 이어 주는 지선 개념의 용인·의정부·김해 경전철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4호선은 6량1편성(열차 정원 532명)으로 구성돼 있는 반면, 김해경전철(2량1편성·304명)·의정부경전철(2량1편성·236명)·용인경전철(1량1편성·226명) 등은 열차 구성과 정원이 적다. 3개 경전철의 역은 모두 지상에 있는 반면 부산도시철도 4호선에는 9개의 지하역이 있는 점도 다르다. 남 부장은 “4호선이 벤치마킹한 일본 도쿄의 유리카모메 경전철은 도심에서 주변 인공섬을 연결하는 관광노선”이라며 “반면 4호선은 출퇴근시 이용하는 시민과 무임우대승객(37%)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공사측은 “중전철의 시간당 이용인원은 3만명에서 5만명, 경전철은 1만명에서 3만명”이라며 “예상 인원을 감안해 경전철을 도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해외 14개국에서 57개의 무인경전철을 운행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57개 노선 중 32개는 공항 내 터미널 사이를 잇는 단순 이동노선”이라며 “무인 운전 방식을 채택한 도심구간 운행 전철은 25개에 불과하다”고 재반박했다.



“무인시스템 시민들에게 인지시켜야”

이날 4호선에서 만난 시민 중에는 의외로 4호선이 무인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자녀의 병원치료를 위해 부산 장전동에서 화명동까지 자동차를 운전하다 4호선 개통 이후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주부 우은영(43)씨는 “이동거리가 10분 정도 단축되고 아이들도 자동차와는 달리 열차 안에서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면서도 “무인경전철이라는 얘기는 전혀 못 들었다”고 의아해했다. 포항에서 왔다는 시민 송호근(49)씨는 “무인으로 운영되는지 몰랐다”며 “아무래도 기관사가 없으면 안전부분에 신경을 못 쓸 것 같아 포항에 도입한다면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교통은 이동 과정 속에서 예측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기술적으로 무인운행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속단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2009년 4호선 무인운전을 반대하며 7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파업으로도 무인운전을 막아 내지는 못했다. 노조는 이달 1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올해 단체교섭에서 4호선을 유인운전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또 안전운행을 위해 차량에 독립된 기관사의 운전공간을 확보하고 선로에 급·단전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지난 15일 오후 부산시 노포동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박양수(45·사) 노조 위원장은 “무인운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안전을 확신하는 사람이 없다”며 “부산시민을 상대로 안전을 시험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계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첨단기계라고 홍보하지만 시운전 기간에도 개통 이후에도 뭔가 계속 고장이 났습니다. 비상으로 열차 문이 열렸는데 전력공급 차단장치가 고장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겠습니까.”
노조는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유인운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완전무인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다”며 “초기에는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안전운행요원을 투입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원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많은 예산이 투입됐기 때문에 번복하기 힘들다는 것은 결국 4대강 공사를 강행하는 논리와 같은 것 아니냐”며 “예산이 아닌 시민의 안전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잘못됐다면 판단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은 사람이 지켜야 합니다. 기계나 장비는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고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이 담보될 때까지 싸워 나갈 생각입니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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