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부 차원의 국가고용전략이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나가고 가까스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였던 지난 1월6일. 고용노동부는 국가고용전략 수립 계획을 밝혔다. 그런데 6월에 나온다던 국가고용전략은 한 달, 두 달 미뤄지더니 이달 12일에야 발표됐다.
반응은 냉담했다. 새로운 정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판단기준은 저마다 달랐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결같이 비판적이었다.

고용정책기본계획과 국가고용전략

국가고용전략과 같은 중·장기 국가고용계획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노동부는 2004~2008년을 내다보는 ‘중기 고용정책기본계획’을 세웠다. 5년마다 국가의 고용정책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른 것이었다. 중기 고용정책기본계획도 국가고용전략과 마찬가지로 관계부처와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만들어졌다.

다른 점이라면 국가고용전략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나왔고, 고용정책기본계획은 노동부장관이 주재하는 고용정책심의회에서 나왔다는 정도다. 쉽게 말해 ‘범정부 차원의 고용전략’과 ‘노동부 차원의 고용계획’이라는 차이다.
최근 노동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국가고용전략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노동시장정책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를 망라한 영역의 고용친화적인 정책 개편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단순히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근본적 문제인 경제와 사회를 고용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한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국가고용전략과 고용정책기본계획이 별반 다르지 않다. 비슷한 부분이 더 많다.
“경제성장률은 지속적으로 저하하고 있으며 고용흡수력이 저하되고 일자리 없는 성장이 우려된다.”
“지난 5년간의 고용정책은 대량실업 위기 극복에 치중했다. 그 결과 실업률은 3%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심화 및 인력수급 불일치 등으로 중장기적인 고용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상 고용정책기본계획)
“노동수요와 노동공급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가 심화되고 있다.”
“경기회복에 따라 일자리가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부터 고용창출은 둔화되고 분배상황도 악화되는 추세다.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에서 벗어나 성장과 고용이 동행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이상 국가고용전략)
2003년 10월 고용정책기본계획과 2010년 10월 국가고용전략에 나온 노동시장 분석이다. 문제인식이 비슷하다 보니 여성·고령자 등에 대한 대책도 대동소이하다.<표 참조>


‘안정’은 빠지고 ‘공정’으로 뒷북

고용정책기본계획과 국가고용전략이 고용의 유연성을 강조한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안정’이라는 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고용정책기본계획에는 “향후 고용정책은 사회안전망 보완 등으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고용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위해 임시·일용직이나 60세 이후 고용된 사람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비록 실시되지는 못했지만, 자발적 이유로 이직했더라도 장기실업 상태에 있는 경우에도 구직급여를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그런데 이달 발표한 국가고용전략에는 ‘안정’이 빠지고 ‘유연화’라는 말만 남았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내놓은 대표적인 조치가 사무경리·제품 및 광고 영업 등에 대한 파견확대, 신설기업과 청소·경비업체에 대한 기간제법 제외 등이다.
정부는 대신 ‘공정한’ 노동시장 구축을 위해 제조업 사내하도급과 건설현장의 하도급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서면근로계약 정착·임금체불 예방·최저임금 준수 등 3대 고용질서 강화방안도 발표했다.

이 같은 문제는 정부가 관련법에 따라 실시하는 감독이나 점검을 소홀히 해 발생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가고용전략에 이를 포함시켰다. 전형적인 ‘뒷북치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노동유연성만 강조한 결과”라며 “국가고용전략에 사회안전망과 고용안전망 확충이 포함돼야 한다고 수차례 전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동부는 국가고용전략에 대해 “경제가 성장해야 고용이 창출된다는 인식을 바꿨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자평했다.

노골적 성장에서 선순환으로 전환하긴 했는데…
 
사실 고용정책기본계획과 비교해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고용정책기본계획은 노골적으로 ‘성장’을 추구했다. 정부는 당시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기업의 지속성장을 지원해 고용수요 창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국가고용전략에서는 ‘성장과 고용의 동행’ 또는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을 강조하고 있다. 수출주도형 성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내수성장에 눈을 돌린 것도 이례적이다. 노동부는 “경제성장만 생각했던 경제부처들에게 고용을 중심에 놓고 고민하게 한 것은 성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정책을 보면 우려스럽다. 정부 계획이 헛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성장 위주 경제정책을 주도해 온 기획재정부도 예산정책에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 총 18개의 주요 추진 과제 중 지역일자리 공시제와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한 제도개선 등 11개가 노동부가 단독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이 가운데 예산이 소요되는 분야는 대부분 일반회계가 아닌 고용보험 기금사업이다. 상용형 시간제와 근로시간단축형 임금피크제 등이 대표적이다. 기재부와 관련 있는 사업은 △사회적기업 육성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방안 △고용확대형 재정 추진뿐이다.

기업이 1명을 고용할 때마다 1천만원의 세금을 공제하는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제도’를 신설하겠다는 정도가 눈에 띈다. 그러나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에 대해 “세액공제 효과가 노동비용 증가보다 적어 일자리창출 효과가 미비할 것”이라는 우려를 밝혔다. 이상동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경제연구센터장은 “같은 재원을 쓰더라도 고용에 많이 투자해야 하는데, 고용정책 예산의 90%를 노사가 내는 고용보험기금으로 충당하는 희한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명무실한 고용영향평가

각 부처 주요 사업의 고용창출력을 평가하기 위해 올해 도입된 고용영향평가제도는 ‘고용 중심의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분류되지만 이마저도 ‘사후평가 위주’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각 부처가 예산을 쓰기 전에 평가를 해야 하는데, 예산을 쓰고 나서 뒤늦게 평가하는 것이다. 지난 8월 노동부가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 4개 부처 5개 사업을 평가한 것이나, 현재 진행 중인 국토해양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노동부는 사후평가를 단계적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르면 각 부처가 먼저 요청할 때만 사전평가를 할 수 있다. 평가 이전에는 사업을 시작할 수 없는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와 비교된다. 이상동 센터장은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고용 중심으로 예산을 운용하고 사전에 고용영향평가를 해 결과가 나쁘면 제재를 가하는 등 최소한의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간제 상시화, 파견업종 확대되나
노동부 “빠르면 내년 초부터 노사정 논의”
고용노동부는 지난 12일 국가고용전략을 발표하면서 “신설기업이나 위탁계약을 맺은 청소·경비업체 기간제 노동자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사용기간 2년이 지나도 정규직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기간제 노동자가 상시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노동계는 이와 관련해 정부로부터 어떤 언질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신설기업 기간제는 2년 뒤 절반 정도만 직장에 남고, 위탁 청소·경비업체의 경우 용역계약이 끝나면 고용종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기간제법 적용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기업들의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사무경리·광고 및 상품판매 영업원·웨이터 등으로 파견허용 업종을 확대하는 것은 4월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당초 노동부 의뢰를 받은 외부기관이 수요조사를 벌인 결과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단순 제조공정과 운수업에 파견수요가 많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노동부는 “조사가 미비했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홍보도우미 및 판촉원 △생산 및 품질관리 사무원 △웨이터 △제품 및 광고 영업원 △자재관리 사무원 △가축사육 종사원 △기타 판매 관련 단순종사원 △주방보조원 △경리사무원에 대해 수요조사를 다시 벌이기로 했다.
파견법과 관련해 국가고용전략에 포함된 내용은 이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파견허용 업종이 9개 업종으로 확대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파견허용 업종의 경우 파견법 시행령 개정사항이기 때문에 국회 의결이 필요 없다. 반면에 신설기업 기간제를 기간제법 예외로 하려면 기간제법을 개정해야 한다. 노동부는 빠르면 내년 초부터 노사단체와 논의를 시작해 2011년 안에 법과 시행령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국가고용전략 내용은 방향만 제시한 것으로, 정부의 계획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며 “충분한 대화를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태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