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쉽진 않았다. 걸을수록 정신은 또렷해졌지만 육체는 힘들다고 아우성이었다. 절뚝거리지 않으려 애써 내딛는 발걸음이 영 어색했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 대장정에 나선 도보행진단이 25일 인천에 도착한다. 지난 4일 부산에서 출발해 21일 만에 578킬로미터를 걸어 서울 입성을 눈앞에 둔 것이다. 이들은 이달 30일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 맞춰 27일간 640킬로미터를 걸어 전국을 순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노동자(勞動者), 다(太). 노동권·산재보험을 보장하라’는 구호 하나를 들고….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0일 아산~평택 25.9킬로미터 구간을 특수고용노동자들과 함께 걸었다.
 

우리는 노동자(勞動者), 다(太)
 
바람은 시원했고, 날씨는 선선했다. 구름 사이로 언뜻 보이는 하늘은 푸르렀다. 걸을수록 저려 오는 다리만 빼고는 세상은 편안한 듯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귀청을 때리는 차량 스피커의 기계음.
“시민 여러분, 특수고용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도급·위탁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프리랜서·개인사업자로 불리면서 노동권·사회보험도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한 신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입니다.”

걷는 내내 차량 스피커를 통해 반복되는 방송 내용은 이랬다. 97년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대다수 레미콘 운전사는 레미콘공장과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였다. 임금을 받고 일했고, 회사에서 4대 보험도 가입했다. 그러다 레미콘 회사들은 90년대 말부터 레미콘 운전사들에게 차량을 강매하기 시작했다. 고용관계도 도급·위탁계약으로 바뀌었다. 말이 좋아 사장이고 개인사업자지, 기름 값이나 차량유지비는 전부 운전사 개인 몫으로 전가됐다. 4대 보험에는 가입할 수도 없게 됐다. 그럼에도 하는 일은 똑같았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했다. 지시를 어기면 계약이 해지되기 때문이다. 물가는 계속 올랐지만 운송비는 몇 년째 그대로다.

레미콘 운전사들은 불합리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노조를 만들어 활동했다. 뭉쳐 싸우니까 운송비도 오르고 근무여건도 개선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말했다.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사회보험의 보호도 받지 못합니다. 그럼 우리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받아야 합니까.”

고행의 시작, “오늘은 수도권 진입입니다”
 
“자, 정각 8시에 출발합니다. 화장실 갔다 오실 분들은 서두르세요.”
20일 새벽,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민주노총 충남본부 사무실 앞은 부산했다. 오전 6시30분께부터 하나 둘 눈 뜨기 시작한 도보행진단원들은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세수를 했다. 사무실 근처 해장국집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도 마쳤다. 이들은 전날인 19일 충남 목천에서 아산까지 26.8킬로미터를 걸은 뒤 민주노총 충남본부 사무실에서 눈을 붙였다.
이날부터 도보행진에 참여하는 이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보행진단 실무책임자인 석권호(41)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 국장은 연신 “8시 정각 출발”을 외쳤다. 도보행진단은 전날까지 15일째 총 461킬로미터를 걸었다. 걷는 데는 이골이 났다. 그래도 규율은 있었다. 오전 8시5분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간단한 출정식과 함께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첫걸음을 뗐다.

“자, 오늘은 드디어 경기도, 수도권 진입입니다.”
누가 외쳤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 말에 힘이 났는지 처음부터 속도를 높였다. 고행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길을 나선 사람이 기자와 사진기자를 포함해 17명. 박대규 도보행진단 단장(건설노조 부위원장·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 의장)과 석권호 국장은 부산에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걸었다. 그리고 12일째 동참하고 있는 고성진 보험설계사노조 위원장과 이영철 건설노조 교선실장. 3일째 동행에 나선 박창식 민주노총 충남본부 부본부장과 하동현 건설노조 충남지부장을 제외한 11명이 이날 처음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기형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 국장을 비롯해 민주노총 충남본부와 건설노조·플랜트노조 충남지부 간부들, 지역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출발 후 얼마 안 가 이날의 목적지인 평택에서 온 한지희 민주노총 평택아산지부 사무국장이 결합하면서 이날 동행자는 18명이 됐다.
 
적응 안 되는 속도, 시속 5.5킬로미터
 
차량 스피커에서 연신 쏟아지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요구가 세상에 전달되기에는 거리가 너무 한산했다. 갈 길도 멀었다. 끝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충남 아산과 경기도 평택을 잇는 45번 국도 외곽 길. 행진단은 첫걸음을 뗀 지 40여분 만에 45번 국도에 들어섰다. 널찍한 차량용 표지판에는 ‘평택 45’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행진단은 앞뒤로 호위차량을 세우고 한 개 차로를 점거한 채 걸었다. 경찰의 제지는 없었다. 행진단 동향 파악을 위해 가끔 지역별로 정보과 형사가 함께 걸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외곽도로에 들어서니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다. 서울과는 다른 낯선 풍경이다.

걷다 보니 길가에 ‘평택 25킬로미터’라고 쓰인 작은 표지판이 나타났다. 이 표지판은 평택에 도착할 때까지 1킬로미터 구간마다 하나씩 서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표지판을 기준으로 시간을 재어 보니 10~11분에 1킬로미터씩 걷고 있었다. 행진단은 3시간30여분 만에 15킬로미터를 걸어 충남 둔포에 도착했다.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시속 5~5.5킬로미터 속도로 걸은 셈이다. 경기도 평택에도 예정시간인 오후 4시보다 1시간 빠른 3시5분께 도착했다. 기자의 다리는 둔포에 도착하기 전부터 비틀거렸다. 힘들게 완주는 했지만 한계에 다다른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함께 절뚝거리며 서울에 올라온 사진기자는 “천천히 여유 있게 걸어도 될 걸, 경보 수준으로 걸으면서 더 힘이 들었다”고 푸념했다. 경보 수준은 아니었을지라도 행진단의 걸음 속도는 매우 빨랐다. 사진기자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행진단 앞뒤를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오후에 나타난 뜻밖의 응원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출발 후 1시간30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9시50분께 멀리서 생수 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충남에 위치한 금속노조 대성MPC지회 간부였다. 그는 “같이 걷지는 못하지만 물이라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 번째로 휴식을 취했던 오전 11시8분께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소속 간부들이 생수와 초코파이를 전달하고 갔다. 점심식사는 충남 둔포까지 찾아온 김정욱 민주노총 평택아산지부장과 간부들이 제공했다. 서맹섭 금속노조  쌍용차비정규지회장도 함께했다.

오후가 되자 생각지도 않았던 응원군이 나타났다. 길을 지나던 한 차량에서 사람이 내리더니 단원들에게 배즙상자를 쥐어 주고는 금세 차를 타고 떠났다. 배즙상자에는 캔커피 30여개가 가득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평택지역 공장에 다니는 금속노조 조합원인데, 행진단을 보고는 일부러 근처 가게에서 커피를 사서 따라왔다고 한다.

행진 12일차인 16일에 도착했던 대전에서는 서로 밥을 사겠다는 지역노조끼리 싸움(?)이 벌어질 뻔했다고 한다. 민주노총 대전본부의 중재로 건설노조·화물연대 대전지부가 각각 점심과 저녁을 사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행진단 도착 소식을 뒤늦게 접한 공공운수노조 대전지부가 “우리도 밥을 사겠다”고 나선 것이다. 박대규 단장은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라며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마음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택에서는 건설노조 수도권본부가 행진단을 맞았다. 김승환 건설노조 수도권본부 사무국장은 “여기까지 따라와 주신 충남지역 동지들께 감사하지만 오늘로서 충남의 역할은 끝났다”며 “여기서부터는 먹고 자는 모든 것을 경기·인천 등 수도권지역 노조들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일부터는 최소 20여명이 매일 행진단에 결합할 것”이라며 “일정 조율도 모두 끝난 상태”라고 덧붙였다.
 
“하루라도 좋아요. 얼마나 고마운데”
 
지역마다 신세를 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소식을 미리 전하지 않아도, 부탁하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찾아왔다. 단원들은 그들을 보면 힘이 솟고 용기가 난다고 했다. 방문만 받는 것은 아니다. 행진단은 지역을 돌며 KEC·발레오공조·다스·기아차 아산공장·평택 쌍용차공장 등 투쟁하는 현장은 어김없이 방문해 지지의사를 밝혔다. 고성진 보험설계사노조 위원장은 “서로 용기를 주고 용기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일정을 함께할 생각은 없었다”며 “이젠 체력이 받쳐 주는 한 계속 걸을 생각”이라고 해맑게 웃었다.

하루 평균 22~25명이 행진에 참여한다. 그렇게 함께한 이들이 연인원으로 350~400여명에 달한다. 이날 행진에 처음 참가한 김갑수 삼성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의장도, 임재경 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 노동안전국장도 한목소리로 “행진단이 충남지역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오래 전부터 함께 걷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하루 평균 5명이라도 함께 걸으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대장정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예상보다 서너 배 많은 이들이 매일 함께 걷고 있다.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는 힘이 된다. 박대규 단장은 “오래 걸었다고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하루 걸은 동지들이 더 걱정”이라며 “도보행진은 사흘째까지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지역 동지들은 하루 걷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현장에 돌아가 자신의 활동을 펼쳐야 하는 사람들”이라며 “단 하루만 같이 걸어 줘도 얼마나 고마운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억 속으로 사라진 특수고용직
 
특수고용노동자 대장정은 건설노조에서 계획을 세우고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됐다. 민주노총이 총연맹 차원의 사업으로 이를 재차 확정하면서 지역 노조간부들이 속속 결합했다.

특수고용직 문제는 어느새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2006~2007년 특수고용직과 관련한 4개의 법안이 17대 국회에 제출됐다. 특수고용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민주노총 차원의 집회도 연이어 열렸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런 사이 2000년 60만~70만명에 불과했던 특수고용직은 2008년을 지나면서 200만명을 넘어섰다. 레미콘·화물·퀵서비스·골프장경기보조원·학습지교사·보험설계사·간병인·대리운전사…. 직종도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를 설립할 수도 없고, 있던 노조마저도 없애라는 정부의 시정명령이 내려오고 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입안 단계에서는 “얼토당토않은 계획”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특수고용노동자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고성진 위원장은 “보험설계사를 대상으로 수년째 조직화 사업을 벌였지만 노조조차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진전이 없었다”며 “법·제도 개선 없이는 현 상황을 극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끝나지 않을 대장정
 
아픔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단 하루를 걸었던 기자도 ‘육체의 아픔’을 사나흘이나 간직해야 했다. 특수한 신분으로 살면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아픔은 10년이 넘었다.

이날 행진단의 유일한 여성이었던 한지희 사무국장은 도보행진을 마치면서 “아스팔트를 걸으면서 무릎이 무척이나 아팠지만 그동안 특수고용직 문제를 잊고 살았구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고 전했다.

대장정은 이렇게 도시와 도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가며 계속되고 있었다. 도보행진단의 걸음은 이달 30일로 끝나지만 이어진 마음들이 그 끈을 놓지 않는 한 대장정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勞動者), 다(太)’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가입률 고작 9.98%
4개 직군만 허용 … “실효성 없다” 비판 쏟아져
특수고용직은 그동안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신분이라는 이유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다. 일하다 다쳐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 특수고용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자 정부는 2007년 12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개정했다. 레미콘운전사·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골프장경기보조원 등 4개 직군에 한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4개 직군의 산재보험 적용률은 9.98%에 불과하다.
최근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4개 직군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레미콘 운전사 26.9%, 보험설계사 10.5%, 학습지교사 7.3%, 골프장경기보조원 2%에 그쳤다. 4개 직군 전체 인원 38만9천622명 중 9.98%인 3만8천900명만이 산재보험에 가입했다.
산재보험 적용은 특수고용직의 오랜 요구였다. 실제로 노동사회연구소가 조사한 설문에서도 4개 직군 종사자의 88%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산재보험 가입률이 낮은 이유는 ‘해당자가 적용 제외 신청을 하면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임의가입 조항 때문이다. 도보행진단은 “산재보험 적용대상을 특수고용직 전 직군으로 확대하고 산재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내용으로 법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홍희덕 의원도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가입이 유명무실화되지 않으려면 당연·강제가입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봉석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