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 옛 기륭전자 사옥 부지.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분회장과 송경동 시인이 포클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날로 나흘째다. 나머지 건물이 모두 철거된 가운데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경비실 옥상에서는 두 명의 조합원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날로 엿새째다. 지난 6년간 ‘안 해 본 것 없이’ 극한 투쟁을 벌여 온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 요구는 한결같다.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

기륭전자 해고자들은 공단지역 중소제조업체 내 불법파견을 상징한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에 파견노동자 투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기륭전자는 정규직 없이 사내하청 노동자로만 생산라인을 운용하다 지난 2005년 7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을 기대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벌금 500만원만 냈을 뿐이다.
 

벌금으로 직접고용의 책임에서 벗어난 기륭전자의 사례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들에게 본보기가 됐다. 금속노조 서울남부지회가 노동자들을 설문조사하거나 상담한 사례에 따르면 서울디지털산단 제조업체들은 더 이상 직원을 직접 뽑지 않는다. 대신 파견인력업체가 수수료를 받고 인력을 공급한다. 더 큰 문제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고용환경이다.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됐기 때문이다. 기륭전자 해고자들이 ‘무모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최근 기륭전자 옛 사옥 부지에서는 아파트형 공장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해고자들이 공장부지에서 농성을 벌이며 버티자, 부지를 매입한 시행사 코트티앤디가 노사 간 교섭을 중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회사측은 “직접고용 요구만은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 이곳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단골 농성터가 됐다.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서산 동희오토 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지난 7월 “해고자 복직,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판을 벌였고, 최근엔 노동·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동조농성을 벌이고 있다. 동희오토는 완성차 제조라인을 외주하청화한 국내 첫 사례다. 최근 방영된 한 TV 시사정보 프로그램에 동희오토의 농성장이 소재로 등장했다. 당시 진행자는 시청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기아차 모닝을 만드는 노동자는 어느 회사 직원일까요?”

이백윤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은 “기아차를 만드는 노동자는 기아차 직원이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상식”이라며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은 이 같은 상식을 재확인해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 교사들이 1천일 넘게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학습지 교사의 임금이나 마찬가지인 '회원관리 수수료' 삭감에 반발해 농성을 시작했다.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각종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자신들의 노동현실도 함께 고발하고 있다.

유명자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지부장은 “월 20만원에서 100만원에 이르는 삭감 수수료를 원상회복하고,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실업수당과 업무상재해 보상 같은 노동기본권을 보장해 달라고 1천일 넘게 싸워야 했다”고 특수고용직의 처지를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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