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적 한-미 FTA 폐지하라. 굴욕적 반민주적 협상을 중지하라. 졸속 밀실적인 협상내용을 명백히 공개 홍보하기 전에 체결하지 마라.”

지난 2007년 4월 1일 택시노동자 허세욱씨는 뜨거운 불기운을 삼키면서 이렇게 외쳤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진행되던 서울 남산의 하얏트 호텔 앞에서 몸을 불살랐다. 그에 분신공양에 호응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그 해 6월 한-미 FTA 반대 총력투쟁과 정치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한-미 정부는 허세욱씨가 분신한 다음날 협상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그로부터 3년 후, 한-미 FTA 협정문은 국회 본회의에 계류 중이다. 한-미 FTA 협정문은 지난해 4월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했다. 지난 6월 말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정상 회담을 통해 한미 FTA 재추진을 언급하면서 재협상이 본격화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조정’이라 규정했고, 우리측은 ‘실무협의’라면서 파장을 줄이려 했다. 하지만 재협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미국측 입장은 분명하다. 미국산 자동차 수입규제를 대폭 완화하라는 것이다. 현재보다 한국 내 미국차 판매비율을 높여달라는 노골적인 요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전면 허용하라는 것이다. 국가 간에 합의한 협정문을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제적 관례에서 어긋난다. 그런데도 자국의 이익만 챙기려는 미국측 태도는 오만하기 이를 데 없다.

정부는 2007년에 합의할 당시 자동차 분야를 성공한 협상이라고 치켜세웠다. FTA 체결로 미국의 자동차 관세(2.5%)를 철폐하게 되면 한국 자동차 수출이 확대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이번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측이 자동차 관세 철폐를 상당 기간 연기하자는 제안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FTA 협정문 체결 당시, 한국은 자동차 관련 환경규제, 세제적용 제외 등 각종 특혜를 미국에 베풀었다. 그런데 자동차 관세 철폐마저 원점으로 돌리자는 미국측 요구를 수용하면 한국이 얻을 실익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협정문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미국 쇠고기 분야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그 문제가 현실화됐다. 미국의 쇠고기 수입 전면 확대 요구를 수용한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라는 범국민적 저항에 부딪쳤다. 결국 두 나라는 30개월 이하의 쇠고기 수입만 허용하는 쪽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한-미 FTA 협정문에 포함되지 않은 쇠고기 분야가 미국 요구로 정식 협상의제로 오른 것이다. 미국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의 전면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토록 중대한 협상이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고, 협상시한마저 촉박하다. 두 나라 정부는 다음달 11일 서울에서 열리는 20개 주요국(G20) 정상회의에서 재협상 합의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대로 가면 졸속으로 처리된 한-미 FTA 협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과 국회 비준에 목을 매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두 나라 정부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노동계가 공동대응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민주노총과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는 지난달 28일 ‘노동권 보호와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한미 FTA를 전면 재수정하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FTA를 체결한 나라들을 보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기보다 실업과 비정규직만 양산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양국 노총의 요구는 너무나 당연하다. 두 노총은 또 “한미 FTA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각국 의회를 대상으로 한미 FTA 비준 거부운동과 반대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한-미 FTA 협정문에 대해 두 노총은 한 목소리로 반대한다.

물론 각론에선 미묘한 차이가 있다. 두 나라 노총이 발표한 성명에서 이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미국노총은 FTA 협정이 발효되면 미국 내 제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한 반면 민주노총은 한국의 농업부문에 대한 추가적인 양보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두 나라 노총 간 FTA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득실을 고려하는 차이점은 있더라도 FTA 재협상이 졸속적이고 불평등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두 노총은 FTA 체결를 통해 더 많은, 질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노동조건과 제도가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나라 노총은 공동행보를 끝까지 고수할 필요가 있다. 다음달 11일에 개최되는 20개 주요국(G20) 정상회의에 대응해 우리나라에 오는 각국의 노총 대표와 노동단체 지도자에게도 연대와 지원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세계 각국 노동단체들이 두 나라가 합의할 FTA, 나아가선 FTA에 대한 재검토를 공론화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3년 전 온 몸을 불사르며 외쳤던 허세욱씨의 유지에도 부합하는 길일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