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는 다시, 비정규직법이다.

정부가 ‘비정규직보호법’이라 부르는 이 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3개 제·개정법률), 태어날 때부터 참으로 시끌벅적하게 말도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 법의 핵심내용은, 기간제노동자를 최대 2년까지만 고용할 수 있고 2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 법의 시행 2주년을 맞이했던 지난해 7월을 전후해 다시 한번 시끌벅적한 상황이 재연됐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했던 점은, 주기적 대량 해고를 양산할 것이라는 비판을 반박하며 비정규직노동자 보호법이라 주장했던 정부가 오히려 소위 ‘백만해고설’을 유포하며 호들갑을 떨었다는 사실이다.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는 상황이 연출되다보니 노동계 일각에서조차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물론 ‘백만해고설’을 떠벌리며 기간제의 고용연한을 확대하고자 하는 정부에 맞선 전술적 측면을 굳이 변명 삼을 수도 있겠지만), 2년이 다 되어 계약해지된 노동자의 수가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긍정적인’ 통계를 내세우며 마치 비정규직법을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비정규직법의 핵심이자 본질은 정규직 고용이라는 노동법상 고용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예외적·제한적으로만 인정되던 비정규직이라는 비정상적 고용형태를 또 하나의 정상적 고용형태로 등극시켜버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정규직법은 누가 뭐래도 악법이다. 가끔 나이나 집주소는 까먹더라도 이 사실만큼은 결코 잊어버리지 말자. 기간제노동자 고용연한을 규정하고 있는 기간제법 제4조보다 근로기준법 제23조(‘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과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를 삭제해버린 기간제법 부칙 제3항이 더 본질이고 악의 축이라는 얘기다.


2.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나주시 산하 보건소에서 한방허브보건소사업에 고용된 A는 2005년 8월16일부터 2009년 12월31일까지 수차례 계약기간을 갱신하며 계속 근무해왔고, 같은 보건소에서 건강생활실천사업에 고용된 B는 2007년 2월12일부터 7월30일까지, 이후 10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다시 2008년 2월1일부터 2009년 12월31일까지 계약기간을 갱신하며 계속 근무해왔다. 그런데 A와 B 모두 2010년 1월1일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해지(해고)를 당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듯 심플하다.

2년이라는 기간제노동자 고용연한과 초과 사용시 정규직 간주 규정을 둔 기간제법의 시행이 2007년 7월1일부터였고 당해 규정의 적용은 ‘이 법 시행 후 근로계약이 체결·갱신되거나 기존의 근로계약기간을 연장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부칙 제2항)고 하고 있으니, 2007년 7월2일 계약을 갱신한 A는 2009년 7월2일부터, 2007년 10월1일 계약을 갱신한 B는 2009년 10월1일부터 기간제법에 따라 정규직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계약직이라는 위법한 전제하에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해지를 했으니 이는 계약해지가 아니라 해고인 것이고, 달리 정당한 해고의 사유가 없으므로 부당해고라고 판결한 것이다. 판결의 내용도 역시 심플하고 깔끔하다.

3.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 대한 해석.
이 사건에서 가장 쟁점이 된 사항은 A와 B가 고용된 보건소의 각 사업이 기간제법 제4조제1항1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간제 고용연한의 예외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기간제법 제4조제1항1호는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는 2년을 초과해 기간제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특례조항이다. 참고로, 가뜩이나 미흡한 기간제한 규정의 예외를 열거한 특례조항이 1호부터 6호까지 참 많이도 있다. 더욱이 5호와 6호에 근거해 법률이 아닌 시행령을 통해 그 대상 또한 확대되고 있다.

피고 나주시는 당해 사업이 지역보건법 등에 따라 시행되는 사업으로서 매년 평가에 따라 사업대상보건소로 선정되는 사실(이미 선정된 사업자가 다음 해에 선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점), 사업비의 대부분을 국가 등으로부터 지원받아 사업이 운영되는 점, 해당 사업 종결 및 사업예산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를 근로계약 해지사유로 근로계약서에 명시해놓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기간제법 시행 이후 유의미한 2년이라는 기간이 경과된 시점부터 불과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아 아직 관련 판례가 많지 않은데(그나마 주로 차별적 처우와 관련된 행정법원 판례들) 이 사건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기간제법 제4조제1항1호 ‘사업의 완료 또는 일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 대한 일정한 해석을 내린 점에 있다.

재판부는 기간제법 제4조제1항1호에 대해 “기간제법의 입법목적에 비추어 사업 또는 업무 자체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종료되는 것이어야 하고, 업무의 종료시점이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예측가능해야 하는 것으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며, 일정 기간 경과로 실제 종료 및 그 종료시점의 객관적 예측가능성을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사업의 실질적인 계속성 및 지속성이 있어 기간제법 제4조제1항1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나아가 사업의 성격이 그러한 이상 예산 편성의 불가능(외부 재원으로의 사업 운영 포함) 등 현실적인 측면들은 주요한 판단요소가 될 수 없다고 본 것 같다.

한편, 각종 위탁계약 또는 용역·도급계약의 경우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대개 사업의 완료 또는 일정한 업무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사실상 일률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비정규직대책팀-1768, 2007.5.14., 비정규직대책팀-1796, 2007.5.15, 비정규직대책팀-2418, 2007.6.26, 비정규직대책팀-2422, 2007.6.26 등), 이 경우에도 각 계약의 형식성이 아니라 당해 사업의 실질적인 계속성 및 지속성을 구체적으로 살펴 기간제법 제4조상의 예외대상인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4. 후일담.

사건이 이렇게만 끝났다면 나름 깔끔한 사례라 평가하고 마무리하겠으나 실제로는 더 복잡한 내용들이 있어 후일담을 함께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B의 경우 2007년 10월1일의 계약갱신 이후 2008년 1월 한달간의 이른바 휴지기가 존재한다. 휴지기와 관련해서는 퇴직금 산정을 위한 계속근로 문제 등과 관련하여 이미 법원 판례들(대법원 2006.12.7, 2004다29736 ‘갱신되거나 반복 체결된 근로계약 사이에 일부 공백기간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간이 전체 근로계약기간에 비하여 길지 아니하고, 계절적 요인이나 방학 기간 등 당해 업무의 성격에 기인하거나 대기기간, 재충전을 위한 휴식 기간 등의 사정이 있어 그 기간 중 근로를 제공하지 않거나 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근로관계의 계속성은 그 기간 중에도 유지된다고 봄이 상당하다.’)이 존재하고 이 사건에서도 유사한 이유들을 들어 기간제법상의 계속근로로 보는 적정한 판단을 했다.

그런데 A와 B가 이 사건 민사소송 외에도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함께 제기했는데,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휴지기를 실질적인 근로계약기간의 단절로 보아 B의 경우 2008년 2월1일 입사일 기준 2년이 경과되지 않았다며 정당한 해고로 판정했다하니,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을 함께 진행하게 될 이들의 앞날이 결코 심플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2년 경과 따위를 볼 것도 없이, 수차례의 반복 갱신 등 근로계약 기간의 정함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고 인정될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 그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해석(대법원 1994.1.11. 93다17843 등)해야 하고, 이러한 노동법상의 고용 원칙을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정규직법의 재개정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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