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일 사내하도급 실태와 국가경쟁력 제고에 관한 토론회가 한나라당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있었다. 참석자들은 지난 7월22일 선고된 대법원 사내하청근로 판결을 비판하고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다면서 파견허용 업종을 전체 업종으로 확대하고 사용기간을 연장하며 고용의무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선진나라 사례를 들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언제나 그래 왔다. 이 자본주의세상에서는 자본가와 그 대변인들은 이렇게 주장해 왔다. 교섭장에서, 강의실에서, TV와 글을 통해 사용자가 직접 또는 교수 등 다양한 직함을 가진 대변인을 통해 이렇게 말해 왔다. 그런 것인가. 자본주의라는 것은 그래야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 법질서는 그렇게 구축돼야 하는가.

2.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닌 모든 사회와 세상을 낡고 후진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와 세상이 무엇이든 그것은 후진적인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그렇게 인식돼야 했고 인식됐다. 그 사회와 세상은 근대사회라는 자본주의세상으로 변화돼야 했다. 자본주의가 아닌 후진사회와 세상은 자본주의로 발전돼야 했다. 자본주의 이후 언제나 그래 왔다.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는 자본주의로 됐고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상은 자본주의로 변했다. 질서와 제도, 종교와 과학, 학문과 예술은 자본주의 세상과 함께 새롭게 자본주의의 것으로 구축됐다. 모든 의식과 사물은 자본주의의 것으로 변했다. 자본주의가 아닌 질서와 제도, 종교와 과학, 학문과 예술은 파괴되고 잊혀졌다. 자본주의를 위해 극복돼야 할 것이라고 낙인찍혔다. 단순히 분서갱유가 아니었다. 모두의 인식에서 사라져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래서 자본주의질서를 세우던 시기에는 그 파괴와 극복의 과정은 격렬하게 진행됐다. 그것은 극단적인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세상 모든 악의 원천이라고 불려졌다. 새롭게 세워진 자본주의사회가 안정돼 되돌릴 수 없게 돼서야 과거의 학문과 예술 등의 기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찾아낸 그 과거의 기억도 자본주의를 위해서만 기억됐다.

심지어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 탄생했던 노동운동조차도 그랬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전개된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질서를 결과적으로 더욱 견고하게 구축시켰다. 영국·프랑스·독일의 노동운동이, 그 노동운동이 제도화된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이 그랬다. 노동운동은 자본주의국가 질서의 하위범주로 편제됐다. 자본주의에 이르지 못한 봉건사회 등 전근대사회에서 전개된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질서를 구축하는 데 복무했다. 과거 아시아·아프리카 등의 전근대사회는 노동운동이념의 신봉자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됐다. 심지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웠을지라도 그 운동의 귀착지는 자본주의사회였다.
그리고 지금 세상은 자본주의냐 아니냐로 구분될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질서는 자본주의질서에 따르는 사회냐, 아니면 이 자본주의질서에 따르지 않는 사회냐로 구분될 뿐이다. 우리가 사는 지금뿐만 아니라 과거 세상도 역시 자본주의 질서에 따르는 근대사회와 전근대사회로 구분한다. 나아가 미래의 세상도 자본주의질서에 따른 사회와 그렇지 않는 사회로 구분하려고 한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세계를 만들었고, 세계를 구분했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본주의로 구축됐다. 학문과 예술, 과학과 종교는 물론 당연하게도 질서와 제도도 그렇다. 따라서 지금 이 나라에서 우리의 법질서도 당연하게도 그렇다. 한국노동자는 이 법질서에서 근로하고 있다. 노동자의 근로는 자본주의제도에서 자본이 주도하는 상품·서비스 등을 산출하고, 그 결과 확대된 자본을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노동자는 근로함으로써 자본과 자본주의질서를 견고하게 날마다 세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동자는 근로함으로써 자신의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자본주의 법질서를 더욱 확고하고 강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견고하고 강해진 자본과 자본주의 법질서는 노동자를 근로계약으로 묶어 두고 이 근로계약 관계를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3. 자본주의 세상은 노동자와 함께 찾아왔다. 바로 이 변화는 노동자와 함께 찾아왔다. 전근대사회를 타파하고 국가 단위로 자본주의 법질서를 세웠던 근대시민혁명기에도 노동자는 부르주아지, 즉 시민계급과 함께 무장하고 전근대세력인 봉건왕정과 귀족·지주 등을 처단했다. 이렇게 자본주의국가의 법질서는 전근대세력의 피를 묻힌 노동자의 무기로 세워질 수 있었다. 이미 노동자가 존재했던 나라에서는 언제나 그랬다. 외부 자본주의국가의 무장력에 의해 전근대세력을 몰아내고 건국했던 나라들조차도 새롭게 세워진 자본주의 국가질서는 노동자의 무장에 의해 유지됐다. 그러나 당시 노동자들은 자신들만의 독립된 노동자군대로 무장하지는 않았다. 부르주아지에 의해, 그들과 함께 전근대세력을 몰아내는 시민계급의 군대로서 무장했다. 그래서 새롭게 세워진 국가의 법질서는 당시에 부르주아지와 노동자의 공통된 이해였던 전근대질서를 타파하는 것에 머물렀다.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철저히 반영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 뒤 노동운동은 이것을 넘어서고자 했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와 분리된 자신과 자신의 이해를 인식하고 계산했다. 그래서 자본과 노동을 구분하고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을 만들었다. 그 뒤 세계사는 이렇게 전개됐다. 혁명과 전쟁은 노동운동으로 전개됐다. 프랑스·독일·러시아 등 수많은 나라의 혁명이 전개됐다. 그에 따라 시민헌법은 폐지되거나 노동의 기본권과 국가법질서를 채워 왔다. 그리고 학문과 예술, 과학과 철학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200년이 흘렀다. 수많은 전투와 전쟁이 있었다. 수많은 사상투쟁과 논쟁이 전개됐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대변해 무장하고 투쟁하다 쓰러졌다. 그렇게 2010년의 세상이 왔다. 자본과 노동의 전선에서 2010년이 서 있다. 그 전선은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다. 지금 세계 모든 노동자가 같은 2010년은 살고 있지만 노동자들이 확보한 권리와 국가법질서는 노동운동의 단위마다, 나라마다 다르다.

4. 노동운동에 의해 자본주의법질서에서 노동을 그 한 축으로 구축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고, 그렇지 않고 노동운동의 힘이 미약해서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나라들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세계화되면서 그 법질서도 함께 자본의 활동을 위해 구축돼야 했고 구축됐다. 그래서 선진제국의 자본주의법질서는 나머지 나라들에서도 구축됐다. 자발적으로 또는 비자발적으로 구축됐다. 이렇게 해서 결과적으로는 선진 노동운동은 세계 노동자들에 기여했다. 근로기준 등 근로자보호법은 물론 노동조합, 쟁의행위 등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법을 선물하게 됐다. 그렇게 영국·프랑스·독일 노동운동은 세계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한국노동자들에게 기여했다. 그리고 오늘 이 나머지 나라, 즉 우리의 경우 모든 것은 그들의 기준과 해석을 따른다. 기준인 법률을 도입할 때도, 그리고 그 법률을 해석하면서도 그들 나라의 법률과 그 해석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그들 나라의 것들은 무엇인가에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들 나라의 것들을 제대로 옮겨오는 것이다. 그래서 법학자의 능력도 얼마나 제대로 옮겨오는지, 즉 그들 나라의 논의를 얼마나 인용해대는지 여부에 따라 평가될지도 모른다. 교수는 이들 나라 혹은 이들 나라를 배운 일본의 논의를 인용해대고 판사는 이들 나라 특히 일본 판례를 찾아 판결한다. 그래서 교수의 자질은 무엇보다도 외국어인지도 모른다. 이 나머지 나라에선 새롭게 무엇을 세우기 위해 논의하지 않는다. 법제도를 도입하고자 할 때 반드시, 그리고 중요하게 해야 하는 것은 외국입법례, 특히 일본 등의 법제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그래서 그랬던 것인가. 학교에서도 우리가 배웠던 것은 정해진 교재를 외우는 것이었다. 시험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해 선택하고 적어대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학교를 나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우리는 이미 주어진 논의를 외워 옮기면 됐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왔다. 교수이든, 변호사든, 판사든 그가 누구든 그랬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는 자본가도 노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선진자본주의사회에서 그들의 모습을 찾았다. 자본가를 찾았고, 노동자를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모방하거나 아니면 교육받았다. 문제는 누가 더 제대로 모방하는가였다. 한때 모방의 대상이 선진자본주의나라가 아닌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사회주의라는 것도 그렇게 모방하고 학습했었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는 … 말했다’, ‘레닌은 … 말했다’로 시작되고 끝났다.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표준적인 교재였다.
그러나 그래서는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없다. 우리의 노동운동은 그들을 넘어 세계노동자들에게 기여해야 한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운동은 세계노동운동이 확보한 노동자의 권리와 법제도를 넘어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을 통해 한국노동자들은 국제노동운동에 보답해야 한다. 자본주의 세상이 시작된 이후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위한 법질서를 구축해왔다. 때로는 자본주의 법질서내에서, 때로는 자본주의법질서를 넘어서 구축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한때 선진자본주의나라의 노동자들이 세계 노동자들에게 기여했던 것처럼 우리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위한 법제도를 구축함으로써 기여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선진나라 등 세계적인 추세를 모방하는 것으로 될 수 없다. 어쩌면 우리 노동운동이 꿈꾸는 노동자세상도 그럴 때에만 올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자본의 대변자들이 세계적인 추세 운운하며 파견법을 개악하려고 하더라도 우리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리 포기를 모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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