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을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와의 간담회에 이은 후속대책이다. 간담회에서 제기된 동반성장론이 구체화된 것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사회’를 강조했다. 또 이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 하는데 강제 규정은 옳지 않다”고 못 박았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번 대책에선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낮추려 했을 때 정당한 사유를 제시하도록 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납품단가 변경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했다. 중소기업 고유의 사업영역을 위해 적합 업종·품목을 선정하기로 한 것은 개선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동네 슈퍼의 상권을 빼앗는 대형유통업체를 규제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기로 한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노동계가 요구한 핵심 대책은 대부분 포함되지 않거나 축소됐다. 중소기업의 염원이었던 납품단가 현실화와 관련된 대책이 대표적이다. 그간 중소기업측에선 대기업의 불합리한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막기 위해 공동협상권을 요구했다. 정부의 대책에선 중소기업협동조합에게 ‘단가조정 협의 신청권’을 부여했을 뿐이다. 중소기업계가 요구한 공동협상권과 원가연동제는 쏙 빼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 실적에 대해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채찍대신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반성장은 대기업의 자율과 선의에 달린 셈이다.

이런 정책기조는 새로운 게 아니다. 역대 정부도 이 범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에도 정부는 대기업에게 불공정거래를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그럴 때 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과 공동기술 개발을 약속했다. 이런 약속들은 오래가지 않고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정부의 단속과 처벌이 느슨해진 사이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는 더욱 은밀해지고 교묘해 졌다.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나 하도급대금 후려치기, 핵심기술 빼가기라는 대기업의 관행은 끈질기게 지속됐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는 가혹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부당행위에 매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협력업체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돌아갔고, 임금저하와 고용불안의 악순환으로 나타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양극화가 확대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먹이사슬 구조의 맨 꼭대기에 있는 대기업은 비난 여론이 조성될 때마다 그 책임을 노동조합에게 돌렸다.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대기업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단죄여론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대기업의 자구노력만으론 불공정거래가 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동반성장을 유도하려면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부터 천명했어야 했다.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시정하라는 것은 안 해도 그만이라는 얘기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사회도 결국 공염불에 그친 셈이다.

이젠, 국회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강제성 없고, 형식적인 내용만 담겨있는 정부의 발표를 진정한 동반성장 대책으로 바꾸는 것은 국회의 몫이 됐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영·미권에서 실시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정부차원의 단속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개선대책이다. 이미 민주당 홍재형 의원이 지난해 2월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정기국회에서 풍부하게 논의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하고 있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하도급법상 전속 고발권을 제한하는 것도 검토돼야 한다.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이 공정거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고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외면한 원가연동제와 중소기업계에 공동협상권을 부여하는 것도 국회가 보완해야 할 핵심대책이다. 업종별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노동조합이 협의체를 구성해 하도급거래 개선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그래야만 ‘정규직 노조 책임론’을 제기하는 대기업의 책임 떠넘기기와 제도개선 회피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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