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200~300건의 보험사고를 처리합니다. 주말에 쉬지도 못해요. 아프다고 회사에 이야기하면, 자기관리도 못하는 놈이 무슨 프로냐고 타박을 받습니다. 내 몸 부서져라 일하면 그냥 부서지는 겁니다.”(손해보험노조 조합원 A씨)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합니다만, 싫지는 않는데 자꾸 저를 밀어내기만 하는 상황들이 답답합니다. 그 답답함 때문에 또 다른 동료가 회사를 떠납니다. 회사에서 쉬쉬하고 있지만 전국의 보상직원들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몇몇 분은 이미 수술을 하셨고, 몇몇 분들은 수술을 기다리고 있어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젊은 보상직원들이 쓰러져야 하는지….”(손해보험노조 조합원 B씨)

삼성화재 자동차보험인 ‘애니카’의 2008년 광고에는 "새벽 4시라도, 땅끝까지라도 찾아간다"는 문구가 있다. LIG손해보험의 ‘매직카’의 최근 광고에서도 보험사 보상직원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다. 비를 맞고 자동차를 점검하던 보상직원은 우산을 씌워 주는 보험계약자에게 “전 옆에 누가 있으면 일이 잘 안 돼서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내 비를 맞으며 차량을 점검한다.
삼성화재 애니카·현대해상 하이카·동부화재 프로미·LIG손보 매직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간다’는 비슷한 콘셉트의 이런 광고 안에는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야 하는’ 보상직원들이 있다.

새벽 4시에도 달려가는 보상직원

보험회사의 영업이 새로운 보험계약자를 찾는 과정이라면 보상은 이미 보험에 가입한 보험계약자에 대한 서비스를 뜻한다. 국내 자동차 손해보험시장 4대 회사로는 삼성화재·동부화재·현대해상화재보험·LIG손해보험이 꼽힌다. 손해사정사는 보험종목에 따라 제1종부터 4종으로 분류된다. △1종 화재보험·특종보험 손해사정 △2종 해상보험 △3종 자동차보험의 대인보상·대물보상 △4종 상해·질병·간병보험 등이다.

이 중 3종인 자동차보험은 사람에 대한 ‘대인보상’과 자동차 등 물건에 대한 ‘대물보상’으로 나뉜다. 예컨대 자동차 사고가 나면 치료비는 대인보상이고, 자동차수리비는 대물보상이다.

자동차보험 계약자가 사고를 당하면 보상직원들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자동차보험 계약자들이 콜센터에 전화하면 곧바로 보상직원이 배정된다. 보험계약자에게는 문자메시지로 담당자의 이름과 연락처가 전달된다. 직원들은 이때부터 해당 보험계약자의 불만과 고충처리를 전담한다. 이들은 사고현장을 찾아 어떤 사고가 발생했는지부터 조사하고, 해당 사고가 보험처리가 되는 보험사고인지 여부도 조사한다.

보험사고로 확정되면 보상직원들은 사람이 다친 사고일 경우 치료비와 합의금 지급의 과정에 관여한다. 대물을 담당하는 보상직원들은 자동차에 대한 파손내용과 수리 과정을 체크하고, 공장에서 청구한 수리비 청구서의 타당성을 검토한다. 사고현장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안내자인 셈이다.

대부분 비정규직인 현장출동 보상직원

보상직원 중 현장출동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1년 또는 2년 단위 계약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손해보험노조 관계자는 “현장출동을 담당하는 노동자의 임금조건은 일반 손해보험노동자의 3분의 2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특히 손해사정회사들은 대부분 노조가 없어 실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2008년 LIG손해보험의 계열사인 LIG손해사정과 LIG에에스사정에서 노조가 결성돼 파업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지금 두 곳에는 노조가 없다.
현장출동을 전담하지 않는 보상직원들의 노동강도 역시 높은 편이다. LIG손해보험의 보상직원들은 한 달에 평균 150~200건의 사고를 담당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배당’이라고 부른다. 회사는 이 같은 배당을 적정업무량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하루에 6건 이상의 배당은 벅차기만 하다.

“직원들이 관두는 이유는 퇴근하고 자기개발을 할 수 있 개인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접수되고 담당자가 배정되면 손님들은 보상직원을 내 담당자라고 인식하죠. 고객들은 보상직원을 주 5일 근무에 퇴근은 6시에 하는 직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밤에는 물론이고 쉬는 날에도 전화를 합니다.”

전화기를 끼고 살 수밖에 없는 이유

보상직원들은 업무가 끝난 오후 6시 이후에도 휴대전화를 끌 수 없다. 보험계약자가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면 고객불만으로 접수되고, 곧바로 인사고과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LIG손해사정에서 2008년까지 일했던 권홍순씨(52)는 “집에 가서 가정에 있을 때도, 친구와 만나 저녁에 술을 한잔하더라도 항상 고객의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털어놓았다.

보상직원들은 사고처리를 담당한 건수와 실적에 따라 연말에 성과급을 받는다. 그런데 직원들은 성과급보다 노동강도에 불만이 더 많다고 한다. 권씨는 “퇴근시간이 오후 6시로 돼 있지만 꿈도 못 꾸는 일”이라며 “마감이 있는 주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정상근무를 한다”고 말했다.

"실태조사요? 불만만 쌓이는 거죠"

권씨는 2007년 동기 한 명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방에 발령이 나 주말부부로 일했던 권씨의 동료는 주말 집으로 오는 차 속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산재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씨를 비롯한 보상직 직원들은 과도한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를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게다가 손해보험사들은 대인 손해사정업무를 아웃소싱하는 방법을 통해 인건비 절감을 꾀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손해보험사들은 손해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직원들을 관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의는 지난해 국내 금융업 애로사항에 대한 개선안을 정부에 건의하면서 대물 손해사정업무만 허용하고 있는 아웃소싱을 대인 손해사정업무까지 확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한상의는 “아웃소싱을 허용하지 않아 보험사 입장에서는 사내 별도조직을 운용·업무를 처리해 인건비·관리비 등 사업비 부담이 크다”고 주장했다.

아웃소싱이 대인 손해사정업무까지 확대될 경우 손해사정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손해보험노조 관계자는 “손해사정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건강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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