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잤고, 자다가 깨면 일했다. 기자는 20대에 그랬다. 대학만 가면 누릴 수 있다고 하던 연애·여행·낭만은 사치였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섭렵했고 영세한 사업장을 떠돌았다. 찌질과 궁상으로 범벅된 20대 시절 중 가장 운이 좋았던 날은 하루 세 끼 밥을 챙겨 먹은 날이었다. 구직활동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욕망은 알아서 스스로 거세했다.

그래도 그나마 기자는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대학에 들어가 등록금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또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느라 숙식은 공짜로 해결했다. 그 덕에 기자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만약 집안의 생계마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나 또한 일단 돈을 많이 주는 곳에 '묻지마 취업'을 했을 것이다.

서른 문턱을 넘어선 지금, 하루 세 끼는 챙겨 먹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운 좋게도 정규직이다. 나이 서른을 넘기다 보니 어디를 가든 결혼이 화두다. 그러나 지금 내 처지에 아이를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머나먼 불가능한 꿈인가 싶다. 있는 집 자제분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평범한 20~30대 청년들의 일상도 기자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청년들의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는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고 결혼과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사회 문제로 확대된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것 같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대책 마련에 나섰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의 발언에서 드러났듯이 청년실업에 대한 정부의 왜곡된 인식이 우려를 낳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9일 "청년들이 가능성 있는 중소기업에 많이 도전하기를 바란다”며 눈높이를 낮출 것을 재차 강조했다.

과연 청년들의 눈높이가 높을까. 영세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이라는 덫에 빠지면 더 나은 일자리로 옮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는 더불어 공기업에서 청년고용의무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럼 정원감축이 핵심인 공공기관 선진화방안을 폐기하겠다는 것인가. 선진화방안의 기조를 유지하는 한 결국 인턴 등 단기 일자리밖에 창출되지 않을 것이다.

경기가 어렵다거나 눈이 높다는 이유로 저임금의 열악한 일터로 청년들을 내모는 근시안적 시각으로는 청년일자리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청년들의 의지를 탓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청년일자리에 대한 눈높이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