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계에 단비와 같은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파견·도급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이 그것이다. 대법원은 하청업체가 ‘인력파견업체’에 불과하고 대기업 원청업체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실질 사용주’라고 결론지었다.

이번 판결은 제조업 고용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금속노조가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물론 퇴직자·해고자들과 함께 체불임금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기업들이 지급해야 할 체불임금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법률 전문가들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무면허운전은 불법운전이므로 합법운전에 적용되는 속도제한이나 음주운전 금지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황당한 법리를 이제야 바로잡았다는 것이다.

불법파견은 우리 사회 전체 노동시장을 놓고 봤을 때 현행 노동관계법이 가진 모순 중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사용자로부터 실질적인 노무지휘를 받으면서도 노동자로서의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숱하다.

특수고용직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 한 대리운전 노동자의 처참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국가는 뭐했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대리운전 기사가 술에 취한 고객의 차를 대신 몰다가 운전을 못한다는 이유로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내쫓긴 뒤 그 차에 치여 즉사했지만 유족들은 지금껏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민간서비스연맹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대리운전 기사는 업체로부터 출·퇴근, 근무태도 전반에 대한 지시를 받는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해고(계약해지)된다. 그래서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 제대로 항의하기 어렵다. 주로 야간에 운전하기 때문에 교통사고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노조를 결성해도 법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다. 노동권은커녕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대리운전 기사뿐만이 아니다. 퀵서비스맨을 비롯해 건설·화물노동자 등 수십만에 달하는 특수고용직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을 하다 억울한 죽음을 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 17대 국회는 특수고용직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을 논의했지만 처리하지 못했다. 18대 국회 들어서는 특수고용직과 관련한 제도적 논의가 아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 입법자들은 최소한 특수고용직이 정당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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