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한 약속이잖아요. 영대는 쌍용자동차의 대타협 약속을 믿었어요. 경찰서에 끌려가 회유를 받고, 희망퇴직서를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배신감에 힘들어했어요. 처음엔 '죽은 자' 라는 것도 모르고 출근을 하더니 결국 집을 요새로 꾸몄어요. 혼자 옥쇄파업을 했어요. 보다 못한 조카와 제수씨가 떠났습니다. 한 가족의 인생이 부서져 버렸어요.”
 
계영휘(48·사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은 동생 계영대(38)씨의 사연을 전하며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영휘씨는 지난 22일 <매일노동뉴스>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가족이 파괴되고 평택의 경제가 무너지고 노동자가 죽어나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2일 밤 영휘씨는 경기도 안성경찰서에서 동생 영대씨가 술을 먹고 돈을 내지 못해 잡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찰관은 영대씨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구급차까지 불렀다. 경찰서에 간 영휘씨는 동생의 풀린 눈을 보고 곧바로 병원으로 보냈다. 그리고 영대씨의 집 열쇠를 받았다. 파업 후 1년 만에 방문한 동생의 집은 참담했다. 베란다에 설치된 천체망원경·노트북 6대·생수 960병·햇반 360개·라면 수십박스와 비상의약품 등…. 동생은 쌍용차 옥쇄파업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신용불량자가 됐음을 알리는 통지서도 개봉되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병원에서는 영대씨에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며 신경정신과 입원치료 6개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영대씨는 입원 후 음식을 거부했다. 22일 영휘씨는 영대씨를 평택에 있는 더 큰 병원으로 옮겼다.

"전화도 받지 않고 명절에 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사람이 싫어 대인기피증이 생긴 줄 알았죠. 제가 꼭 그랬거든요. 동생 집을 본 80대 노모는 한동안 오열을 하다 이젠 억울하다며 끝까지 싸우라고 하십니다.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 후회가 됩니다. 영대에게 파업 참여를 권유하지만 않았어도…."

형제는 모두 ‘죽은 자’였다. 영휘씨는 끝까지 옥쇄파업에 참여했고, 영대씨는 68일 만에 “조건 없이 귀가시킨다”는 방송을 듣고 나왔다. 그러나 영대씨는 경찰서로 끌려갔고, 희망퇴직서를 썼다. 그 후 대타협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영대씨는 파업 도중 나와 퇴직서를 쓴 것에 대한 죄책감과 배신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영휘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인기피증·불면증·환청에 시달렸다. 하지만 함께 사는 노모가 걱정할까 봐 내색도 못했다. 영휘씨는 쌍용차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두 번의 수술 끝에 장애3등급 판정을 받았다. 쌍용차 출신이라는 주홍글씨에 장애까지 있어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다. 대신 장성한 아이들과 부인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전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겁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돼야 한다고 하는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과 도리를 국가가 지켜 주는 게 선진국 아닌가요?"

영휘씨는 더 이상 동생과 같은 사례가 발생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는 "정부가 현 상황을 방치한다면 영대 같은 이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쌍용차 노동자들의 마음에 박힌 못을 빼내려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쌍용차와 정부가 대타협 약속을 지키고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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