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성희롱 발언으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까지 사과하고 나설 정도로 정부·여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개인의 성희롱 사건은 조직 전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노동계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성폭력 사건으로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금속노조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한국노총의 한 산별연맹에서도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성희롱 사건은 더 많다는 게 노동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각종 대책위와 위원회가 꾸려지지만 그때뿐이다. 여성운동가들은 지난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를 구성해 노동계에 자정을 촉구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인식이 바뀌었을까.



“노동계 성교육 철저히 해야”
김순희 한국노총 여성본부장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의 성희롱 사건은 한국 사회 남성들의 성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 줬다. 더구나 우리 사회 지도자급인 국회의원이 가해자라는 점에서 이 사건의 중대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남성들의 성희롱으로 여성들이 얼마나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이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국 남성들의 안일한 성인식에 경종을 울려야만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노동계 역시 성희롱 문제로부터 안전하지는 않다. 남성·중견지도자급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농담을 통해 잘못된 성 인식을 보여 주는 예도 많고, 그 심각성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때도 많다.
특히 중년남성이 많은 일반직장에서 이런 문제들이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여성들 역시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노동계가 성교육에 적극 나서야 한다. 남성들의 성 인식이 왜 문제이고 무엇이 가해인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강 의원 사건이 노동계 중심부에서 성희롱 예방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여성의 정치·사회적 세력화가 근본대책”
최성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담당자




한국 사회에서 여성인권이 신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남녀가 평등적이지는 않다. 가부장적인 분위기도 강하고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없어지지 않았다. 강 의원의 성희롱 발언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강 의원 개인의 자질 문제도 크다.
노동계도 사회의 한 부분이라서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 있다. 그러나 강 의원 사건을 노동계의 성폭력 문제와 직접 연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동계의 성폭력 잣대는 관련법이나 사회적 분위기보다 훨씬 엄격하다. 특히 사건 처리방식에서는 한나라당의 경우 강 의원을 제명시키는 선에서 끝났지만 노동계는 피해자 치유는 물론 가해자도 공동체로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보다는 교육과 인식 전환을 통해 사회 분위기를 바꿔 나가는 것이 훨씬 근본적이고 주요한 대책이다.
민주노총은 2008년 12월 성폭력 사건이 있은 뒤 지금까지 문제 해결과 예방책 마련을 위한 논의를 이어 가고 있다. 사건 처리와는 별도로 매달 성평등의제 토론용 자료집과 포스터를 만들어 현장에 배포하고 있다. 여성교실과 같은 여성의 정치·사회적 세력화를 위한 조직사업도 펼치고 있다. 여성의 힘이 강해져야 불평등한 구조를 바꿔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인권 감수성 교육 의무화하자”
정문자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정치인의 성희롱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적대상으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국회의원이라는 직책을 이용한 자리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넓게 보면 직장 내 성폭력의 영역에 속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거침없이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성희롱·성폭력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전에 성폭력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여성인권 감수성 교육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필수코스로 성평등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노동계 역시 성폭력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수정당에 비해서는 나름대로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과 마찬가지로 권력화된 남성 간부들이 여성활동가나 조합원들을 성적대상으로 보면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인권적 관점에서 여성을 대할 수 있도록 여성인권 감수성 교육을 철저히 실시하는 등 사전예방이 중요하다.


“사회인식 바꾸고 가해자 처벌해야”
이구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남녀 성평등을 위한 법과 제도는 기틀을 다졌으나 사회적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 남성들은 진보와 보수 나이와 상관없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시켜 보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인 것 같다. 성희롱이 한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다 보니, 성희롱 등이 드러나면 ‘재수 없어 걸렸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넘어간다.
노동계를 비롯한 진보운동 진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민주노총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우연한 사고로 치부하고 이를 덮으려 했던 민주노총의 태도는 진보진영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적어도 사회를 견인해 나가는 진보세력이라면 민주노총뿐 아니라 노동계 전체가 ‘성폭력 문제가 중요한 과제’라는 인식하에 지속적인 교육으로 재발을 막아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사회 인식을 바꿔야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성희롱을 한 남성을 확실히 처벌해야 한다. 강 의원 사건도 의원직을 박탈하고, 사회적으로 성희롱을 하면 큰일 난다는 것을 보여 주고 환기시켜야 한다. 인식을 바꾸기 위한 중장기적인 교육과 함께 성희롱으로 사람의 인권을 침해할 경우 사회적으로 끝장난다는 것을 처벌을 통해 확실히 보여 줘야 한다.


“정치계보다 노동계에 더 가혹한 기준 적용”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들의 도덕성 기준이 노동계를 바라볼 때보다 강하지 않은 것 같다.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면 양대 노총이 좀 더 도덕적일 것이라고 본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대개 운동권은 본인들이 대의를 강조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혹한 기준을 적용한다. 성희롱 문제와 관련해서는 운동권을 들여다보는 시선은 가혹하고, 정치권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것 같다.
그럼에도 운동권에게 성희롱·성폭력과 관련해 보다 강력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 다른 문제에서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보수보다 진보로 사는 게 더 어렵지 않은가. 진보 스스로 훨씬 강한 기준을 들이댔고, 그것은 진보진영에서 스스로 만든 것이다.
노동계에서도 (성희롱 문제와 관련해) 많은 자정 노력을 기울였다. 민주노총은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자 지도부가 사퇴했다. 한나라당은 당사자 제명은 했지만 지도부가 사퇴하지는 않았다. 이미 다른 룰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이나 노동계는 지도부가 사퇴를 할 정도로 성희롱·성폭력을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고 대처한다. 이전에 노동계에서도 성희롱 문제를 덮어 버리거나 당사자만의 문제로 바라보다가 지금은 지도부가 책임질 정도의 수준까지 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성희롱·성적 비하 혹은 남녀평등과 관련해서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단체들이 강한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워낙 투명성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아직은 더 개선할 필요가 있는 ‘양면적 측면’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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