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4월19일, 고려대 학생 7명이 ‘출교’를 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출교는 해당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한 모든 기록을 영원히 지우고, 재입학마저 허용하지 않는 ‘사형’과도 같은 조처였다. 교수감금 논란이 있었지만, 지나친 징계였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지난 13일 취임한 어윤대 KB금융그룹 회장은 출교사태 당시 고려대 총장이었다. 그는 ‘최고경영자(CEO)형 대학 총장’이라고 불렸다. 이학수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의 이름을 딴 이학수 강의실,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이름을 딴 김승유 강의실, 이명박 라운지, 100주년 기념 삼성관, LG-포스코 경영관 등이 그의 임기 시절 생겼거나 계획됐다. 그는 스스로 ‘기부금 유치가 나의 존재 이유’라고 했지만 4년 임기동안 등록금은 25%나 인상됐다.

그런 그가 청와대 고위직을 거쳐 이제는 금융기관의 CEO가 됐다. 어 회장의 취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선임 과정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내정자 시절에도 우리은행과 합병을 거론하면서 금융시장에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도 거셌다.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는 어 회장의 내정자 시절 출근저지 투쟁을 벌였다. 취임 당일에도 법원에 직무정지 가처분신청까지 내는 초강수를 뒀다. 지부는 고용불안이 불가피한 은행 인수합병과 구조조정 계획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다.

반면 어 회장은 지난 13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당분간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겠다”, “노조 분들이 나보다 더 회사를 걱정하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부의 신뢰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고, 언론 뒤에 숨어 있지 말라는 말도 나왔다.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어 회장은 지난 14일 지부 사무실을 예고 없이 방문했다. 어 회장과 지부 간부들이 2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노사가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다행이다. 어 회장은 취임과 함께 임기 3년 동안 리딩뱅크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각종 과제들을 발표했다. 이러한 과제는 내부 구성원과의 소통없이는 이룰 수 없다. 고려대 총장시절처럼 출교조치로 인한 불통사태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조뿐 아니라 고객과 적극 소통하는 길만이 어 회장에 대한 안팎의 불신과 우려를 불식시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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