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지점의 전체 직원 64명 중 정규직은 3명이고 2명은 외주업체 정규직이다. 나머지는 모두 특수고용직인 보험설계사이자 텔레마케터다. 15명이 한 팀으로 꾸려진 4개의 팀에 각각 소속된 텔레마케터들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30분을 빼고 대부분의 시간을 칸막이가 쳐진 자리에 앉아 전화를 건다. <매일노동뉴스가> kdb생명 프라이드지점 직원들과 하루를 함께했다.
“업무가 바빠서요. 먼저 끊을게요”
프라이드지점에서 일한 지 7개월째인 백명학(25)씨. kdb생명의 저축성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백씨는 "지난 1월 일을 시작한 뒤 6개월 동안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수화기를 들 때마다 눈을 감는다. 머릿속에서 전화를 받은 고객과 직접 마주한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라고 했다.
“회원님. kdb생명에서 회원님을 위해 준비한….”, “업무가 바빠서요. 먼저 끊을게요.”
보험상품을 안내하기 위해 준비된 문장인 ‘스크립트’를 채 한 문장도 읽기 전에 전화가 끊겼다. 백씨는 이날 오전 1시간이 넘도록 7통의 전화를 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보험을 들지 않겠다며 ‘거절’한 사람이 4명, 전화를 받지 않은 ‘부재’가 2명이었다. 다행히 "다시 통화하자"는 ‘가망’ 고객 1명이 있었다.
그는 실망하지 않는 눈치다. kdb생명 프라이드지점에서 일하는 60여명의 텔레마케터들의 뒤에는 롯데닷컴 회원 600만명이 있기 때문이다.
백씨는 20대 초반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편의점 매니저까지 맡았지만 급여가 만족스럽지 못해 텔레마케터를 선택했다.
“처음 지점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지금은 선배들한테 매일 코치를 받아서인지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습니다.”
“누구나 지원하지만,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프라이드지점 텔레마케터들은 오전 9시에 출근해 30분간 회의를 갖고 9시30분부터 정오까지 끊임없이 전화를 한다. 이들 옆에서 잡음을 냈다가는 눈칫밥을 먹기 십상이다. 송정남(39) 지점장이 “집중적인 TM 영업을 할 때는 방해가 되니 조심해 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텔레마케터들의 주된 업무는 저축성 보험을 전화로 판매하는 것이다. 같은 일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고객의 응답이 천차만별이라 그렇지도 않다. 단 몇 초 만에 전화가 끊어지기도 하고, 1시간 가까이 고객을 설득해야 할 때도 있다. 텔레마케터들이 스스로 "기가 빠지는 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급여는 철저하게 영업실적에 따라 정해진다. 예컨대 월 10만원의 저축성보험을 판매할 경우 2.5배인 25만원을 받는다. 이마저도 처음 6개월만 그렇고 시간이 갈수록 실적 대비 급여 비중이 줄어든다. 자신만의 영업 노하우를 찾고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 6개월인 셈이다.
하지만 2~3개월도 못 채우고 일을 그만두는 텔레마케터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지점에 있는 4개의 실 중 하나를 맡고 있는 김미경(45) 실장은 “학별·성별·나이 아무 것도 따지지 않으니 누구나 지원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여성노동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텔레마케터를 지원하는 남성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프라이드지점도 절반 가량이 남성이다. 김 실장은 “여자들은 부업의 마인드를 갖고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자들은 본업의 마인드로 일하기 때문에 실적이 좋다”고 말했다. 청년실업 탓인지 20대 초·중반 남성 텔레마케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보이지 않아 피할 수 없는 상처
텔레마케터들은 롯데닷컴에 회원가입을 하거나 수정할 때 2차 마케팅에 동의한 고객만을 대상으로 보험상품을 판매한다. 실제 텔레마케터들의 소속도 롯데닷컴 대리점이다. 롯데닷컴의 회원정보를 활용해 금융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한다. 하지만 최근 종종 터지는 개인정보 유출사건으로 개인정보 유출에 관한 법률이 강화된 데다, 무엇보다 고객들이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해졌다.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욕하고 전화를 끊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럴 땐 어쩌겠습니까. 그냥 혼자 삭혀야죠.”
텔레마케터들은 롯데닷컴 회원수가 600만명에 달하지만 회원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정보이용에 동의한 회원만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 그렇다고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텔레마케터 백명학씨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따지며 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텔레마케터들이 대응할 방법이 없다. 대응 문구를 담은 스크립트도 ‘바쁘다’거나 ‘관심이 없다’는 사람에 해당하는 스크립트만 준비돼 있다. 텔레마케터들이 욕설과 성희롱 등 정신적인 피해를 받을 만한 상황에 대비한 스크립트는 없다.
시스템화된 대규모 콜센터의 경우 상습적으로 욕설을 하거나, 성희롱적 언행을 일삼는 고객을 사전에 분리해 전문상담원 앞에 콜이 오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프라이드지점과 같은 소규모 TM 사무실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 해당 회원의 데이터를 더 이상 영업에 사용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텔레마케터의 필수품 '거울'
영업이 한창인 오후 2시. 김 실장의 자리에서 특이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유리로 된 사탕상자와 작은 요강이었다. 유리상자에는 텔레마케터들이 각자 바라는 점을 써 넣은 쪽지가 담겨 있다. 밀봉했다가 연말에 뜯어 보고, 다음해 영업에 반영한다. 요강은 김 실장에게는 일종의 미신이었다. 요강을 열었더니 1만원짜리와 1천원짜리, 동전들로 가득했다.
“실원들이 넣어둔 돈이에요. 큰 돈은 아니지만 회식할 때 보탭니다.”
김 실장은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장사가 잘되는 집의 금고가 요강이었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역의 한 가게에 갔다가 요강을 발견했고, 가게 주인에게 부탁해 요강을 구입했다. 요강에 자신도 텔레마케터들도 영업을 잘해서 돈을 모으게 해 달라는 바람을 담았다고 했다.
텔레마케터들의 자리에도 이런 미신을 담은 물건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억대 연봉을 받은 보험왕의 사진을 걸어놓기도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명언도 보였다. 공통적인 물건은 거울이었다. 거울은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항상 웃는 얼굴로 전화하기 위한 텔레마케터의 필수품이다. 보이지 않아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고객에게 항상 웃으며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만의 아픔과 꿈
말을 많이 하는 텔레마케터들은 성대결절과 같은 호흡기질환을 안고 사는 이들이 많다. 이영희(가명·30)씨는 "성대를 보호하기 위한 약을 먹는 사람도 있다"며 "목감기에 한 번 걸리면 일주일 이상 가기 때문에 평소에 목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을 처음 시작한 2008년 5월 목통증으로 고생했다고 했다. 이제는 컨디션이 안 좋으면 배즙과 도라지를 수시로 챙겨 먹는다. 그는 "턱관절 수술을 받은 동료도 있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역류성 식도염은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남성 텔레마케터에게 흔한 질병이다.
신체적 아픔은 물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누군가에 전화를 해서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씨는 “두렵고 떨리죠. 이 사람이 어떻게 나의 전화를 받을까 하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반”이라고 털어놓았다.
물론 전화상으로 하는 일이라서 생긴 미담도 있다. 목소리에 반한 고객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고, 4대강 사업과 같은 시사적인 이슈를 물어보고 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프라이드지점에서 일하는 텔레마케터의 상당수는 20~30대 청년층이다. 김영희(가명·43)씨는 지점 안에서 보기 드문 40대 여성이었다. 김씨는 옛 금호생명 정규직이었지만 지금은 TM 외주업체에서 일한다. 옛 동아생명 시절인 86년 입사해 금호생명으로 합병된 이후까지 16년간 일했다. 2002년 명예퇴직을 했고, 실업급여를 6개월을 받은 뒤 지금은 콜센터 외주업체 정규직으로 텔레마케터를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과거 보험회사에서 일했던 업무와 지금 하는 업무에 큰 차이는 없다가 없지만 급여는 절반 가량 줄었다. 정규직으로 일하다 외주업체로 자리를 옮긴 김씨의 가장 큰 고민은 사교육비였다. 맞벌이 수입 300만원 정도로, 100만원가량이 매달 두 자녀의 학원비로 나간다.
“가끔씩 텔레마케터를 한 번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돈을 잘 버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요즘 텔레마케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의 청년들은 수억원대의 연봉을 꿈꾸지만, 대부분 한 달에 100만원 정도밖에 벌지 못한다. 그나마도 계속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청년들은 실적 위주의 '텔레마케터 정글'에서 수화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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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는 크게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로 나뉜다. 인바운드는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곳, 아웃바운드는 고객에게 전화를 하는 곳을 말한다. kdb생명 프라이드지점의 경우 아웃바운드에 속한다.
그런데 최근 금융기관 콜센터 노동자 10명 중 4명이 업무 중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10명 중 7명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고객이 그만둘 때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노동대학원 노사관계학과 유기종씨가 지난 8일 발표한 석사논문 ‘금융기관 콜센터 근로자의 고충처리에 관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상담업무 중 고객으로부터 성적 모욕감을 유발하는 성희롱적 언사를 경험한 응답자가 41.9%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3월2일부터 2주간 금융기관 5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223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 결과 3.1%는 1일 1회 이상 성희롱적 언사를 경험한다고 답했고, 1주 1회 이상 경험한다고 응답한 상담원의 누계비율이 17.9%에 달했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93.2%가 고객으로부터 언어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고, 1일 1회 이상 언어폭력을 경험한다는 응답자도 17.9%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콜센터 노동자들은 언어폭력·성희롱에 별다른 대응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89.2%가 대처방안에 대해 ‘고객이 그만둘 때까지 기다린다’,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기에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성희롱적 언사에 대한 대응에서도 ‘고객이 그만둘 때까지 기다린다’,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고 응답한 상담원이 71.6%나 됐다.
언어폭력·성희롱에 대한 기업의 대응방안 미비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전체 응답자의 79.4%가 "욕설이나 성희롱적 언사에 대한 대응 스크립트·대응 매뉴얼·대응 프로세스가 없다"고 응답했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