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원지방법원이 눈에 띄는 판결을 내놨다.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면 노동자가 해당 작업공정을 멈추더라도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피고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의 대의원 문아무개씨다. 문씨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안전사고가 반복되자 라인을 세우고 노동자들을 분임토의장에 모이게 했다.
문씨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법원은 “부주의하게 작업을 계속할 경우 금속밴드가 부러지거나 튕겨져 작업자가 다칠 수 있다”며 “문씨의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안전사고를 방지하려는 노조 간부의 실력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기아차에서 문씨 같은 노조 간부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타임오프 제도 시행에 맞춰 회사측이 내놓은 ‘근로시간면제 관련 근태관리 매뉴얼’ 때문이다. 회사는 매뉴얼에 근로시간면제자의 일부 활동을 제외한 포괄적인 노조활동에 대해 무급적용을 명시했다.

지부의 대의원들은 1일부터 ‘생산·경영·안전’ 관련 실무협의에 일체 참여하지 않고 있다. 지부 관계자는 “회사의 필요에 의해 진행되는 각종 위원회를 위해 타임오프 한도를 다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장의 대의원들이 급여를 반납하면서까지 협의에 참석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러니 개인적인 불이익까지 감수해 가며 생산라인을 세운 문씨 같은 대의원이 또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당장 생산현장 중간 관리자들의 입에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조율부터 안전사고에 이르기까지 실무협의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는데, 일선 현장 대의원들의 발이 묶여 버렸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6월 판매동향에 따르면 기아차는 지난달 내수시장에서 4만4천431대를 팔아 4만8천643대를 판 ‘형님’ 현대차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데 이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노사 간 실무협의의 중단은 기아차의 생산에 직접적 타격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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