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 남용에 경종을 울리는 판례

국내의 적지 않은 기업들이 임금산정의 편의를 이유로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상 법정근로수당 지급의무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그릇된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판례가 나왔다.
포괄임금제는 원칙적으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적용해야 한다. 이번 판례는 임금산정의 편의를 위해 포괄임금제를 실시할 경우 근기법에 규정된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 등 각종 법정수당을 명확하게 산정해 이보다 많은 경우는 용인되지만, 이 보다 적은 수당지급의 경우에는 근기법 위반이란 점을 명확히 했다.

관행 및 대법원 판례에 의해 정립된 포괄임금제

근기법상 사용자는 임금을 산정할 때 기본임금을 결정하고 이를 기초로 연장·휴일·야간근로 등에 대한 임금 또는 가산수당을 산정해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기업 현실에서는 이 같은 근로기준법의 임금산정 방법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관행이 형성돼 왔다. 이와 관련, 판례는 1990년대 중반께부터 ‘기본임금을 기초로 가산수당을 산정하는 구조에 대한 예외’로 사업장의 임금지급 관행을 인정해 포괄임금제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를 통해 정립된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근로형태와 업무의 성질 등을 참작해 계산의 편의와 직원의 근무의욕을 고취하자는 취지에서 근로자의 승낙 아래 기본임금을 미리 산정하지 않은 채 시간외근로 등에 대한 제수당을 합한 금액을 월 급여액이나 일당 임금으로 정하거나 매월 일정액을 제수당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임금지급계약를 의미한다. 대법원은 “포괄임금제가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비추어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고, 제반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1997.4.25 선고 95다4056 판결 등)

포괄임금제 인정 사유와 대상, 요건

대법원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포괄임금제를 인정해 왔다. 하나는 근로시간 산정이 곤란한 경우나 감시·단속적 근로인 경우 등 ‘근로형태의 특수성’이 있는 경우에 인정했다. 다른 하나는 ‘계산의 편의’를 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자(계산의 편의)로 인해 거의 모든 사업장들이 포괄임금제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원은 ‘근로형태의 특수성’에 따라 근로시간 파악이 어려운 화물운송운전자, 관광버스운전자나 감시·단속적 근로에 해당하는 아파트경비원, 버스회사 배차원, 보일러공 등은 포괄임금제 대상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또 근로계약 체결과 종료가 하루 단위로 이뤄지는 순수한 의미의 일용직 노동자, 소정근로시간이 현저히 적은 단시간근로자, 격일제근로자, 교대제근로자에 대하여도 포괄임금제를 인정하고 있다.

판례는 포괄임금제의 인정요건으로 명시적인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에 근거가 있어야 하나 예외적으로 묵시적인 포괄임금제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1984.1.24 선고 83도2068 판결, 대법원 1983.10.25 선고 83도1050 판결 등) 근로기준법 제63조에 의해 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감시·단속적 근로의 경우에 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에도 포괄임금제는 인정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1997.4.25 선고 95다4056 판결)

또 감시·단속적 근로나 격일제 근로처럼 연장 및 야간노동이 당연히 예상되는 근로형태가 아닌 경우에도 계산의 편의를 위해 포괄임금제를 인정해 왔다(대법원 1998.3.24 선고 96다24699 판결 등).

계산의 편의를 위한 포괄임금제가 유효하려면 단체협약, 취업규칙 또는 당사자 간 합의가 필요하고,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으며 제반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될 때에 유효하다. 또 실제 제공한 노동시간과 비교해 그 차액의 청구가 가능하다(대법원 1992.7.14 선고 91다37256 판결)

포괄임금제의 문제점

포괄임금제는 ‘기본임금을 기초로 가산수당을 산정하는 구조에 대한 예외’로 인정되지만 현실에서는 광범위하게 시행되면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특히 법원은 생계유지를 위해 취업하려는 노동자가 사용자가 제시하는 포괄임금제를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적 역학관계를 간과하고 근기법상의 근로조건 명시의무라는 강행규정보다 당사자 간 사적 근로계약의 효력을 우선시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판례에 의하면 노동자의 휴가사용권이 보장된다면 연월차휴가수당이 포괄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노동자가 휴가를 사용하는 경우나 사용하지 않은 경우 모두 똑같은 임금을 받게 되는 모순이 발생하고, 선 지급 받은 수당 때문에 노동자의 휴가사용이 실질적으로 제약을 받게 돼 근기법상 유급휴가제도가 형해화되는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진다.

또 포괄임금제는 근기법상 강행규정에 위반되는 묵시적 동의와 관행을 인정하게 되고, 연장·야간·휴일·휴일근로 등을 해야만 발생할 수 있는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근로수당 등을 그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인정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포괄임금제는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자보다 계약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욱 보편화되고 있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사용자에 의한 탈법행위를 합법화시켜주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포괄임금제를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로만 한정한 대상판결

이번 판례는 포괄임금제는 원칙적으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판례는 이런 입장을 기조로 해 “감시·단속적 근로 등과 같이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달리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지급의 원칙이 적용돼야 할 것”이라며 “이러한 경우에도 근로시간 수에 상관없이 일정액을 법정수당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포괄임금제 방식의 임금 지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그것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에 관한 규제를 위반하는 이상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등의 사정이 없음에도 포괄임금제 방식으로 약정된 경우 그 포괄임금에 포함된 정액의 법정수당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산정된 법정수당에 미달하는 때에는 그에 해당하는 포괄임금제에 의한 임금지급계약부분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해 무효라 할 것이고, 사용자는 근로기준법의 강행성과 보충성 원칙에 의해 근로자에게 그 미달되는 법정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즉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닌데도 실근로시간과 무관하게 법정수당을 정액으로 정해 실제로 법정수당의 일부를 미지급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포괄임금계약은 무효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마치며

그동안 대법원 판례는 근로형태의 특수성과 계산의 편의를 들어 포괄임금제를 인정해 왔다. 근기법상 강행규정보다 당사자 간의 계약 내용을 우선하는 포괄임금제는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상의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대법원은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한 경우에는 아예 포괄임금제를 인정하지 말고, 근로형태의 특수성(근로시간 산정 가능한 경우)으로 인한 포괄임금제의 경우에도 기존에 정립된 포괄임금제 법리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보다 엄격하게 근로자 보호를 위한 근기법에 근거해 해석할 필요가 있으며, 근기법상 임금구성항목 명시의무를 보다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번 판례를 통해 포괄임금제라는 탈을 쓰고 법정근로수당 지급 의무를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해태하는 관행과 휴가미사용을 강제하는 잘못된 관행이 차단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