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종영된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나온 가사노동자 세경이도 이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총회에서 국제 노동계가 '최후의 협약'으로 부르는 '가사노동협약'의 초안을 만들었다. 가사노동자 권익보호의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ILO는 가사노동협약에서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던 가사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노동자로서 기본권을 인정받고, 산업재해시 보상받으며, 직업소개소를 사용자로 규정해 가사노동자 고용 알선시 일정한 책임을 지도록 규정했다.

우리나라에는 약 18만여명의 여성들이 가사노동자로 일한다. 앞치마를 유행시킨 <지붕 뚫고 하이킥>의 세경은 주인집에서 숙식하며 한 달에 최저임금도 안 되는 60만원을 받았다. 초등학생인 주인집 딸에게조차도 욕을 듣고, 출·퇴근의 개념도 없이 언제든 일이 생기면 주인의 요구대로 일을 했다. 숙식하는 방도 주인집 식구가 언제든 드나들었다. 주인집 식구들은 세경과 '가족처럼' 지내길 원했지만, 세경의 입장에서는 끊임없는 헌신으로 ‘감정노동’을 요구받았다. 이처럼 가사노동은 가정이라는 개인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무노동으로 집안 여자가 하는 쉬운 일이라는 편견 속에서 저평가됐다.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주부에 대해 ‘보이지 않는 봉사계급’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사서비스노동자는 지난 2004년 10만3천명에서 2007년 16만명으로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욕구 증가와 가족형태 변화 등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가사서비스노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뜨거웠다. ILO는 150명 정도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세계 NGO 활동가들이 몰리면서 참석자수는 500명을 넘겼다. 회의장소도 유엔 유럽본부 총회장으로 옮겨야 했다. ILO 관계자는 "협약으로 보호 가능한 마지막 사각지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게 돼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은 이날 회의 참석에 필요한 등록절차를 제때 마치지 못해 표결에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 3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노동은 1일 42분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이 같은 국내 현실이 반영되기라도 하듯 한국은 국제사회의 노력에 무관심한 것 같다. 지난달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가장 부러운 부부에 대해 조사한 결과 '가사노동, 육아 공동분담'이 28%로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변화하는 국내외 시대 흐름과 국제사회의 노력에 이제 우리 사회와 남성들도 호응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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