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노동조합이 살아남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치밀하게 지침을 내리면 감사원은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기관장 경영평가로 옥죄어 오는 데 버틸 수 있는 노조가 얼마나 될까요.”(이흥식 금융노조 대한주택보증지부 위원장)
 
“공공기관에서 노조 간판 달고 있는 곳은 강성이든 어용이든 문 닫아야 할 판이에요. 발전기 돌리는 조합원의 100%가 필수유지인원이다 보니 파업효과가 사라졌어요. 노조  단결력에 치명적인 구멍이 생긴 셈이죠.”(박종옥 발전노조 위원장)

공공기관노조의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2년째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정책은 순풍에 돛단 듯이 착착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철도노조가 최장기간(8일) 파업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어도, “공기업노조와 타협 없다”는 이명박 정부의 방침은 변한 게 없다. 당장 지방선거가 끝나면 성과연봉제 표준모델안 등 임금체계 개편이 본격화될 모양새다.
 
공기업노조, 새로울 것 없는 정책에 KO패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자세히 살펴보면,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다. 하드웨어적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국민의 정부 시절 공기업 구조개편안보다 강도가 약하다. 경영평가나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을 통한 법·제도적 공공기관 통제시스템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에 완성된 것이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98년부터 2000년 사이 공공기관에서는 하위직을 중심으로 정원의 25%가량인 4만1천700명이 감축됐다. 이어 한국통신(현 KT)·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 민영화와 나머지 공기업의 자회사 정리가 이뤄진 2001~2002년에는 62%인 8만1천명이 축소됐다.

참여정부는 다면평가제를 도입했다. 성과관리시스템에 방점을 찍으면서 소프트웨어적인 상시 구조조정체계를 마련했다. 이로 인해 경영평가를 통한 정부통제가 정착됐다. ‘경영효율화’라는 이름 아래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하는 노동유연화가 이뤄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에 정부가 소유권을 갖되 민간에 경영을 맡기는 형태의 공기업 민영화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당시만 해도 공공기관 선진화정책의 핵심은 공기업 지주회사제 도입과 같은 민간 경영체제 이식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얼마 가지 않아 촛불시위와 이른바 ‘민영화괴담’이라는 벽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좌절된 공공기관 구조개혁 시나리오는 이후 6차례 공공기관 선진화계획을 통해 정원감축과 일부 기관의 통·폐합, 기능조정 수준에 머물렀다. 또 미국발 경제위기를 틈타 초임삭감 등 인건비 축소에 집중됐다. 눈에 띄는 대목은 노사관계, 특히 노조를 타깃으로 하는 정부 통제가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친기업 정책’을 공개적으로 표방한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노동계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지난 2년 동안 공공기관 노조운동의 대응전략은 일정한 한계에 갇혀 있었다”며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는 근로시간 면제한도 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파국을 맞이했고, 민주노총의 투쟁을 통한 저항도 완강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노 부소장은 “공공부문 노조운동이 타성에 젖어 대응이 분산됐고, 결국 고립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왜 공공기관노조와 협상하지 않나

공공기관 경영공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3월 현재 노조가 있는 공공기관은 전체의 70%인 199개다. 조합원수는 17만2천827명으로, 조직률은 60.5%에 달한다. 전 산업 평균 노조조직률 10.8%(2008년 기준)의 여섯 배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공공기관노조들은 실질적 사용자인 정부를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각 사업장에서는 조직률을 바탕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렸지만, 공공부문 전체를 놓고 보면 뿔뿔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 부소장은 “공기업 단체교섭은 한마디로 통제의 중앙집중화와 노동조합 대응의 분권화”라고 분석한다. 정부는 기재부가 중심이 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임금·정원·근로조건을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반면 노사 단체교섭 구조는 기업별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통합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11월 한국노총 3개 연맹이 통합, ‘전국공공노조연맹’이 출범했다. 이어 2007년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에서 전국운수산업노조·전국공공서비스노조 출범을 시작으로 공공운수산별노조 건설이 본격화됐다.
공공운수산별노조는 애초 지난해 5월 출범을 목표로 했으나 내부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올해 4월에야 공공운수노조 건설준비위원회를 구성한 상태다. 이에 반해 인천지하철노조를 비롯한 공공기관노조들의 민주노총 탈퇴는 계속 늘고 있다.

한국노총 공공연맹도 이달 초 1만여명의 조합원들이 속한 4개 노조가 독자적인 공기업노조연맹을 결성해 조직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력노조·금융노조·공공연맹 등으로 구성된 한국노총 공공부문공동투쟁본부도 최근 들어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변화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상급단체가 다른 81개 공공기관노조 대표자들이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가 지방선거 이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는 연봉제·임금피크제 저지를 위해 공동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공공기관노조 대표자회의는 상층 간의 연대를 넘어 단위노조 대표자들이 직접 참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뭉친다고 해서 공공기관노조들 앞에 놓인 과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연대가 확산되더라도 정부의 연봉제 표준모델안 발표시기를 다소 늦추는 데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기업별 교섭구조 한계 속에서 노정 간 협의구조가 마련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럴 경우 연봉제·임금피크제 도입 반대를 위한 공공기관노조들의 섣부른 투쟁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
 
전략적 목표 없이 “뭉쳐 싸우자” … ‘독’ 될 수도

공공기관노조들이 이래저래 설 곳을 잃어 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뭉쳐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 10여년간의 공공기관 노조운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공공노조 부설 사회공공연구소가 2008년 발행한 연구총서(공공부문 구조조정 대응과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연구)에는 공공기관노조가 처한 현실이 이렇게 기술돼 있다.

“공공부문 노조운동은 현재 조직과 이념, 헤게모니능력의 모든 구조적 차원에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조직적으로는 기업별 노조의 질곡, 이념적으로는 경제적 조합주의와 노선의 굴레, 그리고 헤게모니 측면에서는 사회적 고립 상태에 빠져 있다.”
공공기관노조들이 공공기관 민영화 과정에서만 ‘공공성’을 부르짖을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구체적인 정책대안으로 보여 줘야 할 때라는 지적이 높다. 

‘Again 1994’ 가능할까
공공기관노조들이 대표자회의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94년 11월 약 14만여명의 조합원을 포괄하는 80여개 공공기관노조 대표자들은 상설 회의체로 ‘공공기관노조 대표자회의(공노대)’를 결성했다. 상급단체를 불문하고 광범위한 공공기관노조가 참여했다.
이들은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 철폐와 임금결정 구조개선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임금피크제와 연봉제 저지를 주요하게 내건 25일 대표자회의와 유사하다.
공공기관노조 대표자회의를 제안한 공공운수노조 건설준비위원회 김태진 대변인은 “지방공기업노조까지 모두 참여하는 전국 공공기관노조 대표자회의로 확대해 94년 공노대 수준으로 운영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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