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근로자가 일을 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하게 돼 다치거나 사망하게 되는 경우, 그러한 재해가 근로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가족들에게 주는 고통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사업주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예상치 못했던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를 대비해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이라 한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부정수급자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는 있으나, 산재보험급여가 당해 근로자 및 그 가족의 생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이의 부당이득징수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갖고 시행해야 한다.

2. 사안의 개요 및 경과

당해 사건을 살펴보면, 근로자 A는 B공사에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수리시설관리원으로 근무하면서, 2004년 용수로의 오물을 줍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해 약 5개월간 요양하면서 휴업급여 및 요양급여를 지급받았다. 또 2005년 3월24일 농업용수의 공급을 위해 큐비클 조작 작업을 하던 중 감전 사고를 당해 이후 8개월간 요양을 하다가 이듬해인 2006년 1월4일 사망했다.
근로자 A는 산업재해로 인해 요양하는 동안 휴업급여와 요양급여를 2004년과 2005년 각각 지급받았으며, 2006년 근로자 A가 사망하게 되자 그의 가족이 유족연금과 장의비를 지급받았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2009년 5월22일 사망한 근로자 A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근로자 A에 대한 요양승인을 취소하고 그의 가족에게 기 지급한 유족 보상을 부당이득으로 보고 이를 징수한다는 처분을 한 것이다.

3. 쟁점 - 수리시설관리원의 근로자성 여부

근로복지공단이 근로자 A의 가족에게 기 지급한 유족보상을 부당이득으로 판단한 이유는 근로자 A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해 사안에서 근로복지공단이 근로자 A가 근로자가 아님을 주장하는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근로자 A는 고용계약이 아닌 ‘위촉’의 형태로 근무했다는 점, 둘째 업무해태 시 해촉 이외에 다른 징계수단이 없었다는 점, 셋째 근로자 A는 매년 벼농사 기간인 4월부터 9월까지만 계절적으로 근무했다는 점 등이다.

사실상 근로계약을 맺으면서 ‘위탁’이나 ‘촉탁’이라는 용어나 형식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업무상 재해를 입어도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보상에서 제외시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정년 퇴직자가 촉탁사원으로 신규 채용됐다는 이유로 사용자와 사용종속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해 노동 관련 법률상의 권리들을 배제시키거나, 업무수행 전반에 대해 개략적인 지휘·감독을 받았고 보수의 근로대가성이 인정되는 등 사실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위성방송 수신기 등 설치기사에 대해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등의 설치대수에 비례해 보수를 받았다는 이유로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사례 등이 그것이다.

이는 대법원이 “계약의 형식이나 명칭 여부에 관계없이 … 양 당사자의 경제·사회적 조건이나, 노동관계법에 의한 보호필요성 등 전체적으로 근로자에 관한 여러 징표 중 근로조건에 관한 일부의 사정이 결여됐다 해도 그러한 사유만으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에 위배되는 것이다(2004.3.26 선고 2003두13939 판결, 2007.3.29 선고 2005두13018, 13025 판결 등 참조).
사용자와 근로자가 맺고 있는 사실상의 근로관계와 계약의 내용에 대한 전체적인 고려와 검토 없이 근로자성 여부가 부인되게 되면, 당해 근로자는 임금체불이 발생하거나 산업재해를 입는 등 권리를 침해당하거나 피해를 입었을 경우 이에 대한 구제방법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근로자 A와 같이 사용자의 구체적인 업무 지시에 의해 업무를 수행했고 근무상황을 보고했으며, 실제 근무한 일수에 따라 보수를 지급받는 등 사용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사실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에 관한 여러 징표 중 일부가 결여됐다는 이유로 근로자성을 부인해 당해 근로자가 사망한지 3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미 지급된 산재보상금에 대해 부당이득 징수를 한다는 것은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겠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기본 취지를 져버리는 것이다.

4. 시사점

당해 사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현실에서는 실제로는 사용자와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촉탁’, ‘위탁’, ‘도급’ 등의 용어로 근로계약을 체결해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추후 퇴직금 지급, 연차유급휴가, 시간외 수당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양 당사자 간에 주장하는 바가 달라 다툼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근로자와의 계약이 근로계약이 아닌 민법상 위임계약 등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그러한 법적 의무를 회피하려 할 것이고, 근로자는 계약 당시 불확실하게 체결된 근로계약의 내용 때문에 근로자로서 근로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해 근로계약을 부르는 명칭은 형식적인 용어에 불과하고 실제에 있어서 근로자가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사용종속관계에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각 요소들이 충족된다면 당해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해야 한다.

현재 근로자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요소의 기준이나 당해 계약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계약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판례에 의해 정립돼 있기는 하나 입법화되어 있지 않아 이를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따라서 근로자 A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근로계약에 관한 구체적인 법률의 입법화를 통하여 이러한 문제점에 대하여 보완 및 방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5. 맺음말

대상판례는 근로자 A가 근로자인지의 여부에 대해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반영한 합당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대상 판례를 통해 볼 수 있듯이 근로자성 여부에 대한 판단에 따라 당해 근로자의 권리 보호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고, 당해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을 잃은 슬픔에 더해져서 이제까지 정당하게 지급받은 산재보상급여를 모두 추징당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입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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