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노조 전임자 12명은 24일부터 파업 중이다. 이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노조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러나 서류상에는 ‘쟁의행위 참가’로 기록된다. 이달 초 단체협약이 실효되면서 회사가 전임자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노조는 불가피하게 전임자 파업에 돌입했지만 협상 타결을 위해 대화는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이번주 들어 실무교섭이 거의 매일 열리고 있다.
하지만 노사협상은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지난해 138개 단체협약 조항에 대한 노사 의견접근안을 사측이 부정하고, 노조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안을 다시 제출한 탓이다. <매일노동뉴스>는 전임자 파업 첫날 박종옥(48·사진) 위원장을 만나 단체교섭과 다음달로 예정된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최종안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사용자 요구안 받으면 무단협과 다를 게 없다”

노조 5대 위원장으로 선출된 박 위원장은 지난달 1일부터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위원장이 된 지 보름 만에 사측과 첫 번째 협상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발전 5개사는 138개 단협 조항을 70개로 축소하는 내용의 단협 갱신 요구안을 내놨다.
“지난해 노사 대표가 13차례나 만나 쟁점이 됐던 조합원 범위(오픈숍)와 해고자 복직 등 5가지 조항을 뺀 나머지 조항에 합의했어요. 같은해 11월4일 회사가 갑작스레 단협 해지를 통보하기 전까지 협상이 무르익었다는 말이죠. 그런데도 사측은 올해 협상을 재개하면서 지난 교섭을 깡그리 무사하는 요구안을 내놓았어요. 내용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걸 수용하면 무단협 상태나 다름없어요.”

노사는 최근 열린 실무교섭에서 노조 교섭위원 활동 보장 문제에 부닥쳐 단협은 다루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12명이 하든 7천명이 하든 파업은 파업입니다. 노사 모두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점진적으로 투쟁수위를 높일 생각입니다. 회사에 빨리 협상을 마무리하자고 요구한 상태인데요. 그렇다고 급하게 가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노조 간부들에게도 항상 당부합니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할 수 있다고요. 다 같이 하는 투쟁을 바탕으로 모두가 한 걸음씩 전진하자는 겁니다.”

사실 무단협 상태인 노조가 단협을 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용자의 안을 수용하면 된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마음이 급할 때 실기할 수 있다"며 "적당히 봉합하고 타협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 가운데 다음달이면 정부가 10년을 끌어 온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나온다. 발전노동자의 생사가 달린 문제다.

“발전회사 통합이 먼저”

그동안 노조는 전력 생산을 담당하는 발전회사와 공급을 맡는 한국전력공사 간의 통합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박 위원장의 생각은 다르다. 5개로 나뉘어진 발전회사를 하나로 묶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한전과 발전회사 조합원은 10년 전까지 같은 회사 직원이었습니다. 저도 한전으로 입사했으니까요. 지금도 사번이나 근무형태가 똑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단협이나 노동조건이 많이 달라졌어요. 발전회사가 분할된 이후 모회사와 자회사 관계로 전락하면서 발전노동자들은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 왔습니다. 한전에 대한 피해의식은 하루아침에 해소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서도 박 위원장은 “한전과의 수직통합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발전회사 통합이 시급한 과제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회사와의 갈등을 극대화하기보다는 국민을 상대로 여론전에 집중하면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당장 다음달부터 지하철은 물론이고 극장에서도 발전노조가 제작한 광고를 접할 수 있다.

박 위원장은 출마 당시 한국수력원자력노조와의 통합을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임기 중에 전력산별노조 또는 에너지산별노조의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그 첫 단추가 한수원노조와의 통합입니다. 더 큰 교섭력과 투쟁력으로 빼앗긴 전력노동자의 권익을 되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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