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엔지 눈물엔지 자꾸만 눈을 껌벅대던 사람들. 1천원 하는 비옷 걸치고 지하철 강남역 출구 앞에 꾸역꾸역 모여 앉았다. 그 옆 너른 인도엔 빨간 줄이 빈틈없어 '불가침성역'임을 알렸다. 집회신고 성공이 뉴스가 되는 곳, 삼성 본관 앞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지난 3월 말 숨을 거둔 고 박지연씨의 영정사진이 무대의 전부였다. 마이크 잡아 외친 이는 유족이었다. 먼저 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오랜 울분을 토했다. 박씨의 가족은 자리하지 못했다.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소송을 어머니는 포기했다. 삼성의 회유 때문이라고 유족들은 말했다. 삼성은 병원비를 냈다. 그러나 삼성은 유해물질 노출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의 죽음 이후 희귀병 제보가 잇따랐다. 고 박지연씨의 49재 날이었다. 5월18일이었다. 원통한 죽음 앞에 고개 숙여 추모하자니 비에 젖은 편지지는 눈물에 또 젖었다. 눈물 훔치고 주먹 뻗어 외치길 진실을 밝히겠다 맹세하니 거기 추모제에서 절절하던 '민들레처럼' 노래며 편지글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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