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했다. 최근에는 광주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말했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근로시간 면제한도(타임오프 한도)를 의결한 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6·2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투표로 심판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다가 한국노총은 노동부장관 등과 노사발전재단 등에 관해 합의한 후 투표를 통한 심판을 철회했다.
민주노총은 소속 조합원이 출마하는 경우 이를 민주노총 후보로, 조합원이 아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후보는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지지하고 지방선거에서 총력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소속 노조간부나 조합원이 지방선거에 수십 명 출마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경기본부는 한국노총 전현직 후보를 전폭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이상과 같이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은 선거에 관여하고 이를 통해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선거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행위다. 노동조합이 선거에 관여한다면 노동조합이 대한민국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행위에 개입하는 것이다. 결국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모두 대한민국 권력의 선출에 개입하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은 투표를 통해 심판하고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2. 그런데 노동조합은 노동자에게 어째서 심판을 위해 투표해야 한다고 하는가. 어째서 아무개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가. 민주노총이 선언했기 때문인가. 한국노총이 지지했기 때문인가. 또는 민주노총이 주도해 창당했거나 한국노총이 정책연대를 하는 당의 후보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소속 조합원이나 간부이거나 과거에 그랬기 때문인가. 오늘 6·2 지방선거에서 정권 심판과 지지후보 당선을 위해 투표해야 한다는 대한민국의 노동자 김○○씨는 ‘어째서’ 투표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의 의결과 고시를 주도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6월2일 노동자들은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다른 당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가. 아니면 동료 조합원이 출마했기 때문에 그 조합원에게 투표해야 하는가. 한국노총은 분명히 조합원이거나 조합원이었던 자가 출마하니 그 자에게 투표하라고 한다. 왜 지방자치단체장과 그 의원을 선출하는데 같은 조합원이었다고 해서 그 자에게 투표를 해야 할까. 민주노총도 민주노동당·진보신당·무소속 등으로 출마한 소속 조합원을 민주노총 후보라고 해서 그 자에게 투표하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개 노총 소속 조합원이라고 해서 노동자를 대표하는 자가 아니다. 이들이 노동자를 대표해서 6·2 지방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노동자를 위한 공약을 내걸고 나온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늘 대한민국 노동자가 ‘어째서’ 이들에게 투표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3. 선거는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제도로 이해된다. 대표자의 선출행위가 민주주의의 요체라고 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래서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게 된 1987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정착됐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늘 이명박 정권에 대해 심판을 말할 때도 감히 민주정부 수립을 내놓고 말하지 못한다. 이들은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정치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는 정착됐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자의 권력행사 남용 등 적정성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물론 이들은 대표자가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서도 민주적인 절차가 보장돼야 한다면서 이를 무시하고 행사하는 것을 두고 반민주적이라거나 민주주의 후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을 가지고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정부 수립을 말하지 못한다. 다음 선거를 통해 그 대표자나 그 대표자의 정당 후보를 지지하지 말라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정착됐는데도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여전히 그대로다. 오늘 민주주의에 관해 말하는 자들이 반민주적,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결코 말하지 않았던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에서도 노동자는 오히려 정리해고 등 고용불안에 시달렸고, 노동자보다 사용자의 몫이 늘어났다. 노동자는 사업장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그랬다. 도대체 노동자에게는 김영삼이든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달라질 게 없었다. 다를 게 없으니 노동자 김○○씨는 같은 말씨를 쓰는 고향사람에게 투표했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말한다. 같은 고향사람에게 투표하지 말고 같은 조합원에게 투표하라고 한다. 그러나 알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자 김○○씨는 같은 조합원에게 투표하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같은 조합원에게 투표하기를 주저한다. 도대체 왜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이 모양인가. 노동자의 아무것도 아님에 대해, 예를 들어 사회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은 정치가 아닌 사회경제의 민주화 문제라고 말한다. 그제 5·18 기념 토론회에게 이들은 그렇게 발표하고 토론했다. 이들의 말에 따른다면 정치적 민주주의는 노동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된다. 이들의 말에 따른다면 1987년 민주화운동에서 노동자는 괜히 학생들과 시민들에 합세해 길거리에 나서 투쟁했던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괜히’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투쟁하고 투표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선거를 알고 투표를 해 왔다. 그래서 그동안 노동자는 정권을 심판하고 노동조합 지지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투표하지 않는 것이다.

4.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인민의 지배다. 왕·귀족·특권계급의 지배가 아닌 피지배자가 스스로를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계급적이다. 피지배자인 인민에 의해 지배자(계급)를 배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민주주의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에서 계급적 내용과 이해를 없앤다면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저 형식적인 절차만 남는다. 그렇다. 우리는 1987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고 그래서 오늘 이것만 남았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에는 노동자가 없다. 정치행위로서 절차만 있다. 이는 지배자의 인민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하는 행위일 뿐이다. 만약 그 지배자가 특정계급의 이해에 지배된다면 결국 민주주의는 계급지배를 정당화시켜 주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이켜 보라. 언제나 민주주의는 전복이었다. 지배자(계급)의 특권과 이해를 강탈해 인민의 권리와 이해를 채웠다. 귀족의 특권을 배제하고 인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민주주의 투사는 승리해서 인민의 이해로 민주주의 질서를 세웠고 또 많은 투사는 실패해서 민주주의 묘지명 아래 묻혔다. 오늘 대한민국의 법질서는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에 수립된 봉건계급의 특권을 철저히 분쇄한 법제도다. 1918년 독일혁명에 노동자계급의 일부가 가담했고, 이후 바이마르공화국이 설립됐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노동자에 의한 무수한 국가권력의 찬탈과 국가법제도의 구축이 있었다. 그때마다 민주주의에는 노동자의 이해가 담겨 있었다. 오늘 대한민국의 법질서도 예외는 아니다. 프랑스혁명과 독일혁명이 세운 국가법제도가 대한민국의 중요한 기본골격으로 구축돼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에는 노동자가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노동자에게 비극을 가져왔다. 같은 고향사람에게 투표할 것이냐 같은 조합원에게 투표할 것이냐를 고민하게 했다. 대한민국 노동자에게 선거는 노동자의 이해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후보 누구도 노동자계급의 내용과 이해에 따라 국가권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4대강을 말하면서 환경을 내걸고, 무상급식을 말하면서 교육을 내건다. 계급적 이해가 아닌 공익을 말하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에서 선거운동이다. 언제나 그랬다. 1987년 이후에 언제나 공익을 외치는 시민단체가 말하는 것이 진보였다. 1987년 이후에는 노동자를 외쳐 대는 노동단체가 말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기주의일 뿐 공익이 아니어서 진보가 아니었다. 그래서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정당조차도 노동자계급의 내용과 이해를 전면에 내걸지 않는다. 그래서 그제 광주에서 김영훈 위원장은 투표로 정권을 심판하자고 말했을 뿐이다. 오늘 노동조합조차도 노동자계급의 내용과 이해에 따라 국가권력을 행사할 후보에게 투표하자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노동자 김○○씨는 오늘도 고향사람에게 투표하기 위해 투표장에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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