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 모든 것이 결정됐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결정했다. 2010년 1월1일 새벽 노조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근로시간면제도에 따른 구체적인 근로시간면제한도 범위가 결정된 것이다. 지난 5월1일 새벽 이미 개정 노조법에서 설정한 2010년 4월30일을 넘겨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을 채울 족쇄의 크기를 결정했다. 근로시간면제제도가 노조법에서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의 시행을 유예한 2009년 12월31일을 넘긴 다음날 새벽에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처럼 근로시간의 면제한도 범위도 시한을 넘긴 다음날 새벽에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됐다.

이날 결정된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범위를 연간 2,000시간을 1인으로 전임자수를 환산해 보자. 노조원 50인 미만 사업장은 0.5명, 50~99인 1명, 100~199인 1.5명, 200~299인 2명, 300~499인 2.5명, 500~999인 3명, 1,000~2,999인 5명, 3,000~4,999인 7명, 5,000~9,999인 11명, 1만~1만4, 999인 14명, 1만5,000인 이상 최대 24명(3,000인당 1명 추가해 산정, 2012년 7월부터는 최대 18명)이다.

이에 따르면 조합원 4만5천명, 전임자 195명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2012년 7월부터는 18명으로 축소해야 한다. 이제 현대차지부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단체협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2011년까지 개정 노조법상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의 적용이 유예된, 그래서 다소 여유를 갖고 있던 현대차지부조차도 이 법이 적용되는 순간 전임자 24명으로, 그 몇 개월 뒤인 2012년 7월부터는 18명으로 노동조합을 운영해야 한다는 분명한 경고장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차지부만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수많은 노동조합이 이와 같은 경고장을 받았다.

2. 대한민국에서 지금 노동조합은 난도질당하고 있다. 개정 노조법에 따른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와 근로시간면제제도에 의해 노동조합 활동의 모든 것이 국가권력과 사용자에 의해 난도질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교섭력, 그리고 투쟁력은 철저히 노조간부의 활동력에 달려 있다. 그동안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확보해 온 노조간부의 조합활동이 개정 노조법의 시행에 의해 국가가 허용해 준 협소한 범위 내로 족쇄가 채워졌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이제 그 범위 내에서 족쇄를 조금 풀어 숨통을 열어 달라고 사용자에게 교섭 등을 통해 구걸해야 한다. 사용자는 협소하게 인정된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범위 내에서 노조의 숨통을 얼마나 열어 줄 것인지 정할 것이다. 사용자는 노동조합의 상태를 봐 가며 이리저리 계산해보고 노동조합에 던져 주면 된다.

대한민국에선 사업장 단위로 노조의 조직이 존재한다. 아무리 산별노조라고 해도 지부·지회·분회 등 사업장 단위의 노조 조직은 존재한다. 이 사업장 단위의 노조 조직이 대한민국에서는 노조 활동의 근간이다. 지역지부·지역지회 등으로 노조 조직을 지역단위로 편제한다고 해도 사업장 단위의 조직력이 전제돼야 한다. 이것 없이는 대한민국에서 노조는 모든 조직력을 잃는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의 역사는 온전히 사업장 단위의 조직력의 확대와 강화의 역사였다.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가 출범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것은 조합원들에게 적용되는 단체협약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산별노조라고 해도 사업장 단위의 단체협약이 조합원의 근로조건과 조합활동에 관한 주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업장 단위의 조직이 노조 조직의 근간인 상황에서 그 노조간부는 사업장 근로자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산별노조의 위원장 등 임원과 주요 간부도 마찬가지다. 금속노조의 박유기 위원장도 현대자동차(주)의 근로자이고, 실장 등 주요 간부도 대부분 사업장에 속한 근로자다. 그래서 노조간부가 노동조합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사업장에 속한 근로자이기 때문에 전임자로서 그 활동이 유급으로 보장돼야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노조간부인 전임자의 급여지급을 보장받기 위해 노동조합은 요구하고 투쟁했고 단체협약으로 쟁취했다. 그런데 이것이 불법이 됐다. 사용자들이 합창하자 교수들도 전임자급여 지급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며 편들더니 대한민국은 노조법을 통해 금지시켰다. 그 뒤 10여년 동안 시행을 미루다가 마침내 개정노조법을 2010년 7월1일부터 시행하게 되면서 불법이 됐다. 사용자로부터 전임자가 급여지급을 받는 것은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합비로 부담해야 한다고 떠들어대고 이를 입법의 취지로 내세웠다. 노조의 자주성을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은 2010년 1월1일 새벽에 밤잠을 설치며 개정 노조법을 통과시켰던가. 노조의 자주성을 위해 사용자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응원했던가. 개정 노조법은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사용자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제하고 처벌한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범죄행위 목록이 추가되는데 사용자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비록 사용자 자신이 처벌받는 행위가 되더라도 노조 활동에 족쇄를 채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응원하고 환영했다. 사용자들의 응원소리에 대한민국에서 전임자급여 지급금지가 시행되는 개정 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사용자들의 환영 소리에 대한민국에서 기존에 보장받던 노조의 활동에 숨통을 죄는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범위가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결정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노조는 보이지 않는다.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범위를 돌파할 조직력이 보이지 않는다. 개정 노조법상 전임자급여 지급금지를 무력화시킬 투쟁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어떻게 정해질 것인가만 지켜봤다. 아무리 특별교섭을 주장하고 쟁의행위 찬반투표까지 했다고 해도 금속노조는 총파업으로 개정 노조법을 돌파할 수 없었고,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선 사방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비난만이 난무한다. 조직력이 있는 현대자동차지부가 파업을 하면 귀족노조라고 비난하는 보도가 언론을 장식하고, 조직력이 없는 사내하청업체지회가 파업을 하면 불법파업이라고 비난하는 공소장과 판결문으로 위협한다. 합법파업에는 언론의 무기로 비난하고, 불법파업에는 권력의 무기로 비난한다. 대한민국에서 언젠가부터 노동조합은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그 비난은 노동조합 내부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대한 비난은 대한민국에서 자본과 권력, 그리고 노조 내부에서도 같은 목소리로 들린다. 어떤 것이 자본과 권력의 비난이고 노조 내부의 비난인지도 알 수 없게 됐다. 어제 자본의 비난이 오늘 언론과 권력의 비난이 되고 내일 노조 내부의 비난이 된다. 이제 누구도 노동조합을 지지하기 위해 자신을 던지지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참담한 현실에서 노동조합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개정 노조법에 따라 전임자급여 지급이 금지되고 협소한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범위 속으로 조합의 조직력과 활동력을 약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개정노조법의 금지를 넘어 조합의 조직력과 활동력을 유지할 것인가. 모든 것은 노동조합이 개정노조법을 돌파하려는 의지와 투쟁에 달려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3. 전임자 195명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2012년 7월부터 전임자를 18명으로 줄여야 한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결정해 준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범위 때문이다. 이 18명을 최대 한도로 사용자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다. 아무리 노동조합이 교섭과 투쟁을 통해 쟁취해도 이 18명을 넘어설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현대차지부는 18명의 노조간부만이 조합활동에 전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들만으로 195명이 하던 조합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누구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현대차지부가 18명의 노조간부만이 조합활동에 전념하게 된다면 현대차지부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노동조합으로서의 활동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과 자본은 개정 노조법을 통과시켜 전임자급여 지급을 금지하면서 협소한 근로시간면제한도의 범위를 설정한 것이다. 이 상황을 그저 지켜보게 된다면 협소한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범위 속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우겨넣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을 기대하고 개정 노조법을 2010년 1월1일 새벽 통과시키고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범위를 2010년 5월1일 새벽 결정했다. 기아자동차지부·지엠대우지부도 다르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조직력을 갖춘 노동조합은 개정 노조법에 따른 협소한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범위 내로 노동조합을 우겨넣을 수 없다. 그것은 그동안 노동조합의 투쟁의 성과를 하루아침에 우겨 던지는 것이고, 노동조합의 활동을 포기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제 기아차동차지부와 지엠대우지부는 원하지 않더라도 당장 개정 노조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길은 언제나처럼 존재한다. 그 길 중 어떠한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노동조합이 투쟁을 통해 개정 노조법에 따른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와 협소한 근로시간 면제한도의 범위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이냐, 아니면 돌파할 수 없는 길이냐에 달려 있다. 개정 노조법 시행을 저지할 수 없다면 문제는 전임자에 관한 기존의 조합 활동을 개정 노조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다. 이제 직면하고 돌파해야 한다. 개정 노조법을 폐지하라. 개정노조법 시행을 저지하라. 개정노조법 시행을 무력화시켜라. 모든 것은 노동조합에 열려 있다. 모든 것은 노동조합에 달려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