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있는 현장조차도 아파트 미분양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는 판입니다. 외환위기 때는 숲 가꾸기 등 정부의 실업대책이 있었어요.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밀려 오히려 10년 전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해요. 이번 기회를 통해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들이 정리돼 경쟁력 있는 건설업체들이 살아남았으면 합니다.”

대전에서 일하는 형틀목수 임아무개(46)씨는 “사상 최악의 불경기”라며 답답해했다. 요즘 건설노동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건설경기를 상징하는 대표적 지표인 타워크레인 가동률은 최근 30% 수준으로 떨어져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타워크레인협동조합 관계자는 “국내 타워크레인 3천300여대 중 제대로 가동되는 것이 1천여대에 그칠 것”이라며 “별다른 대안이 없다 보니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레미콘업체들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레미콘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으로 가동률이 13%에 그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설노조(위원장 김금철)도 사회적 이슈인 4대강 사업 반대를 주요 사업으로 내걸지 못하고 있다. 워낙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건설 등 국책사업 말고는 건설노동자들이 딱히 갈 곳이 없다. 일종의 딜레마다. 노조가 28일로 예정한 파업의 주요 목표 중 하나도 ‘노동시간 단축’이다. 일자리 나누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건설사무직 노동자들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건설기업노련(위원장 김동우) 산하 31개 사업장 중 80% 이상이 중소건설사들인데, 경영상황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이에 건설기업노련은 최근 ‘건설사 위기 대응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로 찾기에 나섰다.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무조건 아파트를 싸게 팔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건설업계가 원하는 대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할 수도 없다”며 “건설업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반복되는 건설사 읍소 … 해법은 ‘옥석 가리기’
 
올 들어 전반적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지만, 유독 건설업계에서만 찬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은행의 ‘3월 어음부도율 동향’에 따르면 건설업체 부도율은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건설업계는 정부 발주공사 급감으로 인한 수주난과 아파트를 분양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양난, 한계상황에 몰린 자금난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전체 경기가 살아나는 가운데 유독 건설업에서만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있는 데다 주택경기 침체 속에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성원건설·남양건설·대우자동차판매(건설부문) 등 시공능력순위 중상위권 기업들까지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발채무 위험도 만만치 않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36개 건설사의 PF우발채무 잔액은 45조원을 넘어섰다. 올해까지 갚아야 할 돈이 24조원에 이른다. 건설업계는 또다시 분양가상한제·총부채상환비율 완화 등 규제완화를 정부에 읍소하고 있다.

하지만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은 건설업 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다. 건설업계의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됐다. 그런 상황에서 양도세 감면 등 정부의 지원으로 버텨 왔을 뿐이다. 플랜트와 같이 새로운 국외 사업을 확장한 대형건설사와 달리 주택에 집중한 중견건설사들이 그 대상이었다.

이들 위기의 핵심은 미분양이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매번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정부는 지난해 2월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과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와 신축주택 계약자에게 양도세를 면제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세제혜택을 받고 팔린 주택은 30만 가구로, 이 중 26만 가구가 수도권 중심의 신규분양이었다.

정작 문제였던 지방 중심의 기존 미분양은 4만 가구에 그쳤다. 오히려 수도권 신규분양들이 혜택을 입은 것이다. 게다가 건설사들은 양도세 감면시한이 끝나기 전에 아파트를 한 채라도 더 팔기 위해 물량을 밀어냈다. 이것이 또다시 미분양으로 쌓였다.
결과적으로 분양가를 낮추는 건설업계의 자구노력, 선별적 금융규제 등 종합적인 주택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양도세 감면 등의 임시방편적인 정부 지원은 건설업계의 도덕적 해이만 부추길 뿐이다.

미분양 문제는 본질적으로 건설회사의 잘못된 경영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분양가격이 높은 중·대형 고급아파트 위주의 공급정책은 미분양 해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최근 민간 연구소들이 잇따라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입증된다. 지난 3월 현대경제연구원은 “아파트 가격이 구조적으로 하락기에 진입했다”며 “가계부채가 높아져 금융권으로부터 추가적인 차입 여력 역시 소진됐다”고 밝혔다. 같은달 23일에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산하 산은경제연구소가 “한국의 집값이 미국과 일본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40% 정도 떨어져야 한다”며 거품 붕괴를 경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금융권이 주도하는 구조조정, 대기업 건설사만 살찌우나
 
빚을 내서 아파트를 짓고 위기가 오면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건설업계의 행태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옥석을 가리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금융권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오히려 대기업 건설사들의 독과점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발 건설금융 기법으로 인해 건설사들은 채권단의 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건설사들이 주택·상가 건립사업을 추진하면서 분양이라는 미래 수입을 전제로 토지매입비용과 시공비용을 저축은행 등 여러 금융기관에게서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 돈을 빌려 주는 금융채권단은 건설사의 유동성과 재무구조가 악화되면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투자금융회사들은 투자 조건으로 구조조정시 채무상환을 요청할 수 있다. 금융회사들은 손해를 보지 않고, 모든 책임을 건설사가 지도록 만든 제도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은 “현재 진행되는 금융채권단에 의한 구조조정은 자본회수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건설사들이 최저가입찰제도에 의한 단가경쟁 부담을 하도급업체에 떠넘기고, 업체 간 담합을 통해 물량을 수주하는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부소장은 “중견 건설사들은 금융권의 과도한 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해야 한다”며 “건설산업의 근본적인 구조혁신보다는 거대 건설자본에 대한 독과점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이 부소장은 “구조조정을 통해 옥석 가리기를 제대로 하려면 이 같은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올바른 주택정책 위해 경영에 참여해야” 
 
중견건설사들이 주택시장으로 과도하게 몰리는 데에는 최저가낙찰제에 따른 입찰구조가 한몫한다. 대형 관급공사는 메이저 업체가 독식하고, 나머지 관급공사를 중견건설사들이 나눠 맡는다. 그런데 최저가낙찰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수익을 낼 수가 없다. 종합건설업체도 출혈경쟁으로 공사 담합 등 부조리를 낳고, 최저가 입찰로 인한 출혈을 메우기 위해 하도급 업체들에게 부담을 전가한다. 이로 인해 건설기능인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는 페이퍼 컴퍼니들이 오히려 가격경쟁에서 유리하다. 건설기능인력을 직접 고용하고, 시공 전문성이 높은 건실한 건설업체들이 도리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형적인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저가낙찰로 인한 노무비 부족으로 16만6천793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저가공사 속출은 안전사고와 부실공사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해 말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개정해 오는 2012년부터 100억원 이상 공사에 대해서도 최저가낙찰제를 확대 시행할 예정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심규범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가낙찰제가 확대되면 예산절감이나 일자리 창출, 내수 진작, 견실 시공 등을 가로막아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과당 가격경쟁을 방지하는 원가반영 원칙을 적용해 건실한 건설사들이 자생하고 능력 없는 페이퍼 컴퍼니가 퇴출되는 산업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건설산업과 건설사 경영에 개입할 수 없는 지금의 구조하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이 그때그때 수세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종탁 부소장은 “건설노동자들의 업무 특성상 경영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고 관여할 수 있는 만큼  경영에 적극 참여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주택정책을 견인해야 한다”며 “부동산 문제가 본격화될 지금이 시민들과 함께 고민해 나갈 최적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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