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6년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아무개(56)씨. 최근 이씨는 노조 간부로부터 5월1일 노동절 집회에 참가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씨는 집회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농사를 짓느라 주말에도 일하는 남편만 밭에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노동절의 의미도, 역사도 모른다. 그는 월급 88만9천원을 받는다. 그나마 지난달 노사가 첫 단체협약을 맺은 뒤 휴게시간이 근무시간으로 인정되면서 11만3천500원 인상된 액수다. 그의 유일한 바람은 자식 둘이 무사히 대학교육을 마치는 것이다.

철도노조에서 교선실장을 맡고 있는 전상룡(43)씨는 해고자다. 지난해 11월 철도노조가 파업을 벌일 때 심장수술을 받느라 병원에 있었다. 그럼에도 전씨는 파업 결정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그동안 노조가 벌인 4차례의 파업에도 살아남았던 그가 병원에 있다가 해고를 당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노조는 노동절 전날인 30일 파업에 들어간다. 그래서 전씨의 고민도 깊다. 정부가 또다시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낙인찍을 경우 자신과 같은 해고자가 쏟아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다음달 단체협약이 효력을 잃으면 각종 복지혜택 등 조합원들의 불이익이 커서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노동시간·저임금과의 싸움
 
다음달 1일은 세계노동절이다. 120년 전 미국의 노동자들이 ‘분노’와 ‘힘’을 보여 준 날이다. 인터넷에서 ‘노동절의 의미’ 또는 ‘노동절의 역사’를 검색하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몇 개의 표현이 있다. ‘100달러짜리 지폐’·‘다이아몬드 치아’·‘맥커믹 농기계공장’·‘헤이마켓 광장’·‘폭탄’ 등이다.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던 미국 노동운동 지도자 스파이즈의 최후 법정진술도 유명하다.

자본가들은 그랬다. 다이아몬드로 치아를 만들었고,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웠다. 반면에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의 고된 노동과 주급 7~8달러의 저임금에 시달렸다. 1886년 5월1일, 참다 못한 미국의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이틀째 일리노이주 시카고 맥커믹 농기계공장에서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에게 경찰이 총을 쐈다. 어린 소녀를 포함해 6명이 숨졌다.

경찰의 만행에 반발한 노동자 30만명은 다음날 헤이마켓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고, 누군가에 의해 터진 폭탄으로 경찰 7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집회에서 연행된 노동운동 지도자 8명 중 4명은 이듬해 처형됐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89년 7월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제2 인터내셔널 창립대회가 열렸다. 이날 각국의 노동운동가들은 미국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5월1일을 세계노동절로 정했다.
 
반복되는 노동절 화두
 
우리나라에서 세계노동절의 화두는 반복되고 있다. 세계노동절의 시작이 장시간노동·저임금과의 싸움이었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절 행사가 처음 열렸던 1923년에도 ‘노동시간 단축·실업방지·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기념행사를 치렀다. 노동절 100주년이었던 90년에도 임금인상이 주요 화두였다. 110주년이었던 2000년에는 주 5일 근무제 요구가 제기됐다.

외환위기가 닥쳤던 98년 고용보장 구호가 등장했는데, 120주년을 맞는 올해도 일자리 보장과 일자리 창출은 노동자들의 희망사항이다. 110주년이었던 2000년부터는 노동절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신자유주의 반대’가 구호가 반복됐다. 임금인상과 노동시간단축의 혜택을 받은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싸워야 할 상대로 다가온 것은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이었다.

정규직들이 정리해고와 싸우면서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사이 비정규직 문제는 손쓸 틈도 없이 커져만 갔다. 최근까지 노동절마다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한 정규직 노동자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외부를 향한 싸움보다는 내부에 연대를 호소하느라 급급했던 것이 최근 몇 년간 노동절의 모습이었다. ‘그들만의 노동절’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다시 나온 ‘노동탄압 중단’
 
올해의 노동절도 지금까지 나온 화두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청소미화원 이씨처럼 법정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많다. 반면에 120년 전처럼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우지는 않아도 수십, 수억 원에 이르는 주식배당 잔치를 즐기는 재벌들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그룹은 현금성 자산을 쌓아 두고 있다. 두 그룹이 이 가운데 10%만 고용에 투자해도 2만8천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3개월 연속 실업자가 100만명을 웃돌면서 고용통계상 ‘구직단념자’들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나 최저임금 보장은 올해 노동절의 주요 요구다. 특히 ‘노동탄압 중단’이나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도 눈에 띈다. 90년대 말 이후 잠잠했던 구호가 올해 노동절에 주요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이나 교사·공기업 노동자들은 정부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길이 막혀 버렸다.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는 번번이 반려되고 정부는 ‘법외노조’가 아닌 ‘불법노조’로 간주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태도에 비춰 보면, 공기업노조가 임금·단체협상 결렬로 파업을 하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불법가능성이 농후한 파업’이 된다. 법원의 금지 결정에도 교원노조 조합원들의 명단은 공개됐다. 공무원노조에 대해서도 조합원 명단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120년 전 미국의 ‘맥커믹 농기계공장’과 ‘헤이마켓 광장’은 여전히 존재하고, 누군가가 폭탄을 터뜨릴지 모른다는 생각은 과도한 것일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김영삼 정권 이후에는 노동절에 노동운동 탄압 문제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며 “과거 군사정부 막바지 때 분위기로 돌아갔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노동절
우리나라에서는 1923년 5월1일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로로 노동절 행사가 처음 열렸다. 당시 2천여명이 참가했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와 대한노총이 각각 노동절 행사를 진행했다. 이승만 정권은 57년부터 대한노총의 출범일인 3월10일을 노동절로 기념했고, 박정희 정권 때인 1963년부터는 근로자의 날로 이름이 바꿨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는 94년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했다. 노동절 탄생의 계기를 제공했던 미국은 9월 첫째 월요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매년 5월1일마다 세계노동절 기념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한국노총은 노동절 기념 마라톤대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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