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날이 점점 밝아오네요  -한영희-
 
오늘도 새벽에 잠이 깨어 잠이 오질 않아 이렇게 습관처럼 ‘가대위’를 찾아왔어요. 해린 아빠도 새벽에 자주 잠이 깨곤 했는데…. 요즘 그곳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가는지…. 어제는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쌍용 상황의 궁금하심을 애써 참으시면서 해린 아빠한테 전화가 자주 오는지 물어오셨어요. 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말씀드렸죠. “네, 자주…, 자주 전화와요. 어머님, 해린 아빠는 잘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렇게 거짓말을 했어요. 아버님 발인을 끝내고 평택으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시며 눈물을 훔치셨던 어머님. 차마 어머님께 당신의 상황을 말씀 드릴수가 없었어요. 아버님도 갑자기 보낸 터라 당신마저 그곳에 있음을 알린다는 건 어머님께 너무 불효라는 생각이 들어서, 언젠가는 아시겠지만 지금은….
 
당신이 옆에 있을 때는 당신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몰랐는데, 아이들과 피자 한 조각을 먹어도, 공원에서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도 당신의 빈자리를 느끼게 돼요. 어제는 해린이가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덥고 누워 있기에 왜 일찍 자려고 하느냐 물었더니, “아니, 아빠가 보고 싶어서…” 하며 울먹였어요. 그래서 꼭 안아줬답니다. 큰애도 뭔가 아는 것처럼 요즘 아빠의 얼굴을 그리워하네요. 당신도 많이 보고 싶어 할 거라 생각해요.
 
당신을 면회할 때마다 태연한 척, 괜찮은 척하지만 당신에게도, 저에게도 지금 이시간이 좋은 시간으로 남을 거라 생각해요. 우리, 조금만 참기로 해요. 우리,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갖기로 해요. 좋은 소식이 오려고 더디 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자고요.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그곳에서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나왔으면 해요. 날이 점점 밝아오네요. 우리의 나아갈 길도 이렇게 밝아오겠죠. 당신은 우리 가족의 희망임을 잊지 말고, 오늘도 해린이와 희수를 생각하며 힘차게 달리자고요.
사랑합니다. 2009년 7월 7일 당신의 사랑이
 
24.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권지영-
 
기계가 멈춰서고 공장의 불들이 꺼진 공단의 밤은 인적이 드물고 조용하기만 합니다. 오늘 저녁도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바람에 이리저리 일렁이는 초를 앞에 두고 하루빨리 이 힘들고 지루한 싸움이 끝나기를 바라며 가족들이 함께한 작은 촛불문화제가 있었습니다.
 
베란다 창문 너머 멀리 공장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없이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남편이 작업복을 입고 주야 맞교대로 동료들과 웃으며 출근했을 공장을 까만 제복의 경찰들이 철조망을 따라 빼곡히 둘러싸고 있습니다. 마치 중죄를 지어 사회와 차단시켜 교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놓은 교도소 같습니다. 지금 쌍용자동차는 공권력에 의해 저들의 말대로라면 보호, 저의 눈으로 보자면 고립되어 있습니다.
 
돌이 막 지난 아기와 말을 이제 제법 잘하기 시작해 아빠를 찾는 네 살 난 딸과 함께 남편을 보러 한 아내가 찾아옵니다. 그 앞을 막아서는 경찰에게 왜 들어가지 못하게 하냐며 부탁을 하다, 하소연을 하다, 항의를 하다, 그냥 주저앉습니다. 아기를 좀 안아보자고, 좀 더 가까이 보자고 철망 너머 한 노동자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칩니다. 옆에 있던 저도, 제 딸아이도, 그리고 다른 아내들과 아이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며 울어버립니다.
 
공장 근처로 가면 우선 신분증 검사를 합니다. 그리고 가지고 온 물건을 확인받습니다. 정문 앞으로 가서 남편에게 물건을 건네주려고 하면 또다시 경찰이 다가와 막아서며 면회를 하려면 인적사항을 쓰라고 합니다. 그리고 비닐 봉투 안 양말과 속옷, 그리고 한두 가지 반찬들을 뒤적이고 생수병 속의 물까지도 확인을 합니다. 그런 까다롭고 기분 나쁜 절차를 거치고 거쳐 허락해주는 면회라는 건 경찰 컨테이너로 가려지고 남은 2미터 남짓의 정문을 사이에 두고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좁은 문을 사이에 두고 붙어 서서 아이들을 잠깐 보고 문 틈새로 아이의 손을 잡는 것으로 경찰이 말하는 면회가 끝이 납니다. 그나마도 경찰이 방패로, 바리케이드로 막아서고 있는 정문 앞에 가는 것이 두려워서 우는 아이를 안고 아빠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엄마들이 태반입니다.
 
가만히 서서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부당하고 억울한 해고를 당해 이대로는 정든 일터를 뒤로하고 떠날 수 없어 파업을 하고 있는 천 명의 노동자들이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의 해고통지서를 받아들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던 아내와 가족들이 대체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구로에서 창원에서 두 달여 만에야 남편을 보러와 철조망 너머로 자장면 한 그릇을 건네주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아빠와 아이들이 마주앉아 자장면을 먹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장면들이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빨리 정리해고라는 그 검고 검은 먹구름이 걷혀, 일하는 자 그 누구라도 모두 행복하게 노동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길 소원하고 또 소원합니다.
2009년 7월 8일
 

25. 아빠, 힘내세요  -김영희-
 
저는 23살이고, 열심히 투쟁하고 계시는 어느 아버지의 하나뿐인 딸이랍니다. 아빠를 위해 딱히 해드릴 게 없는 것 같아서 속상해 하던 차에 ‘가대위’ 카페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까지 쓰게 되었네요.
아빠가 파업하기 직전까지 요즘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아빠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각오하고 있자, 이렇게 늘 말씀하셨는데 그때마다 저는 대수롭지 않게 시큰둥 대답하곤 했습니다. 설마 우리 집이…, 설마 우리 아빠가….

쌍용차의 파업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전에도 가끔 파업하느라 며칠씩 집을 비우셨기 때문에 걱정은 되면서도 마음은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직원들 누구나 그랬겠지만, 어릴 때부터 봐온 우리 아빠의 모습은 성실함 빼면 시체였고 언제나 회사가 우선이셨기에 우리 아빠한테 그런 일은 안 생기겠지,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업 보름 후쯤, 엄마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아빠도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고. 그 문자를 받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눈물이 났습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그런 장면들이 저에게 현실로 다가오니까 되게 막막하더라고요. 눈물을 참고 덤덤한 척하는 엄마였지만 전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을 듣고 있자니 더욱 눈물이 났고, 아빠한테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겁이 났습니다. 아빠는 괜찮다고, 그런 거 무시하고 열심히 싸우겠다고 하셨지만, 가장이기에 힘들어도 슬퍼도 괜찮은 척하는 아빠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누구보다도 아빠가 더 슬플 텐데 괜찮다고 우리를 토닥여 주는 아빠 때문에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어요.
 
주위에서는 아빠가 지금까지 고생하셨으니까 편히 쉬시게 네가 열심히 해야지, 좋게 생각하자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지만, 저는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한편으론 이제 돈 없다 아껴 써라 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돈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짜증도 나고 그랬답니다. 이건 당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거잖아요. 말이야 쉽죠. 위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고, 혹시나 아빠가 자신이 실업자라는 이유로 의기소침해 계시거나 속상해하실 것 같아서 그게 더 마음이 아파옵니다. 정말 우리 집에는, 나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랐는데….
 
요즘 들어 아빠가 많이 보고 싶네요. 며칠 전 집에서 엄마, 오빠와 함께 아빠랑 영상통화를 했는데 겉으로는 웃고 있으면서도 가슴이 찡했답니다. 이게 뭐하는 건가. 왜 우리가 이렇게 슬프게 헤어져 있어야 하는 건가 하고….
 
현재 약 50일 동안 힘들게 싸우고 계신 아버지들과 그 외 가족들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혹시나 나중에 안 좋게 끝이 나더라도 최선을 다해 싸웠다면 후회는 없을 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마지막까지 파이팅 하시고 정말 건강 조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빠 파이팅! 엄마도 파이팅! 오빠랑 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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