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노동의 존엄성

국제노동기구는 1944년, 필라델피아선언을 통해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labour is not a commodity)”라고 선언했다. 인간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할 인격의 주체인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마치 사고파는 상품처럼 인간의 노동을 다루는 것은 인간 자체를 사고파는 것과 같다는 근대적 인식이 그 토대를 이루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인류문명은 인간의 노동행위가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쟁해 왔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선언은 ‘선언’일 뿐이었을까.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세계에서 인간의 노동이 분명히 상품과 다르게 취급되고 있을까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간접고용 … 무엇이 문제인가

그런데 66년 이전, 전 세계의 정부, 사용자, 노동조합이 모여 국제노동기구를 창설하면서 채택한 선언 맨 앞머리의 내용은 지금, 적어도 한국의 상황에서 만큼은 제대로 무시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필자는 얼마 전 서울 구로지역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문제를 조사하던 중에 매우 놀라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 제조업체의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던 그 노동자는 전화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역 앞으로 나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휴대전화번호를 받아 적어 약속된 장소로 갔다고 한다. 약속장소에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거니 출입구 앞에 주차되어 있던 승합차에서 사람이 내리더니 승합차에 타라고 했고, 차에 올라, 그 전에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과 해당 업체로 가 면접을 봤다고 한다. 채용이 결정된 후에 통장에 찍힌 첫 월급의 송금인의 이름을 보고 나서야 자기가 파견업체를 통해 고용된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당시 이런 내용을 전해 듣고, 나중에 지역단체와 함께 실태조사를 거치면서 지역에 채용공고를 낸 회사들에 전화를 걸어 채용문의를 위해 방문하겠다고 했더니 열 개 중에 아홉은 파견업체를 통해 고용하고 있으니 그리로 알아보라고 했다.
파견이든 용역이든 사람을 고용해 그 노동자들의 노동을 다시 다른 회사에 되파는 행위야 말로 인간의 노동을 상품으로 대하는, 가장 분명한 행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간접고용의 실체

한국의 간접고용의 실체는 정말로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근로자 파견은 일반적인 직업소개업과 다를 바가 없다. 심지어 자기가 속한 파견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도급과의 구분도 매우 어렵다. 노동부와 법무부가 공동으로 도급과 파견의 구분기준을 수립했다고 하지만, 그 기준에 따라 위법한 도급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개별적인 파견근로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입증책임’이 너무 과중해, 현실의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도급으로 위장된 고용관계들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 곁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간접고용의 문제점을 직시하면서도 그 규모와 형태조차 분명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권리상태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현실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조건에 놓여있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임금이나 근로조건은 형식적으로 그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사업주체가 하청사용주일텐데 이들은 대부분 매우 영세한 수준이어서 실제 원청사용주로부터 지급받는 도급료로 임금과 제세공과금을 지급하고 나면 남는 수익이 미미한 상태다. 따라서 이들을 상대로 적정한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한다거나 복지후생의 수준을 높여달라는 요구는 원래부터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노동조합을 만들어 교섭을 통해 이를 관철하고 싶어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즉시 원청업자로부터 도급계약이 해지돼 버리기 때문에 하청업체로서는 사업의 존폐 자체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간접고용노동자들은 대부분 원청업주를 자신의 사용자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등의 활동을 해 왔고, 그로 인해 사실상 해고가 되고 나면, 원청을 상대로 ‘근로자’의 지위에 있음을 인정해 달라는 구제를 청구해 왔다.

위법한 도급에 대한 권리구제방식

이 사건의 피고는 약 1,400여명의 근로자를 고용해 호텔을 운영하는 사업자였다. 이 회사는 용역업체를 통해 호텔의 객실 및 로비 등의 청소업무를 위탁해 담당하도록 해왔다. 원고들은 이 회사를 통해 피고회사에 파견돼 객실청소를 담당하는 룸메이드와 기타 공용장소를 청소하는 퍼블릭 메이드로 일해 왔다. 원고들은 이 사건 업무도급계약에 따라 피고의 이 사건 호텔에서 객실청소 및 점검, 공공지역 청소 및 점검, 기물관리 및 세척 등의 업무를 담당하면서 근무하던 중, 2005년 7월11일자로 용역회사로부터 본사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고, 같은해 7월20일 해고 통보를 받은 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피고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제기하여 부당해고가 인정됐고,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사건이 패소하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지급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원고들은 미지급임금을 계산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도급회사로부터 받은 임금이 아니라 원래 원청회사인 피고호텔에서 메이드로 근무하게 됐을 경우 지급될 수 있는 임금을 기준으로 임금지급을 청구했다.

고용관계의 확인

법원은 “두 사업주 사이에 체결된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과 상관없이 실질적으로 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다른 사업주와의 계약에 기해 해당 근로자로 하여금 다른 사업주의 지휘 ․ 명령을 받아 그 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했다면, 이는 근로자파견으로 보아 구 파견근로자보호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하면서 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은의 규정에 따라 피고가 원고들을 2년을 초과해 파견근로자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록 그것이 적법한 근로자파견이 아니더라도, 원고들이 사실상 파견근로자로 근무한 후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피고와 위 원고들 사이에 직접고용관계가 성립하며, 이 경우 근로관계의 기간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한의 정함이 없다고 판결했다.

지급될 임금액의 결정

법원은 구 파견법에는 위와 같이 고용의제규정만 있을 뿐 고용이 의제될 경우 그 근로조건에 관한 규정은 없으나, 위 고용의제규정의 입법취지 및 현행 파견법 제6조의 2 제3항이 2년을 초과해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함으로써 당해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하는 경우,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당해 파견근로자와 동종 또는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으면,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파견법상의 고용의제규정에 따라 고용이 의제될 경우에도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당해 파견근로자와 동종 또는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으면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이 적용된다고 봄이 상당하고, 다만, 근로계약기간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기한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피고와 직접고용관계가 성립된다고 의제되는 원고들에 대해서는, ① 위 원고들과 같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② 근로기간은 기한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피고의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을 적용하되, 다만 ③ 원고들이 고용의제 된 날 신규로 채용됐음을 전제로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작지만 의미 있는 판결

사건번호를 보면 ‘2006’으로 시작한다. 사건이 2006년에 접수됐다는 법원의 표시이다. 선고일은 2010년 2월이다. 넉넉히 만 3년이 넘는 기간을 끌어왔던 사건이다. 법원이 과연 불법파견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적지않게 고민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더군다나 이제 1심을 끝냈으니 언제 또 최종적으로 결론이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것처럼 노동이 상품처럼 팔리는 세상에서 가장 상품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조금 더 차별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 것이 작지만 의미 있는 이 판결의 속뜻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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