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판결 - 2번에 걸친 전교조의 ‘시국선언’. 전주지방법원은 ‘무죄’, 인천지방법원은 ‘유죄’,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은 ‘유죄’, 이 사건 대전지방법원은 ‘무죄’, 청주지방법원은 ‘유죄’. 다음 번엔 서울중앙지방법원 차례인데 선수들, 부담이 크겠다. 법원들마다 조리법이 달라 여러 번 뒤집기를 반복한 탓에 사건의 본질이 기름기로 범벅이 된 것 같다. 그나마 이 사건 판결이 비교적 담백하고 찰지다. 이 사건 판결 전문을 읽노라면, 잠언집을 읽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큰집, 조인트 - 교사와 판사 모두 공무원. 한 그룹 소속에 계열사만 다를 뿐. 한쪽은 시국선언으로 ‘큰집’을 가니 마니 하고 있고, 또 다른 한 쪽은 법원 개혁이다 뭐다로 ‘조인트’ 까이고 있으니. 정말 이 시점에서 필자의 항정살과 아롱사태를 도려내는 심정으로 시국선언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지금은 곤란하다. 독자들이여,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국가공무원법 - 이 법은 공무원이 정당이나 정치단체를 결성 또는 가입하는 것을 금지한다. 또한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전교조 시국선언은 여기에 걸린 게다. 검찰과 일부 판사들은 시국선언이 집단행위이고, 정치적 목적을 가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호떡 속 흑설탕 되시겠다.
앞으로는 교사뿐만 아니라 공무원인 검사·판사들도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에는 계모임·생일잔치·야유회·골프회동 등도 포함될 수 있으니 공무 외의 일에 집단적으로 모이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계모임은 자제하고 CMA나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고, 본인 생일은 고독을 잘근잘근 씹으며 홀로 자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시국선언 - 시국선언의 과정과 내용은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표 참조>
 

사실 시국선언이라고 해서 읽어 보니 거창한 것도 아니더라. ‘선생님표’ 논술답안 정도로 무난하다. 정치적 목적이 의심된다면 판결전문과 자유기업원에서 나온 ‘전교조 비평(김정래 저)’이라는 책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가격은 1만원. 책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전교조의 이념과 운동 비판(신중섭 저)’이라는 삐라류의 서적이 5천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 봄날, 한국소설에 싫증났다면 간만에 흥미진진한 공상 추리소설을 한 권 읽으시길.

부모 마음 - 이 사건, 판사들도 법관의 입장이 아니라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법리는 무슨. 당장에 선생님들이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대통령의 자세전환’을 척추신경외과학적인 충고가 아닌 마이크를 쥐고 서울시내가 쩌렁쩌렁 울리게 지도편달을 했다고 하니 부모 마음 무너질 수밖에. 더구나 직립보행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딩들의 부모들은 앞날이 깜깜할 수밖에. 학교를 어찌 보낼꼬. 더구나 전교조 선생님들한테 걸리면 공부는 거의 절단난다고 봐야 하지 않는가. 지난 1월 발표된 ‘교원노조와 학업 성취도의 관계’라는 연구에서 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는가. 전교조 교사가 많을수록 수능성적이 낮다고.

정치적 중립 - 필자가 봉사활동을 했던 곳의 아이들이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그날 사회자인 개그맨 박수홍씨가 ‘우리나라 대통령의 별명 아는 어린이’를 찾자 한 어린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미친 소요.” 당근 박수홍씨는 사색이 됐고, 재빨리 ‘얼리버드, 일찍 일어나는 새죠’라고 수습한 적이 있었다. 정보가 팔팔 끓어 넘치는 21세기에 초딩들 또한 자신의 고유한 정치색이 있더라.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중립이라는 가치는 사실 몰가치다. ‘난 중립’이라고 말하는 자 중에 홍어 냄새 안 나는 사람 없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저울에 온몸을 달고 살아야 하는 검사들을 보라. 정치적 중립을 위해 사람을 무리하게 기소하고, 별건수사까지 해야만 하는가. 정치적 중립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만 요구해도 족하다. 노동자인 말단 교사나 공무원들에게까지 기계적인 중립을 요구하는 이유가 어느 쪽에 편들지 말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 그 정도가 지나친 게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노조를 만들어 가입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노조는 분명히 당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조는 법까지 만들어 인정해 주시면서 시국선언은 안 된다, 노동운동은 안 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방정식이다.

선진국들 - 정치적 중립이라는 걸 우리 기준으로 놓고 보면 선진국들의 사정은 심각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교원노조가 오바마 후보에게 5천만달러(약 600억원)이나 되는 정치자금을 시원하게 쏘신 바 있다. 이건 삼척동자의 숙부님께서도 아시는 바다. 일본 또한 공무원의 정당가입과 후원·모금, 거주지 외의 선거운동까지 허용한다. 참고로 일본은 사회당·공산당 모두 존재하는 나라다. 아, 말세다. 근데 이 두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거의 제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십자인대 쌍으로 끊긴다. 풀썩. 그나마 우리나라 검찰이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고 정치자금을 납부해 온 전교조 교사들과 공무원들을 조사 중에 있으니 다행이다. 결국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대한민국이었다는 말씀이었네. 그래서 이토록 난리를 치는구나. 아시아의 스위스, 대한민국. 중립 인증! 브라보!

글로벌 스탠더드 - 조선 반도의 상황이 그들과 다르다 할지라도 정치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런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르면 안 되나. 허나 불리하면 법치주의, 유리하면 글로벌 스탠더드. 지겹다, 지겨워. 군사독재 시절, 선거에 공무원들 동원했던 기억은 그들에게는 그저 추억인가. 허나 글로벌 스탠더드, 각하께서 난 못해, 이러면 죄다 잡혀 가야지 뭐. 적어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눈물 흘린 공무원들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할 게다. 그들의 눈물을 감식해 눈물에 함유된 정치적 목적과 희석된 정치적 중립을 꼭 증거로 제출하기 바란다. 또한 투표도 중립적으로 하시고, 회식도 중립적으로 하시고, 잠도 중립적으로 주무시길 바란다. 요즘은 가글을 해도 당최 입안이 상쾌하지가 않다.

표현의 자유 - 표현의 자유, 기본권의 노른자다.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자유를 표현할 권리다. 그 자유의 정점에 있는 것이 정치적 자유다. 정치적인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자웅동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 중립이라는 논리다. 표현할 권리를 상실한 자가 무엇을 주장한다는 말인가. 물론 시대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미네르바’가 새장에 갇히고, PD수첩의 PD는 기소되고 수첩은 압수됐다. 연아를 포옹하려다 미수에 그친 장관님의 스타일을 구겨도 잡혀 간다. 다음부터는 장관님의 포옹에 카메라를 끄고 지그시 눈 감으라.

공익 - 공권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위헌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구체적’인 위험을 발생하는 경우에 한해 제한이 가능하다. 하지만 시국선언이 초·중·고딩들의 발육과 성적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됐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게다가 선생님들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 또는 반대한 흔적도 없다. 극우 본좌급의 양갑, 조갑제씨와 서정갑씨의 홈페이지를 반나절 내내 뒤져 봐도 유력한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전교조의 시국선언으로 공익을 훼손당했다고 주장할 이는 따로 있을 게다. 2009년 ‘국립’ 서울대의 교수 124명이 정부의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며 시국선언을 했을 때 ‘깽판’을 친 이들이 기억난다. 정규 교과과정을 마친 자식들을 이미 사회로 방생하사 이 땅에 좌파 포함한 괴뢰들과 외로이 싸우고 계신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활동가 할아버님들이다. 한편 얼마 전 이들에 대항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기치 아래 ‘대한민국자식연합’이 출범했다. 대한민국은 이토록 중립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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