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가수 겸 탤런트였던 최진영(39)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최진영씨는 누나인 고 최진실씨가 세상을 떠난 후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에게도 우울증은 피해 가기 어려운 고통이다. 간혹 우울증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7일 건설일용노동자로 일하다 뇌출혈이 발생해 산재요양을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아무개씨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만성피로와 우울감·수면장애 겪어

건설노동자였던 김아무개(사망당시 55세)씨는 지난 98년 11월 ㅅ종합건설에 입사해 미장공으로 일했다. 김씨는 같은해 12월 서울 중랑구의 한 재건축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고 ‘뇌실질 내 뇌내출혈’ 진단을 받았다. 이후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요양승인결정을 받아 요양해 오던 중 이듬해 3월 ‘상세 불명의 사지마비’ 진단을 받았다. 공단은 이를 추가 상병으로 승인했다.

김씨는 같은해 5월 치료를 종결하고 장해등급 2급 5호(신경계통의 기능 또는 정신기능이 뚜렷한 장해가 남아 수시로 간병을 받아야 하는 사람) 판정을 받았다. 이후 기존 상병이 악화돼 2000년 6월부터 재요양을 하다 2005년 12월 다시 치료를 종결했다. 2006년부터는 집 주변에 있는 의원 등에서 통원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거동이 불편해 아내에게 항상 불평을 했다. 혼자서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을 정도의 거동은 했지만 외출할 때는 휠체어를 이용해야 했다. 극심한 전신통증으로 수면장애를 겪어 만성피로와 무기력함·우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요양기간 중 주위사람에게 폭언을 하는 등 행동이 거칠어져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것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김씨는 2007년 7월16일 오전 아내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했고, 아내가 “왜 자꾸 그런말을 하느냐. 죽을 사람은 언제든 죽는다”라고 말하자 화가 나 날카로운 물건으로 오른쪽 손목을 긋는 등 과격한 행동을 했다. 얼마 뒤 외출한 아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김씨는 자택의 방에서 검정색 전기선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출입문 모서리에 목을 맸고, 의자에 앉은 채 사망해 있었다.

법원, 상병과 사망 인과관계 인정

김씨의 아내는 김씨가 숨지자 “기존 상병에 따른 정신장해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또는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공단에 유족보상과 장의비를 신청했다. 공단은 그러나 “기존 상병과 망인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김씨는 정신과진료를 거부했지만 2004년 4월부터 2007년 6월까지 의원에서 극심한 전신통증과 반신마비에 따른 거동불편·두통·불안·우울감·수면장애·만성피로감을 덜기 위해 투약과 침 치료를 받았다.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김씨의 주치의는 “일반적으로 뇌간출혈 환자에게 마비나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고 이에 따른 상실감에 의해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17일 “공단이 김씨의 아내에게 내린 유족보상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근로자의 사망이 업무상질병으로 요양 중 자살함으로써 이뤄진 경우 당초의 업무상재해인 질병에 기인해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의 상태에 빠져 그 상태에서 자살이 이뤄진 것인 한 사망과 업무와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 경우 근로자의 업무와 위 질병 또는 질병에 따르는 사망 간의 인과관계에 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법원은 이어 “인과관계 유무를 판단할 때 자살자의 질병 내지 후유증상의 정도·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요양기간·회복가능성 유무·연령·신체적 심리적 상황·주위 상황·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에 대해 문웅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산재 대표노무사)는 “원칙적으로 자해나 자살의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지만 김씨의 경우 산재로 인한 정신과적 후유증이 자살의 원인이 된 만큼 업무상재해의 연장선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며 “공단에서 산재근로자들이 요양 과정에서 겪게 되는 우울증 치료를 위한 심리재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와 같은 뇌내출혈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정신과적 후유증상에는 인지기능 장애·우울·불안·의식장애·흥분·편집증·다행감·무감동·공격성 등이 있다. 심한 우울증 환자의 경우 무력감·고립무원감·분노와 공격의 감정·죄책감·자기 징벌의 욕구 또는 망상 등의 이유로 자해 또는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10년3월17일 선고 2008구합27575 유족보상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대법원 1993년12월14일 선고 93누9392 유족보상금지급청구부결처분취소
대법원 1993년10월22일 선고 93누13797 유족보상금지급청구부결처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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