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말 한국공항공사에서 소방·장비 등 직렬 근로자 15명이 정리해고됐다. 한국공항공사는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계획에 따라 소방·장비 등 직렬에 대한 외주화를 단행했다. 해당 근로자들은 전직과 퇴직, 그리고 정리해고됐다.

경영상황이 나쁘지 않은 공기업조차도 정리해고가 실시되고 있다.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대규모 정리해고가 일반화되고 있다. 쌍용자동차·금호타이어·한진중공업·대림자동차공업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정리해고가 활용됐다. 정리해고는 기존의 근로관계를 계속하기 어려운 책임 있는 사유가 근로자에게 발생해서 하는 해고가 아니다. 근로관계를 사용자의 사정으로 종료시키는 것이다. 법은 여기서 사용자의 사정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표현했다(근로기준법 제24조 제1항). 법원은 생산성 향상·구조조정·기술혁신 등 인원삭감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조차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조항으로는 근로자의 근로관계 존속을 보호하기 어려운 지경이 된 지 오래다. 근로자의 생존권이 걸린 근로관계에 관한 존속 여부가 사용자의 일방적인 처분에 맡겨져 버렸다. 그래서 사용자는 정리해고로 위협하며 근로조건을 저하시키고 인원감축을 한다. 그래서 우리 근로자들은 사용자에 순응하고 노조는 굴복한다.

그러나 정리해고만이 사용자의 무기는 아니다. 우리의 경우 사업장에서 모든 권력은 사용자의 것이다. 근로자와 노조는 사용자의 권력행사의 대상일 뿐 결코 사업장 권력의 공유자가 아니다. 그래서 사업장의 존폐와 조직변경 등은 사용자의 권한일 뿐 근로자나 노조와 공동으로 정할 사항이 아니다. 감히 이를 노조와의 합의사항으로 정해 놓았다고 해도 사용자의 고유한 경영권에 관한 제한이고 협의 정도의 의미로 판사들은 파악한다. 심지어 취업규칙 작성과 변경의 권한을 사용자에게 부여했다(근로기준법 제94조). 이에 따라 복무규율뿐만 아니라 근로조건조차도 사용자가 정하면 그것이 사업장의 기준이 된다. 이러니 근로자는 어느 사용자에게 복종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을 뿐 어떠한 조건에서 어떻게 근무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없다.

근로자는 자신의 근로조건과 근로관계는 어떻게 정해지고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고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배울 필요가 없다. 학교에서는 근로자의 권리에 관해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의 학교에서는 성실하고 근면한 자를 양성하면 된다. 9시 전에 등교해서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교사의 지시에 복종하는 자로 10여년 학습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상이 이 나라에서 근로자의 상태이고 지위다. 따라서 이상이 이 나라에서 사용자의 권한이고 지위다. 사업장은 사용자의 것이다.

2.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는 헌법에서 정한다. 헌법에서 어떻게 정했길래 대한민국에서 사용자와 근로자의 지위는 위와 같은 것일까. 위 사용자와 근로자의 지위는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 내지 복종의 관계다. 도대체 헌법 어디에 이러한 관계를 설정해 놓았는가. 헌법 전문은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 경제 …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이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 내지 복종의 관계를 선언한 것은 아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규정했다(제23조 제1항). 재산권을 보장했기 때문에 재산을 소유한 사용자의 처분에 근로자는 복종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근로자는 사용자가 소유한 재산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노예는 노예소유주의 재산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므로(헌법 제10조) 근로자와 노조가 임금협상을 사용자에게 백지위임하는 등으로 아무리 사용자의 지시에 복종하고 순종한다고 해도 근로자는 사용자의 소유물은 아니다. 따라서 재산권 보장이 사용자와 근로자의 지위를 규정한 것일 수 없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했다(제15조). 이것이 사용자가 사업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 것이므로 사용자와 근로자의 지위를 정한 것일까.

국민인 사용자가 자유롭게 사업을 영위하여 변경과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지위가 인정될 수 있겠으나 그 사용자가 사업을 영위하면서 근로자를 복종시킬 자유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다. 헌법은 경제질서에 관한 장을 두고 있다(제9장). 여기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했다(제119조 제1항).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를 대한민국의 경제적 기본질서로 한 것이라고 한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면 당연히 사용자의 경제상의 자유는 보장되는 것이고 사업장에서 근로자를 사용해 행해지는 경제질서가 기본질서로 보장된다. 따라서 근로계약관계를 통해 사업장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관계의 설정은, 즉 자본주의 경제관계는 대한민국에서 존중되고 보장된다. 그렇다고 위에서 살펴본 사용자와 근로자의 지위가 이 헌법 규정에 의해 설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용자와 근로자의 지위는 대한민국에서 어디서 정해진 것일까. 헌법은 위 제규정에 의해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자유를 간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뿐이다. 왜 그럴까. 헌법은 국가의 조직과 국민의 기본권을 정한 최고의 규범인데 왜 여기서 사용자와 근로자의 지위에 관해 정하고 있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 이미 자본주의 사회는 형성되어 있었고, 헌법은 이를 바탕으로 그 사회에서의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 질서를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법규범이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기본적 경제질서를 창조하지 않았다. 1948년 헌법 제정 당시 이미 자본주의 경제질서가 확립돼 있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그 경제질서를 기본적 경제질서로 확인하고 그 경제질서에서 사용자의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면 충분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은 자본의 노동에 대한 지배 또는 노동의 자본에 대한 복종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3.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위에서 살펴본 사용자와 근로자의 지위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질서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사용하여 사업 활동을 하는 관계를 기본적 경제질서로 한다. 사용자가 생산설비 등 사업수행에 필요한 설비 등에 근로자를 결합시켜 근로의 제공을 통해 상품, 용역 등 사업목적으로 달성한다. 대한민국이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존중하는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한다고 했다고 해도(헌법 제119조 제1항) 여기서 사용자와 근로자의 지위는 정해지지 않는다.

이 헌법 제119조 제1항은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함으로 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업장의 권력을 사용자의 것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근로자와 공유하도록 할 것인가. 이것은 헌법 제119조 제1항에서 정한 바 없다. 위 헌법 제규정에서도 정한 바 없다. 오히려 헌법은 국가로 하여금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도록 했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제119조 제2항).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되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업장의 권력이 사용자의 독점이 아닌 근로자와의 공유도 얼마든지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헌법제정권자인 대한국민이 “ … 사회적 … 불의를 타파 … 경제 …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헌법 전문에서 선언한 것을 보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사업장 권력이 사용자의 것으로 보장될 수만으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는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독점적 권력을 제한하고 규제할 수 있으며 경제민주화를 위해 근로자와의 권력의 공유를 설계해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사용자의 재산권의 내용과 행사는 법률로 정해지는 것이며, 그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해야 한다(헌법 제23조 제1항 후문, 제2항). 따라서 사용자의 사업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근로자의 고용 등 근로관계상의 권리 보호를 위해 국가가 사용자를 규제하고 입법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므로(헌법 제10조) 국민의 대다수인 근로자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가 존재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헌법이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서 정하도록 하고 근로의 권리를 규정하고 국가의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인금의 보장에 노력하고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32조). 사업장에서 사업은 누가 수행하는가. 근로자다. 사업장에서 사업 결과는 누가 차지하는가. 사용자인 자본이다. 필자는 지금 사용자의 것인 사업 결과물을 근로자와 사용자가 공유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처분에 일방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근로자의 지위를 말하는 것이다. 근로계약관계가 본래 그런 것이라고 당신들이 말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본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근로계약관계는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복무규율도 사용자가 정하고 정리해고 등으로 사용자의 처분에 해고되어야 하고 사업장의 주요한 결정에 관해서도 참여할 수 없는 자이다. 이 때문에 국가가 이를 규제하고 사업장 권력을 근로자와 사용자가 공유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해서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이제 당신들에게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사업장 권력을 사용자의 것으로 정한 바 없다. 사업장 권력을 사용자와 근로자가 공유할 수 있다. 총자본의 노예로 노동이 존재하도록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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