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양성윤)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동부는 노조의 설립신고에 대해 한 차례 보완을 요구하고 두 차례 반려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일 출범식과 관련해 노조 간부 18명을 전원 중징계하겠다고 밝혔다. 출범식에 참석한 공무원들도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전원 중징계한다는 방침이다. 참석자는 어림잡아 500여명이다.
이런 가운데 행안부가 이달 초 공무원노조들의 홈페이지를 점검하겠다고 나섰다. 지방공무원단체 홈페이지에서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글이나 개인 인신공격성 글을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가 행안부의 ‘지방공무원단체 홈페이지 위·불법 게시물 정비계획’을 들여다봤다.

“내용을 보아하니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사이버모욕죄 시범실시를 여기서 하는 것 같군요.”

최근 행정안전부가 지방공무원단체 홈페이지 위·불법 게시물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시민’이라는 아이디의 한 누리꾼이 전국공무원노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린 댓글이다. 행안부는 이달부터 공무원노조 홈페이지 일제점검에 들어갔다. 전국공무원노조·공무원노총 등 4대 공무원 단체 사이트와 시·도, 시·군·구별 300여개 지부 홈페이지를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행안부의 목적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글과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글을 찾아내 ‘사이버상 공무원의 근무기강을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3~4월은 자율정비 권고기간이다. 행안부가 정부정책 반대 게시물을 단속하겠다는 근거는 지난해 11월 신설한 공무원복무규정이다. 복무규정에 따르면 공무원이 집단·연명 또는 단체의 명의를 사용해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반대하거나 국가 또는 지자체의 정책 수립·집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공무원노조는 성명도 못 내나
 
행안부는 위·불법 게시물 사례를 몇 가지로 제시했다. 가령 공무원노조가 홈페이지에 올린 강령 중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 운동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다’, ‘민주사회 건설과 세계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국내외 단체들과 연대한다’, ‘분단된 조국의 자주·민주·평화통일을 지향한다’, ‘사회의 불평등 해소와 인간의 존엄성 실현을 지향한다’는 내용을 지목했다.

또 4대강 사업 예산에 대한 비판성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최근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 특별사면에 대한 논평, 지방재정 악화에 대한 책임을 묻는 논평 등을 모두 위·불법 사례로 제시했다. 행안부는 특히 노조의 한 지부가 2006년에 올린 성명까지 찾아 공개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집단행동에 제약을 받는 공무원노조들이 앞으로 성명이나 논평조차도 마음대로 못 내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공무원노조의 활동을 원천봉쇄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진원 공무원노조 대변인은 “정부가 잘되게끔 하는 행위를 막는 것은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일이 아니다”며 “노조는 탄압을 당하더라도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고, 정부가 국민여론의 판단을 받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게시판까지 점검
 
행안부는 지난해 7월 옛 전국공무원노조 경기본부가 옥쇄파업 중이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투쟁기금을 전달했다는 소식 글을 올린 것도 위·불법 사례로 지목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공무원노조는 법적으로 근무조건과 관련한 행동만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불법파업을 하는데 공무원이 투쟁기금을 주는 것은 근로조건 개선과 전혀 관계가 없고 국민들이 봤을 때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행안부는 노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까지 일일이 점검하겠다는 계획이다.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 따라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를 유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개인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자유게시판까지 점검하는 것에 대해 비판여론도 만만치 않다.

권영국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는 “공무원이라고 하더라도 직무와 관계없이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며 “이런 것을 전면금지한다면 공무원들이 집권세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현재 공무원노조는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 가운데 이유 없는 개인 비방이나 심한 욕설에 해당하는 글을 자체적으로 삭제하고 있다. 익명으로 글을 올리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노조도 글 작성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다. 윤진원 대변인은 “자유게시판에는 국민들도 자유롭게 글을 올리기 때문에 여론형성의 장이 될 수 있다”며 “자유게시판 글까지 뒤져서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민주주의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행안부는 자율정비 권고에도 불구하고 해당 내용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오는 5월 시·도, 시·군·구 책임관과 공조해 ‘사이버 위·불법 행위 단속반’을 구성해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단속반 점겸결과는 지자체 합동평가에도 반영된다. 위·불법 게시물을 올린 해당 공무원과 단체대표에 대해서는 징계처분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경찰청과 연계해 형사조치를 내리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행안부는 게시물의 내용이 심각할 경우 지자체에 인터넷 유해사이트 등록을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행안부와 시·도는 지금도 근무시간에 공무원이 증권 등의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사이버 정치주장 금지규정 신설되나
 
가장 논란을 불러올 대목은 사이버상 정치적 주장 금지와 관련한 복무규정 신설이다. 행안부는 지방공무원복무규정에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정치적 주장을 금지하는 내용의 규정을 신설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온라인의 특성상 기록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에 (개인비방 글을 올렸을 경우) 깊은 상처를 입힌다”며 “단속과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일반 공무원들이 한 번 더 생각하고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무원노조들은 정부정책 반대를 금지한 공무원복무규정(국가공무원복무규정 3조2항·지방공무원복무규정 1조의2 2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또다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복무규정을 신설할 경우 공무원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행안부는 지난해 공무원 개인이 정부정책을 반대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공무원복무규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제처 등의 지적을 받자 개인은 신설규정에서 제외시켰다.

권영국 변호사는 “정부정책 반대를 금지한 공무원복무규정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65조를 근거로 한 것인데 이는 정당에 가입하거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한 것이지 일반적인 의사표현의 자유까지 금지한 것이 아니다”며 “집권세력이 추진하는 정책을 반대한다고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현대판 긴급조치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보수인상이나 복지 등 근무조건과 관련해서는 정부에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올릴 수 있다”면서도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것은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행안부의 홈페이지 게시물 정비계획에 대해 정의용 공무원노총 사무총장은 “공안정국을 유발하는 정부의 행태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며 “같은 공무원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정 사무총장은 “노조는 정부가 손에 쥐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며 “정부가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상생할 의지는 있는 것인지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 복무규정 개정, 집회 참석자 중징계, 노조 홈페이지 게시물 정비…. 정부가 다음에는 또 어떤 압박수단을 들고 나올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시 부각되는 ‘사이버모욕죄’ 논란
행정안전부가 공무원노조 홈페이지의 위·불법 게시물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사이버 언론탄압’이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이버모욕죄’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사이버모욕죄는 정부와 한나라당이 도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사이버상 모욕행위에 대해 형법(311조) 모욕죄와 별도로 정보통신망법에 사이버모욕죄 조항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현행 형법은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사이버모욕죄를 추진하겠다고 처음 밝힌 것은 지난 2008년 7월이다. 당시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사이버모욕죄 신설을 검토하는 등 인터넷 유해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나라당은 사이버모욕죄 처벌과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세계적으로 사이버모욕죄를 법률상 규정한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며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사이버모욕죄를 추진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최초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의용 공무원노총 사무총장은 “사이버 공간에서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차원”이라며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오류를 수정하면 되지 홈페이지를 점검하겠다는 것은 사이버 언론탄압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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