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정부와 전쟁 중인데 나만 살겠다고 전쟁터에서 떠나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임기를 채워 신의를 지킨 것에 대해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달로 2년 임기를 끝내고 국토해양부로 복귀하는 정범희(47·사진) 행정부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지난 22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현장복귀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정 위원장을 만난 이날은 2년 전 그가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임원으로 선출된 바로 그날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우연찮게 임기를 같이 시작한 그는 “MB정부와 같이 한 지난 2년은 숨 돌릴 틈도 없는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2008년 2월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 시절이었습니다. 정부조직 개편, 공무원 구조조정과 퇴출, 공무원연금법 개악, 국립대·국립의료원 법인화, 특별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이양 등 중요한 현안이 계속 터져 나왔죠.”

그는 앞서나가던 한국의 IT기술이 최근 주춤하고 있는 것이 MB정부 초기 정보통신부 해체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인수위가 짧은 기간에 일방적으로 개편안을 만들면서 정보통신부는 없애고 해양수산부는 쪼개 버렸습니다.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인 합의 절차도 무시했죠. 정보통신부문은 상당히 앞서나가는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부처를 없앤 결과 지금은 경쟁력이 뒤떨어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대목이죠.”

정 위원장은 임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2008년 5월22일 공무원 정년평등 내용이 담긴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한 것을 꼽았다.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6급 이하 공무원의 정년은 57세, 5급 이상은 60세였다. 그는 “정년평등화는 2007년 12월에 체결한 대정부 단체협약에서 합의한 성과였다”며 “부패의 고리를 차단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법개정 전, 정년이 다가온 6급 이하 공무원들은 승진 여부에 따라 3년의 근무기간이 늘거나 줄었다. 근무기간이 늘면 그만큼 퇴직금도 많아진다. 정 위원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진을 하려다 보니 공공연하게 기관장에게 수천만원을 주는 부정부패로 연결됐다”며 “정년평등화로 부정부패의 고리를 차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의 급속한 고령화를 감안했을 때 공무원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무원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노조는 정 위원장 임기 동안 방송통신위원회지부와 보건복지가족부(국립의료원)지부가 신설돼 현재 16개 부처 2만여 조합원으로 구성돼 있다. 정 위원장은 임기 중 대정부 단체교섭을 마무리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2008년 시작된 공무원노조들의 대정부 단체교섭은 지난해 한 차례 예비교섭 이후 중단된 상태다. 2006년 시작된 노조의 행정부 단위 단체교섭은 노조활동 보장 때문에 막판 타결이 안 되고 있다.

“행정부 단위 단체교섭에서 기능직공무원 제도 개선이나 복지 수당을 현실화하는 등 상당부분 타결이 됐습니다. 미타결 과제 중 가장 큰 조항이 노조활동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근무시간 중에는 대의원대회나 노조 회의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노조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닙니까.”

정 위원장은 “MB정부 들어 공무원노조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침을 통해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며 “대화를 해도 진척이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노조의 활동을 백서로 정리하지 못한 점과 정부정책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는 월간지를 발간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고 했다.

노조는 최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오성택 현 노조 사무총장을 차기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정 위원장은 "차기 집행부의 최우선 과제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공무원노조법은 공무원이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법이 아니다”며 “어떻게 하면 공무원노조를 제약하고 억제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부처 5급 공무원도 실무자인데 획일적으로 6급 이하 공무원만 노조 가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6급도 기관 입장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직위에 따라 가입이 제한돼 있습니다. 단체교섭에서도 법령과 예산을 수반하는 사항은 안건에 포함시키지 않다 보니 교섭 안건이 상당히 제한받고 있습니다. 노조가 근무조건과 임금을 정부와 교섭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이런 문제를 빨리 국회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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